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천변의 자연생태(自然生態) 관찰기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모성(母性)에게 헌정하는 글

2021-06-29     허익배 편집위원

작년 9월에 서울의 모퉁이에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수지천변 근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주변 지인들이 왜 수지로 이사했느냐 물으면 ‘정년퇴임 이후에 수지가 잘 안맞아서, 수지 맞추려고 이사했다.’고 농담 섞어 대답을 하곤 했는데, 정말 수지맞는 동네로 잘 이사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다른 것보다 우선 공기가 비교적 맑고 미세먼지가 덜하며, 수지천변 근처를 산책하며 자연과 가까이하는 시간이 늘었기 때문이다.

작년 겨울에는 수지천변 산책로를 매일 30분 이상 걸으며 수지천의 자연생태(自然生態)를 관찰할 시간이 있었다. 우선 수지에서 멀지않은 수원시 북쪽의 광교산(해발582m)에서 발원한 수지천(水支川)은 수지구를 관통하는 냇물인데, 상대적으로 맑고 천변 근처에 자생하는 식물들이 종류별로 다양한 편이고, 냇물에 사는 물고기도 버들치나 피라미 같은 어종과 잉어도 떼지어 상류까지 올라오고 심지어 메기도 어쩌다 발견되곤 한다. (또한, 이러한 물고기를 먹이로 하는 수달도 나타난다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조류로는 야생 오리들과 원앙새도 보이고, 작은 물고기를 먹이로 하는 백로(쇠백로, 혹은 중대백로)들이 암수 한쌍과 새끼 한 마리를 볼 수 있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바로 이 백로 어미와 새끼를 관찰한 이야기이다.

작년 12월 초쯤 나는 수지천변을 걸으며 산책하다가 어미 백로와 새끼 백로가 같이 냇물 속에 발을 담그고 작은 물고기를 사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미 백로는 새끼 백로 앞에서 물고기 잡는 법을 시범으로 보여주듯이, 한쪽 발을 냇가의 수초 속에 담그고 몇 번 흔들어서 물고기가 수초 밖으로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놀라서 수초 밖으로 나온 작은 물고기를 뾰죽한 부리로 사정없이 찍어서 잡아서는 부리를 하늘로 쳐들고 몇 번 자세를 바꾸다가 꿀꺽 삼켜버리는 것이었다.

다음날 나는 수지천변의 어제 그 장소로 나가보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어미 백로와 새끼 백로가 같이 나와서 물고기 사냥을 하는데, 이번에는 어미 백로는 한옆으로 비켜서서 새끼 백로가 어제 자기가 했던 대로 한쪽 발을 수초 아래에서 흔드는 모습을 지켜보는게 아닌가? 아, 새끼 백로는 이제 어미가 잡아주는 작은 물고기를 받아 먹는게 아니고, 스스로 잡아먹을 수 있도록 훈련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마침 약간 회색빛이 도는 날개를 지닌 덩치가 좀 크고 부리도 억세어 보이는 수컷 성체 백로가 저쪽 한옆에서 무심한 듯 냇물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아빠 백로인 듯이 보였는데, 꼼짝하지 않고 두발을 물에 담그고 냇물만 응시하고 있는게 마치 졸고 있는 듯이 보였다.)

며칠 후, 다시 그 자리에 나가 보았는데 이번에는 어미나 아빠 백로는 보이지 않고 새끼 백로만 나와있었다. 날씨가 추워져서 냇물이 얼지는 않았으나 많이 차가워졌을텐데, 새끼 백로는 지난번 어미에게 배운대로 수초에 한쪽 발을 넣어 몇 번씩 흔들며 물고기를 잡으려는 동작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이라 그런지 어설퍼 보이는 동작에 물고기가 잘 반응을 하지 않는것 같아서, 내가 공연히 조바심을 갖고 조마조마하게 지켜보았다.

아, 그런데 결국엔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걸려들었는지 새끼 백로는 뾰족한 부리로 날쌔게 찍어 몇 번 부리를 주억거리다가 날름 삼켜버리는 것이었다. ‘아, 다행이다. 이제 새끼백로가 여기 천변에서 혼자서도 겨울을 살아갈 수 있겠구나.’ 나는 슬며시 안도의 미소를 띄우며, 마치 내가 기르는 새끼인 것처럼 대견한 듯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 겨우내 거의 매일같이 오후에 천변을 산책하는 길이면 일부러 새끼 백로를 찾아보게 되었다. 어쩌다 보이지 않으면, 혹시 굶어 죽은게 아닐까 하는 방정맞은(?) 생각도 들었지만, 다음날은 다른 장소에서 한쪽 발을 수초에 넣고 흔드는 새끼백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나긴 겨울이 가고 입춘, 우수도 지나 3월의 따사로운 봄날에 수지천변을 거닐던 나는 오랜만에 어미 백로와 새끼 백로, 그리고 아빠 백로 3마리가 함께 냇물 속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그런데, 새끼백로가 물속을 이리저리 다니며 물고기를 잡다가 아빠 백로 쪽으로 방향을 틀자, 갑자기 아빠 백로는 부리로 쪼는 모습을 보이며 새끼 백로를 쫓아버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새끼백로는 놀라는 듯 흠칫거리더니, 날개를 펴고 그 자리를 떠나 멀찍이 위쪽으로 사라져버렸다. (아마도 아빠 백로는 자기의 먹이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경고의 뜻을 보인 것 같았다.)

이렇듯 동물의 세계에서는 새끼를 부화시키고, 독립해 살아가도록 훈련하고 가르치는 역할은 부성애(父性愛) 보다는 모성애(母性愛)에 의지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물론 예외적인 종이 있기는 하지만...) 백로 말고도 수지천에는 오리 부부가 몇 마리 있는데, 달포 전에는 천변을 걷다가 7~8마리의 앙증맞은 새끼오리와 함께 헤엄치는 어미 오리를 목격하였다. 새끼를 먼저 앞세우고 상류로 헤엄쳐가도록 뒤에서 지켜보며 헤엄치는 어미오리는 조금 뒤처지는 새끼 오리가 어떻게 해서든지 앞서 헤엄치는 형제들을 뒤따라 가도록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고 이러한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어디 동물에서 뿐이랴? 우리네 인간 사회에서도, 자식을 낳아 병들지 않게 보살피며 먹이고 입히고 끝까지 책임지는 역할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눈물겨운 희생과 헌신적 모습에서 볼수 있음을 우리는 이미 지난날 경험해서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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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  : 허익배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