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할머니가 되었다 7. 사람 만나면 생긋 웃는 손주
우리 조상들은 신생아가 태어나면 대문에 금줄을 달았다. 주로 신생아 출생 후 삼칠일(21일) 동안 달았다. 금줄의 '금'은 금지하는 '금(禁)' 자로 부정한 기운이나 외부인의 출입을 21일 동안 금한다는 전통 풍습이다. 면역력이 약한 아기와 산모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지금 한국 의사들도 생후 2~4주까지 면연력이 약한 신생아와 외부인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6주까지는 외부인과 신생아의 밀접한 접촉을 되도록 하지 말라고 권한다. 2개월째 여러 예방 접종을 하는 데 그전에는 사람들이 붐비는 곳은 피하라고 한다. 딸과 사위도 이런 지침을 잘 받아들여 손님 초대를 하지 않았다.
처음 딸이 손님을 초대한 날은 6주 차가 되는 7월 12일이었다. 손주 생후 40일 되는 날이다. 직장 동료 부부인데 두 분 모두 한국계라서 딸이 아기를 낳고 퇴원했을 때 미역국도 끓여다 주신 고마운 분이다. 딸은 이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1등으로 초대했다. 막 6주가 다 되어가지만 서로 조심할 때라 두 분 다 마스크를 쓰고 손주를 만났다. 동료 아내는 자식은 없으나 조카 산바라지 경험이 많아 손주를 능숙하게 다루었다. 하지만 손주는 새로운 사람에 대한 별 반응이 없었다.
두 번째로 손님 초대를 한 때가 7월 21일이니 손주 출생 49일 만이다. 지난 7월 12일에 왔던 두 분하고 한국계 동료 한 사람이 더 왔다. 9일이 지났을 뿐인데… 이날 손주는 지난번하고 완전히 달랐다.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손님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눈을 맞췄다. 새로운 얼굴이라 신기한지 눈이 동그래졌다. 이 당시 엄마 아빠 보고 살짝살짝 웃기 시작할 때인데, 손님에겐 웃음을 주진 않았다.
손님이 왔다 가고 나서 딸이 그랬다. "엄마, 아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니 플레이매트에서도 더 신나게 발치기를 하고, 터미타임도 더 열심히 하려고 해. 아기도 사람을 의식하나 봐"라고 그랬다. 나는 설마~~ 그러고 속으로 웃었는데... 보내준 영상을 보니 좀 그런 것도 같았다. 발차기를 하면서 스스로 흥이 나서 소리도 빡 지르고...
터미타임을 하면서 고개를 들고는 "엄마, 나 잘했지? 나 임무 완수했지?"라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여러 사람이 자신만을 지켜보고 응원해 준다는 것을 아는 걸까?
4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세 번째 손님도 왔다 갔고, 뱃속에 4개월 아기를 가진 네 번째 손님도 왔다가 갔다. 8월 1일, 60일 되던 날, 멀리서 다섯 번째 손님이 왔다. 한국에서 오신 친할아버지다. 오자마자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었는데... 웬일? 할아버지에게 생긋 미소를 지었다. 아직은 부모에게만 반응하여 웃는다는 시기인데... 이 웃음은 처음으로 엄마 아빠 아닌 사람을 보고 지은 미소였다. 비행기 타고 오신 귀한 할아버지라는 것을 아는 걸까? 하루에 몇 번밖에 웃지 않을 때인데 그 귀한 미소를 할아버지에게 날려주었다. 할아버지 맘이 녹았을 거다.
이날 손주는 할아버지에게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저는 이렇게 신나게 놀며 살아요' 하듯 팔과 다리를 흔들면서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흥이 나서 소리도 지르고 놀았다. 역시 새로운 사람이 자신을 지켜보면 좀 흥분하는 걸까?
그러고 8월 9일, 딸의 직장 동료가 방문했다. 이때도 손주는 미소를 날려주었다. 엄밀히 말해 영상을 찍는 엄마에게 웃어준 미소였지만....수줍은 예쁜 누나도 왔는데 손주도 그 누나에게 관심이 가는지 자꾸 쳐다보았다. 손주가 미소를 짓고 사람들이 격한 반응을 하니 손주가 그만 놀라버려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주는 새로운 사람이 오면 신나 하면서도, 좀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보이는 것 같다.
드디어 8월 16일 처음으로 여러 사람들과 만나는 날이 왔다. 딸 직장 동료 7명과 공원에서 피크닉을 가졌다. 손님들 앞에서 터미타임 실력도 보여주고 놀기도 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사람들 맘을 흔드는 것은 손주의 미소다. 손주를 안아 준 동료가 계속 손주 눈을 보면서 말을 걸었다. 손주는 이를 아는 것 같았다. 웃다가, 옹알이도 하다가, 기분 좋다고 손발도 움직였다. 역시 상호작용이 이루어질 때 손주는 더 반응을 하는 것 같다.
8월 23일에는 사람들 밀집 장소인 마트에도 처음 갔다. 눈이 동그래져서 엄마 한번, 아빠 한번, 그리고 주변 한번 보기 바빴다. 볼 것이 너무 많아서 할 말을 잃은 듯하다.
좀 이르다 싶었는데…. 태어난 지 10일째 되는 날부터 손주는 유모차를 타고 산책 나갔다. 비록 멀리서지만 공원에서 사람들을 만났고,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인사도 나눴다. 거의 매주 사람들이 놀러 와서 새로운 사람들도 만났다.
딸과 사위가 이렇게 일찍 손주를 사람들에게 노출하는 이유는 미국에 한국 가족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야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친척들인 가족공동체 속에서 새로운 얼굴을 접할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자칫하면 인간관계의 범위가 아주 좁아져 고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딸은 미국 직장 동료를 친척에 버금가는 공동체로 여기기로 작정한 것 같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부모, 학교, 이웃 등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아이들은 성장할 수 있다는 아프리카 속담이다. 아이를 지극히 사랑하는 딸과 사위를 볼 때 부모 애착을 통한 초기 사회성 발달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보통 100일쯤부터 아이는 부모가 이웃을 만나는 등의 일상적인 모습을 본보기 삼아 인간관계를 배운다.
딸은 손주가 다양한 환경과 사람들과의 접촉이 부족해서 인간관계 발달에 문제가 생길까 염려하는 것 같다. 이에 사람들을 초대하고 산책도 자주 나가 많은 사람들을 접하게 해주고 있다. 초기 힘든 육아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주말이면 아기 보러 온다는 직장 동료를 언제나 환영한다. 너무 애쓰는 것 같아 좀 안쓰럽다. 사회성을 유달리 강조하는 미국 사회에서 아이를 키워야 해서 그리하겠지만.... 사회성이 그리 발달하지 못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한국 사회에서 큰 문제 없이 살았는데…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