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자영의 금요칼럼]국회무용론(106) 제왕적 대통령이 외로운 대통령 담론으로 둔갑, 조희대 청문회로 역풍 불어 대통령 지지도 하락한다는 본말전도 담론
현 정부의 ‘국민주권’ 구호는 일면 알맹이 없이 떠벌리는 허사(虛辭: 헛소리) 민주당 때문에 외롭고, 관료 때문에 앞으로 못 나간다는 대통령 담론 국민주권이 아니라 국회와 관료가 권력을 좌우한다는 반증 ‘역풍’ 염려하고 지지도 높이는 데 발목 잡힌 여당 및 대통령 지귀연, 조희대 등 위법 혐의 공직자를 방관해야 하나?
조갑제(전 월간조선 편집장)와 정세현(전 통일부장관)이 외롭고 힘없는 대통령을 ‘코스프레(연출)’하고 있다. 전자는, “이 대통령이 외로워 보인다”, “민주당이 이 대통령의 힘을 빼는 것 같다”, “왜 대법원장(조희대) 청문회를 하느냐. 왜 이렇게 무리를 하느냐.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제거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자꾸 (사람들이) 의아해하지 않냐”고 하고, 후자는 주변 관료(및 국회 정당)의 방해 때문에 대통령 이재명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여기에 민주당 지지자들도 합세하여, 조희대 청문회 때문에 대통령이 UN에서 한 연설이 세인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가려졌다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런 담론이 가진 한계가 있다. 한편으로 조갑제 류의 지지도 하락, 즉 ‘역풍’ 관련한 것이다. 역풍 담론은 정부가, ‘국민’을 위한 기관이라기보다 정부 자신의 ‘지지도’ 염려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은 한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국민을 위한 것’과 ‘역풍’ 염려는 당연히 같은 것이 아니다.
현재 한국의 대의 ‘과두정’은 국민을 중우로 보고 직접 결정권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인데, ‘국민의 여론’을 따라 역풍 염려하는 것은 그 같은 인식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민중이 어리석다면, 그 여론도 어리석은 것이 되는 것이겠다. 어리석은 민중(중우)은 결정권은 가지면 안 되는데, 그들의 여론은 어리석지 않으므로 따라야 한다는 등식은 모순이다.
사실은, 민중이 어리석은 때문이 아니라, 대의 과두정의 위정자가 권력욕과 독선에 매몰돼 있기 때문에, 민중에게 결정권을 부여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당연히 민중이 행사해야 할 결정권을 민중에게 돌려주지 않는 것은 권력욕 때문이며, 실체가 불분명한 ‘여론’의 ‘역풍’을 걱정하는 것도 그 같은 권력욕에 기인한다.
위정자들은, 한편으로 중우에게 결정의 권력은 주지 않으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른바 중우의 여론은 절대적으로 맹신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그 여론은 흔히 조작되기도 하는 것으로 회자한다.
민중이 어리석으므로, 따라서 어리석을 것이 틀림없는 그 여론을 정당과 대통령이 추종하는 것은 진정으로 국민 민중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나 대통령은, 국민이 아니라, 오히려 지지도를 위해 중우(어리석은 민중)의 여론에 절대적으로 순종한다는 이기적 결론이 도출된다.
‘역풍’ 염려는 정부나 정당이 차기 선거를 위한 기관인 양 본말을 전도한 것이다. 정당이나 대통령 지지도를 해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무조건 피하고, 불법, 범법의 혐의가 있는 공직자도 정당이나 대통령 지지도에 해가 되면 소추하지도 말고, 지방선거, 총선(국회의원 선출), 대선(대통령 선출)에 해로운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조갑제 및 정세현 류의 담론은 권력구조에 관한 모순된 인식을 노출한다. 민주당이 이 대통령의 힘을 빼서 외롭다는 조갑제의 의견이나, 대통령이 주변의 훼방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정세현의 발언은 지금까지 제왕적 대통령제 운운하던 논리를 정면으로 배반하는 것이다.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미화하며,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약화해야 하니, 그것을 국회에서 뽑는 총리에게로 분산시켜야 한다고 떠든 것이 바로 엊그제인데, 정세현에 따르면, 지금은 오히려 대통령이 주변의 방해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제왕적 권력의 무소불위하던 대통령이 갑자기 쭈그러들어 불쌍한 권력의 힘없는 대통령이 되어 버렸다. 아무런 외적인 제도의 변화가 없는데도 그렇게 풍경이 변해 버렸다.
정세현의 발언을 통해 보자면, 대통령(만)이 제왕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자못 명백하다. 실로 우리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바, 국회, 정부 관료(검사, 판사, 경찰, 행정 공무원), 대통령, 어느 쪽이라 가릴 것 없이, 각종 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권력을 오남용할 수 있다.
급기야 쿠데타를 도모하고 영현백(시체 가방)까지 동원하려 한 혐의의 대통령(윤석열)만 제왕적 권력으로 군림하려 한 것이 아니다. 법원(조희대, 지귀연 등)이 ‘사법권 독립’이라는 미명 하에 제왕적 권력을 지향하며, 국회 청문회에 (법에 규정한 ‘사유서’도 아니고 ‘의견서’로 갈음하여) 불출석 통보하고, 심우정(검찰총장)은 검찰조직을 윤석열, 김건희를 위한 불법의 도구로 전락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국회도 예외 없이 소수가 지배하는 과두정체이다. 여야 원내대표(김졍기, 송언석)가 ‘협치’를 빌미로 야합하고, ‘더 센 특검법’, ‘정부조직개편’ 등, 본회의 상정을 앞둔 법안들을 휑하니 수포로 돌려버렸다. 야합 주역의 일인인 김병기(민주당 원내대표)는 그 야합이 혼자 뜻이 아니라, 대통령실, 당대표(정청래) 등의 뜻을 모은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김병기의 말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 당정청 간에 어느 정도의 소통이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여야 원내대표 등 소수가 모여 하룻밤 사이에 소위, 상임위 등을 다 통과한 사안의 판을 엎어버린 것이 이번이 처음인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호시탐탐 여야 ‘지도부’의 야합으로 정국을 주도하려 하고 있다.
이렇듯, 대통령만 제왕적인 것으로 변질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체가 아니다. 검찰(및 경찰), 사법부, 국회가 다 같은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총체적으로 노정하는 권력의 오남용은, 대통령 권력을 국회로 분권한다거나(분권형 대통령제), 검찰청을 없애고 수사청, 기소청 등으로 권력을 분산한다고 해서, 다 막을 수 없을 것임이 자명하다. 검찰개혁은 첫 삽을 뜨는 것일 뿐, 그 자체가 민주정치의 도래를 보증하는 것이 아니다. ‘검찰개혁=민주정치’를 섣불리 동일시하는 것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다.
설상가상으로 개혁의 발목을 잡는 것이 ‘역풍’ 담론(프레임)이다. 보수의 대부(代父) 조갑제는 역시 걸어온 길에 합당한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사법부를 압박하는 민주당”이 “국익을 챙기는 이재명”의 발목을 잡는 것이라 규정하고, “민주당에 대한 여론과 언론의 비판이 상당하고, 이(재명) 대통령의 힘을 빼는 것 아닌가”, “정청래(민주당 대표)가 너무 나가는 것 아니냐”, “대법원장(조희대) 청문회를 무리하게 하는 것이 이재명 사법리스크를 원천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서 하는 것 아니냐고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한다”, “이 대통령 외교가 성공하려면 여야가 단합해야 되고 국민이 단합해야 된다” 등 의견을 개진한 것이 그러하다.(JTBC ‘이가혁 라이브’, 2025.9.25.; 한겨레, 2025.9.28.)
이 같은 조갑제의 발언이 놓친 것이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이재명은 외교만 성공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국내의 불법적 사법살인의 시도 또한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희대 청문회는 유력한 야당 대선 후보를 제거하기 위해 조희대가 강행한 절차의 위법성 여부에 관한 것이다. 청문회의 원인 제공은 조희대가 한 것이고, 청문회로 인해 이재명 사법 리스크가 혹여 제거된다고 한다 해도 그것은 원인이 아니라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다.
조갑제는 민주당이 사법부를 압박하고, 정청래가 너무 나가서, 또 국회가 조희대 청문회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이 이재명의 힘을 빼는 것이라고 했으나, 사실은 그 반대로, 무소불위의 조희대가 특정 대통령 후보를 미연에 제거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둘째, 조갑제는 여야의 단합과 국민의 단합을 동일 선상에 놓았으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여야의 야합은 국민의 뜻을 배반하여 이루어지곤 했다. 최근 김병기-송언석의 야합이 그 명백한 증거이다. 국민의 뜻은 물 위에 기름 떠돌 듯, 섞이지 않고 배제되고 있다.
조희대는 국회 청문회 불출석을 통보하면서,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기 위한 것이라 토를 달았다. 조희대의 주장은 윤석열이 자유와 민주를 수호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들이 이렇듯 대놓고 자기주장만 하는 것은 그런 주장에 대한 제어장치가 제도적으로 아예 마련되어 있지 않거나 불충분하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민주당 최민희가 “사법권은 독립한 것이 아니라, 국민주권 아래 있다”는 원론적 발언을 했고, 다른 편에서 같은 당 의원 전현희가 조희대에 대한 “탄핵은 ‘아직’ 논의하지 않는다”고 설레발 쳤다.
이 두 의원의 발언은 상통하는 데가 있다. 최민희가 ‘국민주권’을 거론한 것은, 현실이 아니라 가상의 전제라는 점에서, 이재명이 국민주권을 거론하는 것과 정확하게 같은 값을 가진다. “탄핵은 아직 논의하지 않는다”는 전현희의 발언은 ‘역풍’을 염려하는 소극적 대응으로서, 대통령 이재명에게의 지지율 하락을 염려한 것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이런 염려는 다소간 위정자들의 발 빠른 표 계산에 기인한다.
행여 있을 수 있는 반발을 줄여서 가능한 한 득표를 늘리자는 정당의 심사는 반드시 다수 민심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전현희의 영약한 발언이나 조갑제의 여야 합의 종용 등이 조희대를 무소불위의 독재자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이들 정당의 이해관계는 ‘국민주권’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불법을 자행한 혐의의 조희대가 뜬금없이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기 위해 국회 청문회에 불출석한다고 둘러대는 것이 독선이듯이, 조희대 탄핵을 ‘아직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전현희의 유보적 발언은 다수 민심과 괴리를 빚는 것이라는 점에서 조희대와 같은 독선을 범하고 있다. 독선의 정부는, 최민희, 이재명 등이 명색이 표방하는 바의, ‘국민주권’을 알맹이 없는 헛소리로 만드는 것이다.
전현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상호(현 정부 정무수석), 김영진(‘친명’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수원시 병구 의원) 등등이 조희대 청문회를 반대하고 나섰다. 대체로 그 이유는 조희대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왜 하필이면 지금, 청문회를 조기(早期)에 서두르는가 하는 것이다.
청문회를 ‘조기’에 서두르는 것이 문제라고 한 이들은 적절한 시기를 언제라고 보는 것일까? 문제는 ‘조기’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실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역풍’을 걱정하고 말썽 많은 청문회 자체를 꺼리는 위정자들에게 청문회는 영원히 ‘조기에 서두르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역풍’ 걱정이 없는 국민 민중에게 조희대 청문회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아무리 빨리 한다고 서둘러도 그것은 늦은 것이다. 이들의 권력 오남용 혐의로 인해 이미 다소간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사실 전현희, 우상호, 김영진 등은 얼마든지 개인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권력구조적으로 이들의 사견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먹히는가 하는 데 있다.
지금처럼, 국민 민중이 벙어리가 되어 정치적 발언권을 갖지 못하는 구조에서는 이들의 사견이 민중의 뜻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희대 청문회에 반대하는 위정자를을 하릴없이 욕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다. 이들이, 사견의 범위를 넘어. 국민의 뜻을 왜곡할 수 없도록, 필요할 때 국민이 나서서 결정할 수 있는 국민발안에 의한 국민투표제도를 제도화해야 하는 것이다.
한겨레(2025.9.24.)에 따르면,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최근 사법개혁 관련한 당내 움직임에 대해 ‘국민 공감’을 강조하며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고 하고, 김병기(민주당 원내대표)가 조희대 청문회를 예고 없이 강행한 법사위원들에게 ‘경고성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또 한 수도권 재선위원은 “법사위가 보여준 모습에 당원들은 시원해 할지 모르지만, 중도층에서는 ‘오만해졌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수도권에서는 ‘정권 견제론’이 먹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했다 한다.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속도 조절론(늦추는 것)을 ‘국민 공감’인 것으로 미화하는 것은 불확실한 근거의 억측이다. 또 법사위의 사법개혁 및 청문회 개최 추진을 두고, 시원해 하는 민주당원과 ’오만‘하다고 평가할 중도층을 갈라치기 하는 것도 그러하다. 맞거나 말거나 무조건 질러놓고 보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국민 공감’과 ‘중도층 여론’을 자의적으로 해석 인용하는 이들에게 딱 하나 확실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행여 있을 수 있는 ‘역풍’에 대한 염려, ‘정권 견제론’이 형성되어 표 잃게 될까 하는 속내겠다.
청문회 개최가 이재명 사법 리스크 제거를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산다는 조갑제는 정치가 이재명 일신(一身)의 안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 양 착각하고 있다. 소견머리 좁은 조갑제의 조바심과 달리, 조희대 청문회는 사법개혁 및 거대 권력구조의 개편을 향하는 첫 단추가 되어야 하는 것이겠다. 거대 개혁은, 대의 권력이 태생적으로 갖는 한계로서의 역풍에 대한 염려, 여야 합의(야합) 등의 셈법을 초월하는 국민주권의 구체화를 통한 것이어야 한다.
국민주권의 구체화란, 위정자들이 편의에 따라 멋대로 해석 인용하는 ‘국민공감’, ‘중도층의 평가’ 담론을 압도하는 것으로서,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의 정치적 발언권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모든 권력의 원천으로서의 국민이 발안한 국민투표의 결과는 얄팍한 위정자들의 정략적 꼼수 계산을 초월하고, 급기야 헌법과 법률을 능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