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반아 칼럼] K-중립성의 시대

 한국의 새로운 외교 방정식

2025-09-07     김반아 객원편집위원
사진 출처: 필자

한때 대한민국은 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강대국 경쟁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외교적 과제에 직면해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러한 위치를 새로운 기회로 삼을 수 있는 독자적인 구상을 모색하고 있다. 군사적 동맹이나 일방적 진영 선택을 넘어, 문화적 영향력을 통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K-중립성(K-Neutrality)'이 바로 그것이다.

전통적인 중립국 모델은 국경을 엄격히 관리하며 국제 분쟁에 소극적으로 개입하는 비개입주의적 태도였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복잡한 지정학적 환경과 경제적 위상을 고려할 때, 한국에 있어 이러한 소극적 중립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K-중립성'은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군사적·정치적 중립이 아닌, 문화적·경제적 연결망을 통해 새로운 외교적 공간을 창출하려는 능동적인 전략이다. 기후변화나 감염병과 같은 비전통적 안보 이슈의 거버넌스 형성에 참여하며, 미중 양국을 포괄하는 다층적 협력의 교두보 역할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의 핵심 동력은 바로 K-컬처다. K-팝, 드라마, 영화는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기술'에서 '문화'로 전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는 콘텐츠 수출을 넘어 화장품, 식품 등 관련 소비재 수출을 견인하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K-중립성의 진정한 힘은 정부나 기업을 넘어, 국경을 초월한 K-팝 팬덤의 자발적인 네트워크에서 나온다. 이들은 특정 정치적 진영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이슈에 대해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는 새로운 외교 행위자로 부상했다. 이러한 민간의 자율적인 에너지는 전통적인 국가 주도 외교가 갖기 어려운 유연성과 창의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새로운 외교 구상에는 해결해야 할 도전 과제가 있다. K-컬처가 지닌 문화적 특수성은 종종 문화적 맥락의 차이나 역사적 인식 차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외교적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 K-컬처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느끼는 국민이 정치에 대해서는 깊은 불신과 냉소를 보내는 현실이다. 이러한 신뢰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다면, K-컬처를 외교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 자체가 문화의 순수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K-중립성 전략의 성공은 정부가 문화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그 창의성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데 달려 있다. 해외 한인 디아스포라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다양한 문화에 대한 상호 이해를 넓히는 노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K-중립성은 수동적인 방관이 아닌, 능동적인 창조다. 문화적 힘으로 외교 관계의 경계를 허물고, 세계 질서에 새로운 평화의 질감을 부여하는 독창적인 한국적 외교의 길이다. 우리는 이미 강력한 문화적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제는 이 에너지가 세계 평화에 기여하도록 그 방향을 설정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