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감상 28> "새 아침에 " / 조지훈(1920 -1968)

2025-01-29     허익배 객원편집위원

오늘은 (음력으로) 2025년 을사년 정초(正初)첫날입니다. 마침 어제 가끔 좋은 시를 보내주는  초딩 동창 녀석 덕분에, '청록파' 시인으로 유명한 조지훈 시인의 '새 아침에'라는  명시를 찾아서 감상해보기로 했습니다.   

 

- 새 아침에 -

                                                                 조지훈(1920-1968)

모든 것이 뒤바뀌어 질서를 잃을지라도
성신(星辰)의 운행만은 변하지 않는 법도를 지니나니,
또 삼백예순날이 다 가고 사람 사는 땅 위에
새해 새 아침이 열려 오누나.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이 영겁(永劫)의 둘레를
뉘라서 짐짓 한 토막 짤라
새해 첫날이라 이름지었던가.

뜻 두고 이루지 못하는 한()
태초 이래로 있었나보다
다시 한번 의욕을 불태워
스스로를 채찍질하라고
그 불퇴전
(不退轉)의 결의를 위하여
새 아침은 오는가.

낡은 것과 새것을
()와 불의(不義)
삶과 죽음을...

 그것만을 생각하다가 또 삼백예순날은 가리라.


굽이치는 산맥 위에 보랏빛 하늘이 열리듯이
출렁이는 파도 위에 이글이글 태양이 솟듯이
그렇게 열리라,  또 그렇게 솟으라.
꿈이여 !

< 출처 한국대표 명시선100 (시인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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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시는 전체 5연의 시로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연을 중심으로 느낀대로 감상해 보겠습니다.

[제1연] 모든 것이 뒤바뀌어 질서를 잃을지라도/ 성신(星辰)의 운행만은 변하지 않는 법도를 지니나니/ 또 삼백예순날이 다 가고/ 사람 사는 땅 위에/ 새해 새 아침이 열려 오누나. ==> 시인이  이 시를 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아마도  무척 어지러운 때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래도 변함없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이 운행을 멈추지 않아, 어김없이 새해 첫 아침을 맞이하는 느낌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제2연]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이 영겁(永劫)의 둘레를/ 뉘라서 짐짓 한 토막 짤라/ 새해 첫날이라 이름지었던가.' ==> 그러면서 시인은 '새해 첫날'의 의미를 시공을 초월한 우주의 섭리 속에서 새겨보고 있습니다.

[제3연] 뜻 두고 이루지 못하는 한()은/ 태초 이래로 있었나보다./ 다시 한번 의욕을 불태워/ 스스로를 채찍질하라고/ 그 불퇴전(不退轉)의 결의를 위하여/ 새아침은 오는가. ==> 지난해에 미처 다 이루지 못한 여한(餘恨)을 올해에는 기필코 이루기 위해,  '새해 첫날'인 오늘에 시인은 불퇴전(不退轉)의 용기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다짐하는 결기를 보이고 있네요.

[제4연] 낡은 것과 새것을/ ()와 불의(不義)를/ 삶과 죽음을.../ 그것만을 생각하다가 또 삼백예순날은 가리라. ==> 그렇게 다짐을 해놓고도, 시인은 혹시라도 '낡은 것과 새것', '의()와 불의(不義)', '삶과 죽음'이라는 대의명분(大義名分)에 너무 집착하여, 구체적인 실천을 하지도 못하고 허송세월하지나 않을까 저어하는 심정을 토로합니다.

[제5연] 굽이치는 산맥 위에 보랏빛 하늘이 열리듯이/ 출렁이는 파도 위에 이글이글 태양이 솟듯이/ 그렇게 열리라, 또 그렇게 솟으라/ 꿈이여! ==> 아마도 시인은 지금 새해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설악산 같은 곳에 가서 새벽에  밝아오는 보랏빛 미명(微明)을  바라보고 있거나, 혹은 동해안에서 파도를 헤치고 떠오르는 아침해를 바라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시인이 간직한 평생의 '꿈'이 어서 새롭게 열리고 솟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그렇게 열리라, 또 그렇게 솟으라 꿈이여!"라는 시행(詩行)으로 끝맺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해안 해돋이 사진(출처: 한겨레21/2008.12.26)

 

편집 : 허익배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