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샘의 명시단평 4
- 김수영 님의 '폭포'
시어는 정해진 질서, 규범과의, 비결정성의 투쟁이다. 그럴까?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간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의 '폭포'(1956. 5.29. 조선일보) 전문
시어란 무엇인가. 아니 왜 우리는 아직도 시를 읽는가?
이런 의문이 갑자기 드는 것은 나만의 문제의식인가? 여기, 나도 모르게 김수영의 시가 살포시 와닿은 것은 이 시가 지닌 정령의 언어로서의 이끌림 때문이 아닌가! 아, 불가항력의...
그러니까 여기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는 시어가 무슨 마법의 주문같이 나를 홀리는 데는 단순히 모든 것이 계산만으로 돌아가는 공리적 세계질서를 넘어 거기 무엇인가 정신을 떠받치고 있는 사유의 축대a pillar of thought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때문이 아닌가!
곧은 소리에 대한 간절한 기원이자 소원으로서의, 못살것다 갈아보자던, 1956년 5월 15일로 치닫던 제3대 대통령 선거에 대한 민중의 함성으로서의 비원이 아니었던가! 그것은, 폭포는,
곧은 소리를 불러일으키는, 아니, 고매한 정신을 부르는, 너! 폭포는,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의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지는 너는,
그리하여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르듯 곧은 함성은 곧은 함성을 부른다니, 못살것다 갈아보자는 함성은, 폭포는,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에 더욱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너는, 폭포는, 무서운 정의의 사자같이 질주하는 너는, 난타하는 저 미친 자유의 종소리 같은, 아니 저 미친 영감탱이에 대한 너는, 곧은 소리는...
그러니 시어는 규범과의 일대 투쟁이 아닌가! 시인은 입법자가 아닌가! 새로운 규정으로서의, 언어의...
난 그렇게 본다.
......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