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별 헤는 밤 : 탄핵 기각? 탄핵 각하? 꿈도 꾸지 마라
대한민국의 시계가 멈춰 섰다. 헌법재판소 앞에서 대한민국 사회가 그대로 얼어붙어 있는 채로 꼼짝달싹을 못하고 있다. 어찌 된 일일까. 윤석열 탄핵 선고 기일이 갈수록 늦춰지고 있다. 당초 3월 초중순으로 예견되었던 헌재 선고가 계속 미루어지더니 지금은 이재명의 2심 재판기일을 넘기고 3월 말이나 4월 초에 선고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각종 억측과 루머, 온갖 썰(說)들이 난무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시민들은 그저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며 오늘이려나 내일이려나 마음을 졸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헌법재판관들은 매일 밤 별을 헤아리며 국운을 점치기라도 하는 걸까.
헌재는 아직 내부적으로 '수 싸움'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헌재는 선고 이후에 벌어질 경우의 수를 헤아리고 있을 것이다. 파면 선고에 이어 벌어질 극우 세력의 반발과 논란의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절차적 문제점은 없는지 그 점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극우세력은 탄핵 기각보다는 탄핵 각하에 목숨을 걸고 있다. 법리적으로 탄핵 기각은 어려우니 절차적 흠결을 주장하고, 이를 부각하여 탄핵 각하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헌재가 시간을 끄는 이유는 지귀연 판사의 돌발적인 윤석열 구속취소 판결과 관련이 깊다. 지귀연 판사의 어이없는 판결에 이어 벌떼처럼 들고일어난 극우세력의 공세에 헌법재판관들이 심리적인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윤석열 석방 소식에 언론 기관은 물론, 전 국민이 놀라고 당황했으니만큼 헌법재판관들도 그러했으리라고 짐작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추론이다.
윤석열 석방으로 한껏 기세가 오른 극우 세력의 여론몰이에 헌재가 몸을 사리며 여론의 동향을 살피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애초에 윤석열 탄핵을 다른 탄핵 건에 앞서 선고하겠다는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다른 탄핵 사건을 먼저 처리한 것은 누가 봐도 보수층으로부터 신뢰를 얻으려는 의도임이 분명하다. 그런 신뢰의 연장선상에서 윤석열 탄핵 인용을 선고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헌법재판관들이 염려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추정 가능하다. 극우 보수층의 눈치를 보며 절차적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을 남기고, 추후에 어떠한 논란의 여지도 없게 하겠다는 신중론이 헌법재판소 내에서 우세했을 것이다. 또한 이재명의 2심 선고 날짜와 연계하여 그 후에 선고하는 것이 헌재로서는 부담이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윤석열을 파면하더라도 보수층을 최대한 배려(?)하여 가능한 한 선고를 늦추겠다는 것이 현재 헌법재판소가 취하는 스탠스라고 볼 수 있다.
그 외에 김건희와 윤석열을 비롯한 검찰과 사법 카르텔이 뒤에서 모종의 음모와 협잡을 벌일 거라는 추측도 가능하지만, 헌법재판관들이 그들의 농간에 놀아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헌법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은, 다른 일반적 사건과는 달리 대통령 탄핵 선고에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선례도 있다.
극우 보수층은 헛된 꿈을 꾸지 말기 바란다. 그들 말마따나 김복형이나 정형식을 비롯한 서너 명의 보수 성향 재판관들이 혹여라도 탄핵 각하를 유도하여 극우세력의 영웅이 되겠다는 마음을 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기대난망이다. 극우 세력의 헛된 희망이요, 미망일 뿐이다. 극우 세력은 보수 성향의 재판관들을 부추겨 탄핵 각하를 얻어내려 한다. 정말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는 자들이다.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기보다는 오로지 자신들만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우매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탄핵 기각이든 탄핵 각하든 윤석열이 복귀하는 순간 대한민국은 다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궁으로 빠질 것이며 혼란의 극치를 보일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것은 끔찍한 일이고 악몽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될 것이다.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은 자가 무슨 낯짝으로 대통령 노릇을 할 것인가. 대외적으로 대통령 자격이 없음을 드러낸 자가 국제 무대에서 어떻게 대한민국을 대변하여 외교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헌법재판관들이라고 이를 모를 리가 없다. 트럼프가 국제 질서를 재편하려고 하는 지금 대한민국은 이에 대처하기는커녕 국내의 내란 사태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 대응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시간이 촉박하다. 특히 헌재 앞에 멈춰진 시간이 그러하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한국 내란사태와 관련해 최근 북미 지역 대학 한국학 연구자들이 잇따라 성명서를 내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시간대 한국학센터장 유영주 교수를 주축으로 북미 지역 대학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학자 등 461명은 지난 12일 헌법재판소의 신속한 판단을 요구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유 교수는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한국의 위상에 대해 걱정했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은 경제적·문화적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왔고, 민주주의도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며 “그러나 헌재가 제대로 판단하지 않는다면 그 여파는 매우 클 것이다. ‘한국이 우리가 알던 나라가 맞는가?’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헌재 판단에 따라 이번 사태가 한국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봤다. 특히 민주주의 위기를 체감하고 있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민주주의 회복 모델’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한국이 계엄령을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낸다면, 이는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중요한 교훈이 될 것”이라며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 선진 모델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한겨레 3.19일자 보도참조 : 북미 학자들도 ‘윤석열 선고’ 촉구…“내란 사태 장기화에 불안감” )
대한민국이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건 국가적 명제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대명제이다. 헌법재판소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한국인이라면 이 대명제를 부인해서는 안 된다. 일제 치하에서 윤동주가 읊었던 '별 헤는 밤'에는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이 연상되는 구절이 있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윤동주가 별을 헤며 어떤 심정이었을지를 헤아려 본다. 별은 지식과 총명을 상징한다. 윤동주에게 별은 아직 이루지 못한 민족의 꿈과 나라의 희망이다. 별을 다 헤기도 전에 아침은 곧 올 것이다. 대한민국 앞에 전개될 역사의 청춘은 이제 시작이다. 김건희와 윤석열이 망쳐놓은 나라는 아직 꽃도 피지 못한 청춘이고, 이제 막 몽우리가 터지려는 청춘이다. 헌법재판관들은 헌법에 의거해 윤석열을 파면함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을 다시 꿈 많은 청춘으로 되돌려놓을 역사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
편집 : 심창식 편집장, 하성환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