친일문학과 매국문학에서 민족문학과 통일문학으로 4. 친일문학은 왜 미화되고 확산되었는가

1. 글을 시작하며 2. 친일문학의 정의와 범위에 관해 3.친일문학은 언제 어떻게 탄생했는가 4. 친일문학은 왜 청산되지 못했는가 5. 친일문학은 왜 미화되고 확산되었는가 6. 친일문학을 어떻게 대체해야 할까

2020-12-24     이재봉 주주통신원

[편집자 주] 이재봉 주주통신원은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이며, 『문학과 예술 속의 반미』를 저술하였다.

5. 친일문학은 왜 미화되고 확산되었는가

1948년 미군정이 끝나고 들어선 이승만 정부에서도 친일파 출신 관료가 70% 안팎이었다. 친일파가 청산되기는커녕 지배계층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1948년 제헌국회에서 <반민족행위 처벌법, 反民法>을 만들고,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악질적으로 반민족적 행위를 한 사람들을 조사하고 처단하기 위해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 反民特委>를 설치했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1949년 중단되고 좌절된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일제하에서 일본 천황에 충성을 맹세했던 박정희가 1961년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권력을 찬탈함으로써 친일파는 완전하게 집권세력이 되었다. 그들의 가장 큰 무기는 박정희가 이른바 ‘혁명공약’ 1호로 내세운 ‘반공’과 ‘친미’였다. 일제 강점기 친일부역했던 사람들이 떳떳하게 공개적으로 부귀와 명예를 누리고, 일제에 저항했던 독립운동가들은 그대로 초라한 삶을 이어가게 되었다. 게다가 일제 치하에서는 공산주의가 항일독립운동의 수단이었기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반공’과 ‘친북’의 족쇄에 묶여 독립운동 공적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지 않았는가.

박정희 군사독재 초기 엄혹하고 암울한 시기에 이런 실상을 부분적으로나마 용감하게 고발한 소설가가 있었다. 1965년 ‘똥으로 된 땅’이라는 뜻의 <분지>를 발표한 남정현이다. 독백 형태의 소설에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남편을 해방 직후 환영하러 나가는 길에 미군에게 강간당한 뒤 미쳐 죽어버리는 어머니를 둔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한탄한다. 한국사회는 “민중을 위해서 투쟁한 별다른 경험이나 경륜이 없어도 어떻게 ‘반공’과 ‘친미’만을 부르짖다보면 쉽사리 애국자며 위정자가 될 수 있는 것 같은 세상”이라고. 소설가는 5.16쿠데타 직후 만들어진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이와 달리 친일문인들의 작품은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장식했다. 친일문학이 청산되기는커녕 온갖 의미를 부여받으며 미화되고 장려되며 확산된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이광수의 <무정>이 ‘근대문학사상 최초의 장편소설’로 떠받들어지고,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조선 최초의 신체시’로 대우받는 것 아닐까. <춘원 이광수 기념사업회>나 <육당 최남선 기념사업회>는 번창한다. ‘춘원 문학상’이나 ‘육당 문학상’이 <민족문제 연구소>와 <역사정의 실천연대> 등의 반대로 만들어지지 못한 게 그나마 의미 있다고 할까.

이광수 못지않은 친일문인으로 <배따라기>, <감자>, <발가락이 닮았다> 등으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 김동인을 기리는 ‘동인 문학상’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한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꼽힌다. 황석영이 2000년 ≪한겨레≫신문에 “동인문학상 후보작을 거부한다”는 특별기고문을 통해 자신의 작품이 ≪조선일보≫에서 주는 이 상의 심사대상으로 오르는 것조차 거부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뛰어난 시어 사용과 감상적인 작풍으로’ 청순하고 가녀린 여인의 이미지를 풍기는 여류시인이지만, 일제의 침략전쟁에 총칼 휘두르며 뛰어들라는 폭력적이고 선동적인 시를 쏟아냈던 노천명을 기리는 ‘노천명 문학상’ 역시 아직까지 빛나는 문학상이다.

노천명과 가까이 지냈으며 비슷한 이미지를 풍기는 친일문인이 모윤숙이다. <렌의 애가>라는 산문 제목부터 가녀린 여인을 떠올리지 않은가. 그러나 1941년 발표한 <지원병에게>에서는 다음과 같은 폭력적 전쟁 독려시를 쓴 여장부다. “칼빛은 태양아래 번개를 아로삭여 / 힘과 열의 동산 안에 내 맘은 뛰놉니다 / 눈은 하늘을 쏘고 그 가슴은 탄환을 물리쳐 / ..... / 피와 살 아낌없이 내여바칠 / 반도의 남아 희망의 화관입니다 / 가난한 이 몸이 무엇을 바치리까? / ..... / 오로지 끓는 피 한 목음을 축여 보태옵니다.....” 그녀가 이승만 정부에서 외교관 노릇도 하고 박정희 군사독재 아래서 국회의원을 지낸 건 이상하지도 않다. 그러나 모윤숙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고 업적이 아무리 많아도 그녀가 ‘3.1문화상’을 받은 것은 민족의 모욕이요 수치다. 누가 어떻게 친일파에게 항일운동 문화상을 주었을까. 친일파가 대통령 자리에 올라 독립운동가들에게 훈장.표창 준 게 흔한 일이었으니 이래저래 미쳐 돌아간 세상이었다.

이렇게 미쳐 돌아간 세상의 최고는 미당 서정주였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봄부터 소쩍새는 / 그렇게 울었나보다”로 시작되는 <국화 옆에서>를 모르는 한국인들이 있을까. ‘단군 이래 최대 시인’ 또는 “탁월한 언어 감각과 전통 소재의 활발한 활용으로 대한민국 현대시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목”으로 칭송받는 문인이다.

1944년 서울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스무살 조선 청년이 ‘오장’ 계급의 일제 자살 특공대원으로 선발되어 필리핀 근처 미군함에 돌진해 죽었다. 그토록 끔찍한 일에 서정주는 감동받고 그를 찬양하는 <송정오장 송가 (松井伍長 頌歌)>를 발표했다. “그대는 우리의 가미카제 특별공격대원 / ..... /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가 내리는 곳 / ..... /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 수백 척의 비행기와 / 대포와 폭발탄과 /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 그대 /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 / 장하도다.....”

그의 자발적이고 적극적 친일은 미군정 시기 친미로 변했다.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자 자진해 이승만 전기를 썼다. 1970년대 박정희 군사독재 아래서는 <현대시인협회> 회장도 맡고, <한국문인협회> 회장도 지내면서 한국에서 문인이 누릴 수 있는 최고 영예를 누렸다. 1980년 5월 광주학살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의 웃음을 “오천년 이래 최고의 미소”라고 최고의 아첨을 떨며 전두환 정권에 적극 협력했다. 1987년 전두환 생일엔 <전두환 대통령 각하 제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를 통해 “한강을 넓고 깊고도 맑게 만드신 이여 /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라는 아부의 극치를 보였다.

서정주는 1988년 발표한 <종천순일파 (從天順日派)>라는 시에서 자신의 친일과 관련해 당시 잘못된 정보로 일본의 패망을 상상하지 못해 일본의 장기지배 속에서 살아갈 길을 마련키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행위였다고 변명하면서 온갖 궤변을 쏟아냈다. 시의 제목이 가리키듯 하늘의 뜻에 따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무렵의 나를 ‘친일파’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의가 있다 / ..... / ‘이것은 하늘이 이 겨레에게 주는 팔자다’ 하는 것을 / 어떻게 해서라도 익히며 살아가려 했던 것이니 / 여기 적당한 말이려면 / ‘종천순일파’ 같은 것이 괜찮을 듯하다 / 이때에 일본식으로 창씨개명까지 하지 않을 수 없었던 / 우리 다수 동포 속의 또 다수는 / 아마도 나와 의견이 같으실 듯하다.”

그러기에 순하고 아름다운 수필로 유명한 피천득조차 다음과 같이 점잖으면서도 노골적으로 비판하지 않았겠는가. “세상 떠난 사람한테 이런 말 하는 것이 어떨지 모르지만 서 아무개 (서정주) 같은 사람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봐 줄 수가 없어요. 일제뿐만 아니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랬어요. 작가는 인격이나 인품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또 문학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물건은 다 버려도 자기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인품이 좋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런 서정주가 오랫동안 대학교수를 지냈기에 후배.제자 문인들로부터 노벨문학상 후보로 몇 차례 추천되기도 했다. 당연히 ‘미당 문학관’이 들어서고 ‘미당 문학상’도 만들어졌다. 친일문학이 청산되기는커녕 미화되고 확산되는 것이다.

* 이 글은 <2020 창작21 세계작가 초청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국제문학 심포지엄> (2020년 11월 21일, 파주시 통일문학관 강당)에서 발표한 것이다. 이 글 마지막 장 “친일문학을 어떻게 대체해야 할까”는 ≪아시아문화≫ 2015년 10월호에 실은 글쓴이의 “통일문학의 흐름과 역할: 시대를 선도하는 문학을 기대하며”를 요약.수정한 것임을 밝힌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