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철의 혁신학교 이야기 31> 아는 것 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 만큼 사랑하게 된다
- <누에 키우기 프로젝트>를 통하여 동식물과 자연을 이해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상생의 가치관을 키워나간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당시인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집에서 누에를 키우는 것을 보며 자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각종 화학 섬유들이 쏟아져 나오자 양잠 산업은 사양 산업이 되어 시들해져 갔다.
어릴 적 누에를 기를 때 누에의 먹이가 되는 뽕나무를 집 주변 텃밭에 심어 가꾸었기 때문에 5월 중, 하순부터 뽕나무에 올라 입술이 까맣도록 오디를 따먹었던 기억들이 아련하다.
누에 고치에서 실을 뽑기 위해 누에 고치를 삶아서 실을 뽑고 나서 나오는 번데기는 간식거리가 귀하던 시절에 아이들에게는 좋은 단백질원이 되었다. 그런 추억들도 양잠을 그만두면서 우리의 뇌리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필자가 일부 교사, 교수들과 생태, 환경 교육운동 단체인 <초록교육연대> 창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몇 차례 회원들을 위한 연수를 하였다. 그 연수들 중 하나가 수원에서 초등 수석교사로 활동하는 노은희 선생님을 강사로 초빙해서 그의 생태 철학과 실천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연수의 핵심 내용은 ‘생태적 감성’이 발전하여 ‘우주적 영성’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담임을 맡고 있는 교실 환경부터 생태적이고 우주적으로 꾸며 활동하는 이야기였다.
필자는 '생태 영성'에 대해서는 들어보았지만 '우주적 영성'이라는 말을 듣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 후 노은희 선생은 <초록교육연대>와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사모임> 교사 연수의 단골 강사로 불렀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누에 프로젝트>다. 필자는 그의 생태 교실 운영을 벤치마킹하여 담임을 맡고 있는 어린이들과 함께 몇 년째 <누에 프로젝트>를 운영하였다.
<누에>는 다른 곤충들보다 키우기도 쉽고, <곤충의 한살이> 과정을 잘 보여준다. 물론 누에 알에서 애벌레가 되는 과정까지 학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기간이 길고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2~3령 정도의 누에 애벌레를 누에 농장에 주문을 하여 사육하는 것이 편하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3~4만 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면 누에 20여 마리 정도 구입할 수 있다. 누에를 구입하면 먹이로 압축한 뽕잎도 함께 보내온다. 그 뽕잎을 냉장고에 보관해 두면서 먹이면 된다. 필자의 경우는 서울 근교의 경기도 지역에서 뽕잎을 따다가 먹이기도 하였다. 이 때 농약을 치지 않은 뽕잎을 따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누에는 개미누에(1령)부터 5령까지 열심히 먹이활동을 하면서 몸집을 키워간다. 1령, 2령, 3령, 4령까지는 5일 정도 먹이 활동을 하고 1일 정도 잠을 자고 나서 허물을 벗으면서 성장해 나간다. 마지막 5령 때는 약 10일 정도 먹이 활동을 하고 나서 입에서 실을 토하여 자신의 몸을 감싸 번데기로 변한다.
번데기는 약 10일 후에 고치 속에서 나방이 되어 밖으로 나온다. 밖으로 나온 나방의 암컷은 향기 주머니를 달고 나와 향기를 뿜는다. 수컷은 더듬이를 이용하여 암컷을 찾아가 짝짓기를 한다.
짝짓기는 약 이틀 정도 한다. 짝짓기 직후에 약 400~500개의 노란 알을 낳고 암수 나방은 죽는다.. 아이들은 이 과정을 경의에 찬 눈으로 숨을 죽이고 관찰을 한다.
이 알들은 50~60일 정도 지나면 개미누에로 태어나게 된다. 일반적인 실내 환경에서는 누에알의 부화율은 매우 낮다고 한다. 그래서 알에서 개미누에가 탄생하는 과정은 아쉽게도 해 보질 못했다.
누에를 기르려면 먹이를 주는 활동, 누에의 똥을 치워주는 활동 등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런 활동을 하면서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을 때 내는 사각사각거리는 소리도 들어보고 잠자는 모습을 관찰하기도 한다.
이렇게 관찰한 내용들을 관찰기록장을 마련하여 그림으로 그리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기록해 나간다. 관찰한 내용을 시로 써보기도 하고, 누에에게 편지도 써 보도록 하기도 한다.
또한 누에가 움직이는 모습을 몸짓으로 표현해 보는 활동을 해 보게도 한다. 누에가 고치 속에서 잠자는 모습, 고치에서 나와 짝짓기 하는 모습을 보자기 등을 이용하여 표현하는 활동을 할 수도 있다. 이런 활동을 통하여 아이들의 창의적 상상력과 표현을 자극할 수도 있다. 행위예술이 별것인가! 바로 이런 활동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 중에는 학교에서 누에 키우기로 만족하지 못하여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주문을 하여 부모님과 함께 키우는 활동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일련의 <누에 프로젝트> 활동을 통하여 동물의 사육과 관찰, <곤충의 한살이>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런 과정 속에서 생명의 신비와 존귀함을 깨우쳐 나가는 활동이야말로 그 어떤 생태 교육 활동보다 훌륭한 생태 교육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인간과 자연의 상생의 가치관을 심어주는 교육
노은희 선생은 이런 동식물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 활동들을 모아 2011년 <풀빛 물드는 교실>이라는 ‘생명 사랑 녹색교육 가이드 북’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마음으로 책을 낸다고 하였다.
“살아가는 주변에는 아파트와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차서 사방을 둘러보면 콘크리트 벽, 모가 난 사각형일 뿐이어서 보는 이의 가슴을 탁탁 막히게 합니다. 아이들은 그 속에서 답답하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려서 양보하고 생각을 모으며, 때로는 힘도 모으며 바깥놀이를 즐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거의 없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점점 더 거세어지고 있는 영어열풍과 이미 고착화된 선행학습을 위해 학원으로 몰려갑니다.
지적인 면에만 치우친 채로 정서적인 면과 운동 기능적인 면 그리고 감각적인 면에서는 아주 소홀히 다루어져 머리만 큰 아이들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중략>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를 생생하게 만나며 즐겁게 노래하는 새소리를 벗 삼아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을 느끼는 아이들은 나와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풍요로운 감성, 무한한 상상력과 신선한 창의성을 갖게 됩니다.
반면에 자연과 단절된 아이들은 넓고 멀리 보지 못하기 때문에 편협한 시야와 작은 가슴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햇살을 받지 못한 음지식물처럼 몸은 허약하여 다양하고 구체적인 경험으로 얻어지는 이성적 사고를 배양할 터전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자연을 만나며 생명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질서와 관계망 속에 자연의 가치를 인식하며 전인적 성장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자연 속의 교육활동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모색할 수 있는 상생의 가치관을 심어줄 것입니다.“
필자가 공동대표로 있었던 <초록교육연대>는 많은 교사들과 교수, 학부모, 시민단체 회원들, 그리고 학생들로 조직되어 있다. 이들은 <초록교육연대>의 창립 정신에 따라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실천했던 '초록교육 실천' 사례들을 <초록교육연대> 카페에 올려 공유하면서 초록교육 실천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런 카페 활동 속에서 필자는 우리 회원인 노은희 선생의 <누에 프로젝트> 실천 사례를 통하여 <누에 프로젝트>를 운영하였다고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다음 글은 노은희 선생이 <누에 키우기 프로젝트> 사례를 <초록교육연대> 카페에 올린 것을 보고, 필자가 2011년 6월 17일 '나도 이런 실천을 했어요'라고 답글로 남겼던 글과 사진이다.
♧ Re:자연속 행위 예술을 우리 교실에서/ 서정초 1-4 아이들도 행위예술을 하다
<노은희 샘이 하신 누에들 고치짓기를 우리 반 아이들도 '창의재량' 시간을 이용하여 따라 했습니다. 아이들이 아주 재미있어 했습니다.
내가 읊어주는 대사에 따라 모둠별로 나와서 몸으로 동작을 표현하는데, 다른 모둠 아이들까지도 쫓아 나와서 함께 표현하는 바람에 교실이 약간 소란스럽긴 했지만 아주 흥미로워했답니다.>
<생명, 생태 교육> 하면 늘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인간과 자연, 우주의 전일적 세계관이 핵심에 있음을 느낀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도 그렇다. 그리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이 살아계실 때 늘 주창하셨던 말씀도 그렇다.
김종철 선생은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해서 강조했던 <동아시아적 소농 중심의 농업>과 <직접 민주주의>, <기본소득제 도입> 등의 사상도 결국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동반자로서의 관계성>을 회복하면서 자연 파괴와 이용을 최소화하는 사회, 경제 구조로 가야 한다고 설파했다.
만약 아메리카 대륙이 백인 약탈자들에게 빼앗기지 않고 인디언들 대대로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닌 자연을 숭배하면서 공존의 원칙에 의한 공동체 방식으로 자연을 숭배하며 살아왔다면 2억이 넘었던 인디언 사회는 온존해 있지 않았을까?
기후위기는 물론 핵위기, 전쟁 위기, 영혼의 위기 등 각종 위기도 자연과 인간이 공생이 아닌, 인간의 자연 지배에 대한 반격이라고 하지 않은가?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의 4차, 5차 보고서가 지적하는 바와 같은 지구온난화에 의한 인간과 생물종의 금세기 내의 대멸종을 경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 배운다'를 생각하며 아메리카 인디언의 한 부족인<라코타족의 기도문>을 가져온다.
〔 노란 종달새 〕- Yellow Lark 기도문(수우족)
바람 속에 당신의 목소리가 있고..
당신의 숨결이..
세상 만물에게 생명을 줍니다...
나는 당신의 많은 자식들 가운데..
작고 힘없는 아이입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
내 두 눈이 오래도록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든 물건들을
내 손이 존중하게 하시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예민하게 하소서...
당신이
내 부족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나 또한 알게 하시고
당신이 만든 나뭇잎
모든 돌 틈에 감춰 둔 교훈들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
내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속에 감춰진
참다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나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사라질 때
내 영혼이 부끄럼 없이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하소서...
* 가장 널리 애송되는 인디언 기도문 중 하나인 이 기도문은 1889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현행 미국 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한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