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 옴부즈만’ 제도를 도입해서 시민사회가 군대를 감시해야
김도현 일병은 2024년 11월 25일 북한 침투 대비 훈련 도중 순직했습니다. 윤석열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직전입니다. 경사가 35도에 이른 강원도 가파른 야산에서 37kg에 이르는 통신 장비를 옮기다 발생한 참사였습니다.
비극의 시작은 무거운 통신 장비를 짊어지고 산에 오르기 시작한 지 1시간 뒤에 발생했습니다. 상급자인 운전병(상병)이 12kg 통신 장비를 옮기다 다리를 다쳤습니다. 운전병은 운동화를 신고 통신 장비를 옮기다 다리가 삐었습니다. 본래 훈련 수칙에 따르면 운전병은 훈련 도중이라도 차량에 대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훈련을 지휘해야 할 선탑자(중사)가 자신이 차량에 남고 대신 운전병에게 산행을 명령했습니다. 훈련 지휘자이자 선탑자인 중사는 차량에 머무르며 전화하거나 게임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무거운 통신 장비를 지고 10시 5분 등산을 시작한 운전병은 1시간 뒤 사고를 당했습니다. 사고 이후 운전병이 옮기던 통신 장비는 김도현 일병에게 넘겨졌습니다. 인솔자 하사는 운전병 사고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사고를 당한 운전병과 김도현 일병을 그대로 남겨둔 채 다른 병사 한 명과 산에 올랐습니다. 하사 자신도 12kg 통신 장비를 옮기던 중이었습니다. 김도현 일병은 자신이 짊어진 25kg 통신 장비와 운전병 12kg, 두 대의 무거운 통신 장비를 떠안은 채 등산을 계속했습니다.
37kg 통신 장비를 한꺼번에 짊어지고 가파른 야산을 오르기엔 너무 힘든 상황이었지요. 결국 김도현 일병은 자신이 짊어진 25kg 통신 장비를 산 위로 조금 먼저 옮겨 놓고 다시 내려와 운전병의 12kg 통신 장비를 옮기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무거운 장비를 몇 차례 옮기던 도중 경사가 심한 곳에서 김도현 일병이 추락했습니다. 10시 5분에 훈련을 시작한 지 3시간 30분이 지난 1시 36분에 하사가 사고를 인지했습니다. 그리고 2시 29분 사고를 당해 쓰러져 있던 김도현 일병을 발견했습니다.
하사는 119 구급대에 먼저 연락하고 나중에 보고해야 함에도 중사의 지시대로 먼저 상급자인 소대장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난 3시 30분에 군 의무종합센터에 사고를 신고했습니다. 결국 4시 46분 군 헬기가 사고 현장에 도착하고 5분 뒤 4시 51분 김도현 일병은 심정지 상태에 빠집니다. 그러나 김도현 일병의 안전을 책임질 군부대 지휘관은 심정지 상태인데도 4시 56분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김도현 일병이 다리를 다쳤다며 거짓으로 알렸습니다.
4시 46분 뒤늦게 도착한 군 헬기는 설상가상으로 로프가 나뭇가지에 걸리면서 환자 이송에 실패합니다. 그리하여 5시 45분 강원도 소방헬기가 다시 사고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추락한 김도현 일병을 발견한 지 4시간이 다 되어가는 6시 20분이 되어서야 김도현 일병을 병원으로 이송합니다. 이송 당시 김도현 일병은 DOA(Dead On Arrival) 상태였습니다. 사망한 상태로 병원에 도착한 것이지요. 도착한 지 9분 뒤 원주 세브란스 병원은 김도현 일병에 대해 사망 판정을 내렸습니다. 내부 출혈은 둘째치고 병원 도착 당시 온몸이 차갑게 식은 저체온 상태였습니다.
11월 하순, 그것도 강원도 홍천군 아미산에서 무려 4시간을 방치한 결과였습니다. 산림청 소방헬기 관련자는 사고 발생 접수 후 30분이면 사고 현장으로 출동해 구조활동을 벌인다고 증언했습니다. 병사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중시하는 대한민국 군대라면 있을 수 없는 참사였습니다. 병원 의사 역시 신장 파열의 경우 1시간 이내 병원에 도착하면 거의 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인솔자 하사가 김도현 일병을 발견한 2시 29분 즉시 119에 먼저 신고만 했더라도 김도현 일병은 살 수 있었습니다. 왜 ‘선조치 후보고’를 이행하지 않았는지 참으로 원통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무리 계급 사회이고 권위주의 조직 문화가 강고한 군대 집단이더라도 인간 생명 앞에선 그 무엇도 우선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글쓴이가 40여 년 전 군 생활할 때 사병을 소모품 취급했던 게 당시 군대 문화였습니다. 장교나 부사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처지였지요. 군부대에서 죽어도 병참 10종으로 분류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참고로 1종은 전투식량이고 2종은 전투복이었으니 군인 시체를 맨 끝에 두고 하찮은 물건 취급했습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엔 매년 1,000명 정도 사망했습니다. 절대다수가 사병들이었지요. 북한과 전투 상황이 벌어진 것이 아님에도 군기 사고와 안전사고로 20대 초반 청년들이 매년 1,000명씩 죽어 나갔던 시절입니다. 대부분 군대 내 폭력, 얼차려, 총기 자살 등 군기 사고였습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엔 700명씩 매년 죽어 나갔습니다.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민주화 바람이 군대에도 영향을 미쳐 군 인권 상황이 아주 조금씩 개선되었습니다. 그 결과 90년대엔 군 사망사고가 매년 300명으로 감소했지요.
1999년 해군 함정 갑판에서 쇠 파이프로 얼차려를 받던 김의건 군(서울대 천문학과 3년)이 의식 불명 상태에서 서울로 긴급 이송 중 사망했습니다. 밤하늘 별을 보던 것을 동경해 일부러 해군을 지원한 청년이었습니다. 의롭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자를 부여받은 김의건 군은 너무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인권 대통령으로 인정받던 김대중 정부는 군기 사고가 발생할 경우, 지휘자가 진급할 시에 불이익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조치는 경찰조직처럼 계급정년제가 적용되던 군대에서 구타와 가혹한 얼차려가 일거에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군대 문화가 한순간 변하기 시작했지요. 구타와 괴롭힘 등 군대 내 폭력이 급감하여 2000년대부턴 군부대 사망자 가운데 상대적으로 자살로 처리된 통계 수치가 50%를 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2000년대 군대 사망자 수가 매년 100명 대로 감소했습니다. 2014년 윤승주 일병 참사 이후 오늘날까지 군 사망사고는 매년 거의 100명 이하로 대부분 자살이 원인입니다.
아직도 대한민국 군대엔 황국 식민 군대의 잔재가 뿌리 깊게 남은 탓이지요. 적과 교전 중이 아님에도 왜 멀쩡한 20대 초반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일까요? 저출산으로 병력 자원이 예전 육군 60만 군대에서 2019년 42만 군대로, 다시 2025년 32만 군대로 급격히 줄었는데도 아직도 생명을 귀히 여기는 인간 존중의 군대 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한 탓입니다. 독일처럼 ‘군 옴부즈만’(Ombudsman) 제도를 도입해서 시민사회가 일상에서 공적 기구인 군부대를 감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18c 근대국가의 산물인 징병제 자체를 철폐하고 모병제로 즉시 전환해야 합니다. 전 세계 국가의 1/4만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도 현대국가에선 모병제가 정답입니다. 직업군인으로 군 병력을 충당한다면 청년층 일자리도 크게 늘고 동시에 경제활동인구도 늘어나 GDP 등 경제 규모 또한 늘어납니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엔 병력 자원이 넘쳐나 징병 신체검사를 받은 장정 절반이 현역으로 가질 못했습니다. 조금만 몸에 이상이 있어도 6개월 방위병으로 빠져나갔던 시절이었습니다. 병역 비리까지 생각하면 이명박, 윤석열, 이재용이 자연스레 군 면제 대상이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러함에도 70년대엔 매년 1,000명씩, 80년대엔 매년 700명씩 신체 건강한 청년들이 군대에서 죽어 나갔으니 그 시절은 정말 폭력이 난무한 야만의 시대! 그 자체였습니다. 구타로 맞아 죽어도 신병을 비관한 자살로 처리하거나 총기 사고로 대충 덮어버린 사건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른바 군 의문사가 상존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이젠 21세기 100명 이하가 아니라 단 한 명도 군대에서 죽어선 안 됩니다.
2021년 고 이예람 중사 성폭력 사망사고 이후 2022년부터 군 사망사고 발생 시 군사경찰이 아니라 일반 경찰이 수사하도록 개정된 군사법원법이 시행되었습니다. 2023년 채수근 일병의 원통한 죽음도 그 진실을 밝혀낼 수 있던 배경이지요. 물론 박정훈 대령 같은 참군인이 존재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냥 군대 내 훈련 중 사망 처리하며 덮거나 은폐하던 과거 관행이 이젠 불가능한 시절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심성이 아름다웠던 김도현 일병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김도현 일병이 부디 하늘에선 평화와 안식을 누리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슬픔과 고통 속에서 오늘도 힘들게 사시는 부모님을 하늘에서 보살펴 주길 기원합니다. 다시 하늘에서 만나면 부모님을 가슴으로 꼭 안아주겠지요.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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