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통일
다큐 <님의 소원 / Sacred Mission Korea>
나의 어머니는 2005년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서 만 41년째 해외 이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제주도 서귀포로 역이민 하셨다. 이제는 고인이 된 고(故) 일선(一仙) 이남순 . 그 당시 83세이었고 마지막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표현하셨다. 나는 그때 미국 중서부의 마크 트웨인 국유림(Mark Twoin National Forest) 끝자락인 “오자크‘라고 불리는 시골지역에서 중서부(mid-west) 토박이인 미국인 남편과 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십여 년째 일선님과 모녀관계 장거리 치유작업을 해왔다. 일선님은 내성적인 학자 남편 대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삶의 선구자로 사셨고 그런 동안 자녀들은 엄마의 자상함 결핍으로 인한 상처를 받고 자라면서 마음을 닫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내가 원해 온 자상한 엄마를 찾기 위해 긴 세월동안 목표와 계획을 세워서 40대가 되어 우리 둘의 마음 속에 막힌 곳을 녹이는 작업을 해내었다. 먼저 심리학 공부를 하고, 그 다음에 내 자신의 내면의 치유를 하고, 충분한 준비가 되었을 때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 십여 년에 걸쳐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결과로 우리는 풀어야 할 것을 다 풀고 친구-동지-도반의 사이가 되었다. 그런 후였기 때문에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 있다고 알려왔을 때 그 소원을 들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때 남편 에릭 한센(Eric R. Hansen)이 즉시로 지지한다고 나섰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평양행 준비가 착착 되어갔다. 그러자 그런 소중한 기회를 그냥 지내 버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불쑥 떠오르면서 어머니와 외조부의 남북 영세중립 평화통일의 염원을 이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다. 글로 쓰는 것보다 영상을 찍어서 다큐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자 꿈에도 생각지 못한 도우미가 나타났다. 토론토 일선님 집 부근에 살며 일선님을 따르던 그 20대 한인 여성은 라이어슨 대학(그 당시 Ryerson Polytechnical University)에서 영화 전공을 했고 막 졸업을 한 차였다. 황해도가 고향인 그녀의 아버지는 남하한 후에 가족을 데리고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그녀는 졸업 후에 무엇을 할 까 망설이고 있던 즈음에 이런 기회가 생겼다고 두 팔을 치켜들며 좋아했더. 신속히 경비를 마련하고 준비를 해갔다. 그렇게 해서 들고 간 것이 두 손 안에 들어가는 캠코더(camcorder)였다.
평양에 도착하자 그런 소형 캠코더를 들고 와서 기록영화를 찍겠다는 우리의 모습을 본 해외동포위원회 임원이 즉시 상부에 보고를 한 듯, 다음 날 전문 촬영가 한 사람이 등장했고 우리 곁에 따라 다니기 시작했다. 삼십 초반의 그 건장한 남성은 무겁게 보이는 대형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중요한 장면들을 찍어서 우리가 떠날 때 필림을 조건 없이 건네주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해외로 이민간 이산가족들의 삶 속에서는 이렇게 새로운 현실로 이어져 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들이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캐나다 시민이고, 캐나다는 북조선과 정상적인 외교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캐나다 여권을 가지고 쉽게 북을 방문할 수가 있었다. 앞으로도 방역문제로 인해 봉쇄되었던 국경이 풀리면 북을 자유롭게 다니며 영성문화 운동을 할 수 있다. 북에서 만난 그 촬영가의 모습은 아래 다큐 안에 들어있어 다시 볼 때마다 깊은 감회를 느낀다.
평양에서 돌아와 미주리주 숲속에 있는 우리 집 서재에 두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물들을 합성해서 편집을 시작했다. 총 네 명의 편집작가가 차례로 자원봉사를 했다. 중요한 내용이라서 돕고 싶다며 시간과 기술을 제공해 주었다. 다큐 편집은 내게는 처음 부닥치게 된 일이었지만 뚜렷한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에 선두에 서서 영상편집 작가들의 손을 빌려 일선님이 전하고 싶어 했던 ”마음의 통일“의 메시지를 담아 갔다. 남북을 갈라 온 분단심, 남남을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버린 분쟁심, 이 둘은 전쟁을 겪은 한국인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실고있는 "마음의 분단과 불통"이었고 우리 부모님도 피해자였다. 그것을 녹이는 작업을 일선님과 내가 십여 년에 걸쳐 해 온 것이다. 국가와 민족의 통일을 논하기 전에 우리가 다루어야 하는 인생의 대 과제였다.
다큐 <님의 소원/Sacred Mission Korea>에 평양 주민들이 나오는 장면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어떤 부분에는 사람들이 동원되어 세팅된 것일지 모른다는 추측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내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박정희 군사정권 당시 이화여고에 다닐 때 외국에서 국빈이 방문할 때마다 우리 여고생들이 동원되어 중앙청 앞에 나가서 태극기를 흔들었다. 그럴 때 나는 어떤 종류의 감명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그렇게 하고 있는 자신의 행동이 무색하고 창피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평양에서 주변사람들과 사진을 찍는 동안에 서로 쳐다보는 눈길 속에는 정감이 흘렀고 짧은 대화 속에 마음의 교류가 있었다. 다큐를 다시 클릭해 볼 때마다 분명히 마음의 전류가 통하는 것을 지금도 확인하곤 한다.
아무도 조작할 수 없는 영혼의 차원에 항상 고차원의 의식이 기류가 흐르고 있고 수많은 마음들이 소통하고 있다. 아무리 험란한 환경 속에도 나의 의식이 순수하고 깨어있으면 그 세계와 접속되고 예상하지 않은 순간에 적절한 사람들과 결속이 되어 신비로운 일들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앎을 품고 살아 오는 중에 나는 영세중립국 스위스 투어가 백지 위에 그려지는 것을 보았고 그렇게 드러나는 하늘의 기획을 따르게 되었다.
“스위스에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 어딘가에서 응답이 올 것이다... 이 시대는 마음의 연결망이 공동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시대이다. 그것이 확장되어 가면서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단 한가지 ... 마음을 비우고 하늘이 보내주는 메시지를 따르는 것이다.”
* 한국어 버전 <님의 소원>
* 영어 버전 <Sacred Mission Korea>
-김반아 (Vana Kim Hansen), 교육철학 박사, 생명모성 연구소 소장, 한반도중립화연구소 공동회장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