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감상 25> ‘산에 언덕에’ - 신동엽 - (申東曄 :1930~1969)
오늘의 ‘명시 감상’은 대표작 <껍데기는 가라>,<금강>의 신동엽(1930~1969)시인의 < 산에 언덕에 >라는 시를 감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 산에 언덕에 >
- 신동엽 -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行人)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위의 시는 고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4월을 대표하는 시로 손색이 없을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이 시가 1960년대 초반에 발표되었고 시 내용을 분석해볼때 시작(詩作)의 배경이 ‘4.19학생 의거’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의 각 연을 중심으로 감상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1연에서는 ‘시적 화자(話者)’(=시 속에서 말하는 이)의 시선(視線)이 산과 언덕에 막 피어나는 진달래꽃과 철쭉 등에 머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시인은 어느 봄날 4월에 4.19국립묘지와 기념탑을 일부러 찾아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서울시 북쪽에 자리잡은 북한산 기슭을 올라가며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와 철쭉을 바라보며, 4.19혁명때 스러진 젊은 학생들의 넋이 화사하게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운 그대의 얼굴을 다시 볼 수는 없어도, 화사한 그대의 넋과 혼이라도 이 땅의 산과 언덕에 피어날지어다.’라고 읊고 있습니다.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2연은 1연의 연장선에서 시인의 시각적 심상(心象)이 청각적 심상으로 변주(變奏)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운 그대의 노래를 다시 들을 수는 없어도) 그대의 맑은 숨결이라도 이 땅의 들판과 숲속에 머물지어다.’라고 읊으며, 다시 보거나 들을수 없는 그대(=임)를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行人)아,”
이 3연은 시적 화자(話者)인 시인이 자신을 객관화시켜 ‘행인(行人)’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그대(=임)의 흔적을 ‘애써 들길을 더듬어보는 나그네’의 쓸쓸한 심사(心思)를 잘 나타내주는 것 같습니다.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4연에서는 3연에 등장하는 ‘행인(行人)’에게 시적 화자(話者)가 해주고 싶은 말을 보여줍니다. 즉, 어디에서도 ‘그리운 임’을 찾을 수 없다면, 산과 언덕과 들판과 숲에서 부는 ‘바람(=風)’이라도 “그대(=시인 자신)의 빈 마음에 담아갈지어다.”라고... 또한 여기에서‘바람’은 그리운 임이 평소 바라고 소원하던 '바람(=願) 이란 중의적 표현을 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그리고 혹시 이러한 ‘바람'을 마음에 담을 수 없다면, ‘그리운 임’이 살아 생전(生前) 평소에 남긴 ‘인정’(人情=마음과 뜻)이라도 되새겨보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5연에서는 앞의 1연과 짝을 이루는 ‘수미쌍관(首尾雙關)’의 기법을 볼수 있는데, ‘(그리운 임의) 고통 속에 스러져간 넋과 영혼’이 이 땅의 들판과 언덕 모든 곳에 화사한 꽃으로 다시 피어나서 후세(後世)들을 지켜봐달라는 간절한 염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신동엽 시인은 <산에 언덕에>라는 이 시를 통해서 단지 ‘4.19 의거(義擧)’ 때 스러져간 학생들과 민주시민들 뿐만 아니라, 19세기 후반에 무능한 왕과 관료들의 수탈(收奪)에 죽음으로 항거한 동학혁명(東學革命)의 주역들과 일제(日帝) 침략에 항거한 3.1운동(運動)과 그 이후의 독립운동으로 스러져 간 수많은 민초(民草)들에 대한 경의(敬意)와 헌사(獻詞)의 뜻을 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오늘 <명시감상 25>를 마치겠습니다.
<추신> 4월은 또한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로 비명횡사(非命橫死)한 250명 단원고교 학생들 포함, 300여명 희생자의 가족들의 아픔의 기억이 함께하는 달이지요. 이래저래 4월은 가장 화사(華奢)한 기쁨의 달이자, 아픔 또한 병행하는 달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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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4.19 학생 의거(=4.19 민주시민 혁명) : 이승만 정권의 불법적인 장기 집권 및 독재 시도와 탄압, 1960년의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마산 시민들의 시위에 경찰의 최루탄 직격 발포로 김주열 열사 포함 9명 사망과 80여명 부상으로 서울의 여러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이게 된다. 이에 정치깡패를 동원한 이승만 정부의 4월18일 대학생 시위 진압과, 4월19의 전국 학생 및 시민들의 시위에 경찰 총격으로 백여명 사상(死傷)으로 결국 4월26일 이승만은 하야(下野)를 발표하고 물러나 민주학생‐시민들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출처=나무위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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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허익배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