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푸코 이야기5

-푸코 이해의 핵심적인 단서들

2025-11-06     김상천 객원편집위원

'모닝빵 같은 푸코'

 

이것은 1966년 뜨거운 여름 그의 대표적인 성공작 <말과 사물>(민음사)이 한창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갈 때 '누벨 옵세르바퇴르'지에 난 기사제목입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먼 <말과 사물>은 기본적으로 읽기 어려운 철학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먼 이는 놀랄 일도 아닙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한때 읽기 어려운 정치철학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날개 돋친 듯 팔린 시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엠비 이명박 정부 시절, 불의injustice한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부글부글 끓고 있을 시점이었습니다. 이렇게 인저스티스한 불의한 현실을 경험했을 때 이런 현실을 제대로 읽고 알려야 할 책임이 지식인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읽을 텍스트가 없다보니 외국의 텍스트로 우리를 읽을 수밖에 없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는 달랐습니다. 소프트 파워가 넘치는 나라, 프랑스는 지적 텍스트가 넘쳐났습니다. 루소, 사르트르, 알튀세르, 라캉, 데리다, 바르트, 들뢰즈, 푸코...

 

, 여기서 우리는 국민들은 난세에 처하게 되먼 마치 절망에 처한 실업자가 거울에 자신을 자주 비추어 보듯, 난세를 맞은 국민들은 철학의 거울에 자신들을 비추어 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머 철학은 존재에 대해, 어티케 사는 게 올바른 것인지 되묻는 정신의 북극성이기 때문입니다. 저 그리스 제국의 와해기에 인간 및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 고전을 낳고, 저 선진시기, 춘추전국시대라는 난세에 공자, 노자, 한비자 등 전무후무한 선진고경先秦古經들이 쏟아져 나왔듯이, 프랑스 또한 ‘68을 전후로 현대의 고전들이 은하처럼 쏟아졌습니다. 당시 프랑스가 프랑스적 분노French resentment로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 대체 잘 나가던 프랑스가 왜 위기를 맞았을까. 아니, 국민들은 왜 푸코의 인문철학서를 보먼서 거울 보듯 자신들을 들여다 보았을까.

 

프랑스가 위기를 맞고 급격한 변화의 계기를 가져오게 된 것은 '드골주의Gaullicism' 때문이었습니다. 드골은 프랑스 민족 우파를 상징하는 아이콘입니다. 잘 알다시피, 1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으로 호황을 누렸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에 나라를 앗기게 된 프랑스는 수년간의 전쟁과 패배로 푸코의 철학적 스승들이 고통을 겪었듯이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정신적 외상trauma을 입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드골이 영도하는-'/갈리아Gaul'은 우리가 단군족이라고 민족적 긍지를 지니고 국수주의의 마르지 않는 수원을 제공하는 것처럼, 프랑스 사람들 또한 자신들이 골족의 후예라는 민족적 국수주의를 강조하고 자신들은 갈리아인에게서 나온 후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하여 중국을 가리킬 때 ChinaSino가 따라붙는 것처럼, 'Gallic' 하먼 프랑스를 지칭하고 시사용어로 ‘Gallic welfarism’하먼 프랑스식 복지정책을 암시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시저의 <갈리아 전기>가 유명합니다-망명정부를 통해 항독전선을 구축하여 프랑스 민족주의의 구심점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에 의한 완전 패배, 증오할 적군의 점령, 프랑스 정부를 파산지경에 이르게 한 독일의 경제적 수탈, 프랑스군과 레지스탕스의 경탄할만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영국군의 무력에 의한 해방, 민중의 반란을 규합하고 알제리, 인도차이나 등 식민지 제국을 유지하려는데 따르는 중대한 난관 등, 이 모든 처참한 몰골의 와중에 우리는 왜 일제치하에서 민족주의가 강력한 힘을 얻었던 것처럼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민족적 이미지의 드골(주의)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봅니다.

 

그러나, 한때 '프랑스의 건설nation building'이라는 국가적 과제가 요청되는 시대 현실에서, 더구나 미국과 영국의 손길에서 벗어나 원자폭탄 실험을 결행하고 독자노선을 걷는데 따른 프랑스적 정체성의 형성과 유지에 내부의 혼란을 딛고 강력한 정부의 필요성에서 그가 필요했지만, 아래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아버지로 상징되는 드골의 이미지는 지난 시대의 권위와 질서를 대변하먼서 그는 오히려 변화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In France, the enemy of change was the government of President Charles de Gaulle"(2018, 5, 7 뉴욕타임즈)

 

다음 사진을 보먼 왜 프랑스가 변화의 걸림돌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롤랑 바르트의 <신화론>에서 언급된 유명한 장면으로, 여기서 파리마치표지가 말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한 흑인 소년 병사가 프랑스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는 형식이 아닙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프랑스는 위대한 제국이다France is a great empire'라는 새로운 내용을 읽어 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는 단순히 한 흑인 소년 병사가 프랑스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는 사실만도 아니고, 프랑스는 위대한 제국이라는 의미만도 아닙니다. 위 사진에는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다시 말해 지배 권력의 이데올로기가 재현되어 있고, 그리하여 알제리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식민 지배를 계속해서 정당화하려는 제국주의 신화가 하나의 대중적 기만이라는 거짓 기호의 형태로 조작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먼 신화의 목적은, 특히 우파 신화의 목적은 바로 세계를 고정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프랑스가 전후의 혼란과 무질서, 고통을 극복하고 민족주의 신화를 넘어 제국주의적 오만으로 다시 넘치기 시작하먼서 국민적 통제와 규율 또한 넘치게 되었고, 그것은 우파 대중지 <파리마치>에 볼 수 있듯이 대단히 교묘한 방식으로의 통제와 규율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제도화된 형식으로, 이런 제도화된 형식들을 다루는 지식의, 앎의, 분류의 형식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 근대의 철학은 분류학이지 않은가. 분류는 차이의 철학입니다. 차이의 전제는 늘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자아에 의해 밀려난 너, 타자는 죽어도 상관없다는 모럴을 내면화 합니다.

 

도 그중의 하나였습니다. 즉 근대적 규율과 모럴에 따라 남녀의 성은 철저히 구분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그 무엇인가의 기준으로 야, 이년아! 너는 여자잖아, 너 또한 별 수 없는 시골뜨기가 아니냐, , 그리고 너 빵점짜리...하고 중심과 주변을 구분, 분류하고 재생산하고 재현하는 모방 코스프레는 죽음의 서사이지 생명의 서사가 아닙니다. 이렇게 숨막힐 듯한 이성 중심의 관료적 지식통제의 근대사회의 모럴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역시 젊은 학생들이었습니다.

 

사실 애시 당초 ‘68혁명의 도화선이 된 게 대학가에서 남학생들이 여학생 기숙사에 방문하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즉 성 문제, 성 모럴, 사회적 금기에 대한, 권위에 대한 19세기적인 사회문화적 억압-그런 점에서 푸코는 들뢰즈의 지적처럼 20세기 인간이었습니다-에 대한, 결국 이런 것을 가능케 하는 지적 기제intellectuall mechanism에 대한, 일상화된 근대문명 전체에 대한 신화적 미망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는 계기가 '68을 발화시키는데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인식 가운데 다음 패러그라프 또한 그 명증한 언어를 얻었다 할 것입니다.

 

거기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일상성을 다시 포착해야 하고, 그것도 아주 능동적으로 포착하여 일상성을 변형시켜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그 안에 언어의 창조를 내포한다. 일상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 그것은 벌써 일상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그것을 변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일상을 변형시키는 것, 그것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고, 이 새로운 것은 또 새로운 말들을 부른다.

-앙리 르페부르, <현대세계의 일상성>(1967), 기파랑

 

사실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 없는 게, 푸코가 젊은 시절 스웨덴 행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도 바로 풍미하고 있던 당시의 분위기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항상 프랑스의 사회적 문화적 삶의 어떤 부분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것이 내가 1955년에 프랑스를 떠난 이유이다" 라고 자신의 스웨덴 행을 설명했는데, 여기 '어떤 부분'은 근대적 이성관에서 동성애자를 터부시하는 신념이 스며든permeated 당시 프랑스의 사회문화적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억압이자 콤플렉스로, 아니 더 정확하게는 사회문화적 금기에 대한 도전으로 왜 그가 광기madness’sex’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러니까 마르크스의 계급과 프로이트의 무의식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사회의 억압과 이에 대한 반 억압으로 일기 시작한 변화의 심급에서 왜 우리가 푸코를 다룰 수밖에 없는지, <사회계약론>을 비롯한 일련의 루소의 저서들이 프랑스 혁명의 이념이 되었듯이, 왜 그를 비롯한 수많은 저서들-앞에서 든 바르트의 <신화론>이 나온 것도 1956년으로 프랑스 병적 징후가 벌써부터 예리한 지성들에 의해 포착되고 있었던 것입니다-‘68의 이념적 발원지이자 혁명의 불쏘시게가 되었는지를 봅니다. 그리하여 프랑스 대혁명이 왕정으로 상징되는 봉건사회의 질서와 권위를 무너뜨렸듯이, 2의 프랑스 대혁명이라 할 ‘68'드골' 또는 '3p'-고용주patron, 아버지pere, 선생professeur로 상징되는 근대사회의 신화적 질서와 계층적 권위를 뒤집어 놓았던 것입니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말(인용자-<안티 오이디푸스>를 말함)처럼 근대적 주체가 부권적 규범을 내면화시키는 오이디푸스화에 의해 성립한다(가라타니 고진,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민음사)고 본 것처럼, 그러니까 ’68을 겪고 1972년에 나온 들뢰즈/가타리 공저의 <안티 오이티푸스>의 부제가 자본주의와 분열증인데, 이것은 하나의 상징으로 마르크시즘과 정신분석학이 프랑스라는 공간에서 비판, 지양, 극복되먼서 집단도 아니고 개인도 아닌 프랑스적 사회성을 지닌 프랑스 철학이 탄생하는 탈근대철학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거작의 서문을 푸코가 썼는데, 그 제목이 -파시스트적 삶의 입문서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무엇보다 개인의 사회적 가치를 냉대하는 파시스트적 집단적 가치에 대한 전복적 의미를 지녔다 할 것입니다. 근대 문화는 이처럼 이성적 자아에 대한 하나의 타자로 광기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것은 하나의 이성-중심적 질서라는 분류학에 의해 특징지워졌던 문화로서의 아버지의 권위적 문화, ‘P계열문화였다 할 것입니다.

 

-프랑스 '68혁명 50주기 기념 <뉴욕타임즈> 기사에서 캡쳐(2018.5.7)

 

그러나, 다음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The established hierarchy and formality that permeated relationships between teachers and students, parents and children, bossses and workers, and ultimately even politicians and citizens, had been upended”

 

19685, 프랑스는 마치 풍랑을 만난 배가 뒤집히듯이 격변을 맞은 프랑스 사회는 근대 사회에서 현대화된 사회로 급격히 변환되었upended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2의 프랑스 혁명이 전대의 대혁명과 같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제2의 프랑스 대혁명이 주목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정치적 혁명이 아니라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혁명이기 때문입니다.

 

“It was not a political revolution in the way that earlier French revolutions had been, but a cultural and social one that in a stunningly short time changed French society”

 

오늘, 우리가 이런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전후한 문화적 철학적 유산을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는 이런 것은 비단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성폭력sex abuse’을 비롯 다음에서 볼 수 있는 한국형 갑질Korean bossing’ 폭력 등은 인계철선처럼 건드리먼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누적된 사회적 이슈가 아닌가 말입니다. 특히, 여기 '갑질bossing'이란 지가 최고인줄 알고 이래라 저래라 사장처럼 구는 짓을 비아냥대고 비꼬아 대는, 아직도 전근대적인 봉건문화를 청산하지 모한 우리 사회의 낡고 뒤떨어진 관행으로서의 이른바 '꼰대' 문화를 비튼 사회 용어입니다.

 

한국 재벌의 가족 경영이 낳은 조현민 갑질

 

조양호 한진 회장의 둘째 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갑질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땅콩 회항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첫째 딸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에 이은 자매의 갑질 행태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는 것이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는 갑질 재벌 가족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조 전무는 지난달 대한항공 광고대행 업체와 회의를 하다 담당 직원이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자 고성을 지르고 물이 든 컵을 던졌다고 한다. 조 전무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어리석고 경솔한 행동에 대해 사과드린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연차휴가를 내고 해외로 출국해 사과의 진정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조 전무의 갑질행태를 폭로하는 이른바 조현민 만행 리스트가 인터넷에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조 전무가 회사 직원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일삼았다는 폭로에서부터 1년에 3~4번 팀장급 직원을 교체하는 인사전횡을 저질렀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나이 든 간부에게 반말은 예사였다고 한다. 매년 직원들이 그를 위해 생일준비위원회를 꾸렸다는 증언도 나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한항공 조현민 갑질 엄중 처벌’ ‘국적기 칭호 박탈을 요구하는 글이 게시됐다. 민중당은 13일 특수폭행 등의 혐의로 조 전무를 검찰에 고발했고, 경찰은 내사에 착수한 상태다.

 

조 전무는 입사한 지 6년 만에 상무로 승진하며 국내 최연소 대기업 임원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 그는 2014땅콩 회항사건 때 언니인 조현아 사장이 비난을 받자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국내 재벌 3세의 일탈행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조 전무의 갑질 행태는 직원에게 군림하려는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그릇된 의식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경영능력은커녕 인간관계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성조차 갖추지 못한 자녀들이 아버지의 사유물처럼 된 회사를 지배하는 것이 21세기 대기업의 경영 방식인지 의문이다. 조양호 회장은 땅콩 회항사건 때 자녀교육을 잘못 시켰다고 머리 숙여 사죄한 바 있다. 그러나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은 자녀교육의 문제가 아닌 한국 재벌 지배구조의 왜곡이 낳은 사회문제다. 재벌 경영세습의 적폐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는 일이다.

 

-2018. 7. 14 경향신문 사설

 

여기, 첫문장 '조양호 회장의 둘째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갑질논란이~'가 바로 사실의 개념화 부분입니다. 다음, 셋째단락 끝부분 '재벌 3세의 일탈 행위는~그릇된 의식구조를~'가 가치화 부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재벌 경영 세습의 적폐를 청산하지 않고서는~'이 정책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설은 결국 다음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회의 도중, 광고업체 직원에게 고성을 지르고 물컵을 집어던지는 등 조양호 한진 회장의 둘째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갑질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조 전무의 갑질 행태는 재벌들의 일탈행위로 직원에게 군림하려는 그릇된 의식구조다. 따라서 재벌 일가의 왜곡된 갑질문화와 세습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 그럼 인자부터 ‘68이 어티케 프랑스 사회를 놀랍도록 짧은 시간에in a stunningly short time 급격하게 변화시켰는지, 푸코적 인식론과 고고학적 문화광산의 두더지굴 속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가 보것습니다.

 

 

인자부터 본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