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적과의 동침 12 : 文人이나 文魚에 버금가는 위상
12. 文人이나 文魚에 버금가는 위상
녀석들은 그러면서 대놓고 휴머니즘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모기 멸종을 찬성하는 학자들의 주장에 열이라도 받은 것일까? 그 알량한 휴머니즘이라는 것은 오직 인류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적인 발상이라며, 휴머니즘이라는 미명하에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으며 지구가 파괴되고 있는지 도대체 알기라도 하냐고 힐책하는 것이다. 녀석들의 주장에 따르면 휴머니즘은 지구 파괴주의라는 말과 동의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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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한겨레21 /
모기는 왜 ‘목숨 걸고’ 앵앵대나요(http://h21.hani.co.kr/arti/reader/together/27900.html?)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녀석들이 휴머니즘에 반론을 제기할 정도로 세상 문리에 밝다는 말인가? 녀석들의 기원을 살펴본다. 녀석들의 기원은 이름과 명칭이다. 인간들이 붙인 이름. 한글로는 모기요, 영어로는 mosquito이고, 한자로는 모기 문蚊이다.
한글의 모기는 세종 때 수양대군이 지은 《석보상절》에 '모’라는 형태로 처음 등장한다. 그러다가 16세기부터 ‘모긔’로 바뀌기 시작하고 지금은 ‘모기’가 되었다. 모기의 어원은 대체로 두 가지 해설이 회자되고 있다.
먼저, 모기는 로지어 moki로서 도주자 (traitor, deserter, rat)의 뜻이니, 가장 경멸스럽고 저주스러운 단어를 의미한다는 해설이다. 이 해석은 우리말이 유라시아에서 최고로 오래된 언어로서 원시 아프리카의 초기 언어에서 기원하였다는 가설에 기초를 두고 있다. 로지어도 원시 아프리카 언어라고 하는데 생소한 언어이다. 수메르 기원설은 들어봤어도 원시 아프리카어 기원설은 낯설다. 아마 수메르 이전의 최고대 시기를 설정한 듯한 데 어디까지나 가설이요, 주장일 뿐이다.
다음으로는, 고어로 풀이하는 해석인데 역시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모기는 한국 고어로 [모+긔]이며, 벌레의 조어造語인 [hi]라는 동음同音에서 기원하여 [모]와 [긔]가 합성되었다는 것이다.
벌레의 조어造語 [hi->bi] [벋;虫-->벌-->버리-->버이--> 븨, 베, ba]에서 [ba-->ma;虫]로 변하여 [모]가 되었고, 벌레의 造語 [hi->ki] [갇;虫-->갈-->가리-->가이-->긔,개, 가]에서 [긔;虫]가 되었다. 이 둘이 합쳐 [모+긔]가 되었다는 것이다.
조어造語란, 이전에 없던 새로운 말을 만들었거나 실질 형태소에 다른 실질 형태소나 여러 가지 접사를 결합하여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일 또는 그렇게 해서 만든 말이다.
이음동의어의 합성이라는 주장도 있다. 모기라는 곤충에 대해 [모]라는 호칭을 사용하던 부족이 [가]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부족을 정복하였는데, 피정복 부족이 정복 부족에게 동화되는 과정에서 모음 변이 현상으로 인해 이음동의어 [모+가]가 [모+기]가 되어 한국어가 되었고, [가]를 사용하는 피정복 부족의 일부가 일본으로 도일하여 일본어로는 [긔]-->[가;蚊]이 형성 되었다고 한다. 두 부족은 신라와 백제를 두고 말하는 것일까? 어찌되었든 이 해석은 억지춘향격으로 짜 맞춘 듯한 느낌이 든다.
로지어로 해석한 것보다는 고어로 푸는 해석, 그 중에서도 [모+긔]의 합성이라는 해석이 좀 더 과학적이고 근거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석보상절》에 나오는 ‘‘모’가 16세기부터 ‘모긔’로 바뀌게 되었다는 설명과도 부합한다. 그러나 이들 중 그 어느 해석도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바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영어의 Mosquito라는 단어는 스페인어로 "작은 파리"란 뜻이다. Mosc가 파리란 말인데 거기에 ’작다’라는 뜻의 접미사 - ito- 가 붙어서 모스키토가 되었다. 한글의 모기는, <Mosquito 모스키토 →모스킷 →모오킷 →모키 →모기>가 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근거는 없다. 모스키토라는 말은 15세기경 스페인에서 일본을 거쳐 들어왔을 것인데 이 가설이 성립하려면, 그 이전에는 한반도에 모기가 없었다는 말이 된다. 발음상으로 그럴듯하게 연관성이 있어 보일 뿐 역사적으로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 가설이다.
의미가 있는 것은 한자의 모기 문蚊이다. 한자(漢字)의 기원에 관해서는, 중국의 전설적인 왕인 황제(黃帝)가 나라를 다스리던 때 사관을 지낸 창힐(倉頡)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설과 원시 그림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창힐이 사물의 모양이나 짐승의 발자국을 본떠 한자를 만들었다고 하나 그토록 많은 수의 한자가 한 사람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고대 문자로는, 이집트의 신성문자가 있고, 고대 바빌로니아인의 설형문자, 고대 인도의 팔라와문자와 카로슈티문자가 있으며, 중국의 한자가 있다. 비빌로니아의 설형문자는 수메르인들이 만든 문자로 아카디아어, 엘라마이트어, 히타이트어, 후리아(우랄어)에도 쓰였으며, 고대 페르시아와 우가리트 문자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오래된 문자 중 한자만이 유일하게 아직까지 사용된다. 한자는 각각이 한 폭의 그림과 흡사하며, 중국민족의 지혜와 문화를 담고 있다.
한자의 초기 형태들은 그림을 방불케 하는 것들이 많지만 수만 자에 달하는 한자 가운데 그림과 상관성이 높은 이른바 상형(象形) 문자는 기껏해야 400~500자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한자들은 역사적으로 계속 생성되었으며, 모기 蚊도 그런 과정에서 천지의 원리나 자연의 섭리를 연구하고 관찰한 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모기 蚊은 벌레 훼虫와 글월 문文이 합쳐서 만들어졌다. 벌레 훼虫 셋이 모이면 벌레 충蟲이 된다. 蟲은 곤충을 비롯하여 기생충과 같은 하등 동물을 두루 이르는 말이고, 회충과에 속한 기생충을 일컫기도 한다. 그런데 모기 문蚊에 글월 文이 들어갔다고 함은, 벌레虫중에서 글 꽤나 읽을 줄 아는 놈이 모기라는 말이다. 한 마디로 똑똑한 곤충이라는 말이다.
다른 예도 있다. 국제경기의 승부를 알아맞히곤 하여 인기를 끌었던 게 문어였다. 말하자면 동물 중에서 가장 총명하고 예지력이 있는 물고기를 문어로 치는데, 문어에도 글월 문文이 들어가 있다. 문어는 한자로 文魚이다. 즉 물고기 중에서 글줄이나 쓸 줄 알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안다고 여겨지는 동물이 文魚라는 것이다.
(반면에 모기라는 한자어도 있다. 모기耄期는 여든 살에서 백 살까지의 나이를 말하는데, 모(耄)는 80~90세, 기(期)는 100세를 이른다. )
사람은 어떠한가? 한자로 인간이다. 인간 중에서 글줄이나 쓰는 사람을 文人이라 일컫는다. 문예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학문으로 입신하고 출세한 선비 혹은 시인이나 소설가, 평론가 등을 이른다. 옛날로 치면 양반이나 선비가 문인이고, 서양에서는 귀족 계급에 해당된다. 세상 이치를 알고 글로 표현할 줄 아는 존재가, 사람일 경우 文人이요, 물고기일 경우 文魚이며, 곤충일 경우 蚊이다. 모기가 곤충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文魚와 蚊은 외관상으로 차이가 있다. 文魚는 글월 문文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물고기임을 밝히는 魚를 옆에 붙여 두 글자로 만들었다. 文人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모기 문蚊에는 벌레 훼虫를 글월 文과 같이 넣어 한 글자로 만들었다. 모기를 문어보다 한 단계 격을 낮춘 것이다. 만약 모기에게 예우를 갖춰 문어처럼 한자를 만들었다면 문훼文虫가 되어야 마땅하다. (참고로 파리의 한자어는 승蠅이며, 파리의 모습이 연상되는 한자이다)
그러나 고대 지혜를 갖춘 선인들도 모기를 마땅찮게 여기긴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래서 문훼文虫라거나 훼문虫文이라 하지 않고 그냥 합쳐서 蚊이 된 것이다. 말하자면 모기에게는 두 글자도 아깝다는 것이다. 등치도 문어에 비할 바 없이 초라할 뿐더러 하는 짓이 얄밉기까지 하다. 녀석들의 민첩함과 총명은 인정했으되 사람을 물어 가렵게 만드는 밉살스런 짓거리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문자에 반영한 것이리라.
<계속>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