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내가 무쳤어 (2010. 12. 18)
“이거 맛있는데……."
어젯밤에 저녁 식사 중이던 아내가 포항초를 먹으면서 말합니다. 그러자 다향이가 냉큼 말을 받습니다.
“엄마, 이거 내가 무쳤어.”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나오는 걸 겨우 참아냈습니다. 아내가 말합니다.
“정말? 맛있게 잘 무쳤다 야.”
아내가 자신보다 낫다는 표정으로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겨우 참아내던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다향이가 발끈하며 말합니다.
“내가 무친 거 맞잖아?”
“그래. 누가 아니라고 그랬어?”
“…….”
다향이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자신이 나물을 무쳤다고 이야기하는데 아빠가 왜 웃을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밥을 먹던 아내가 젓가락으로 포항초를 들고 묻습니다.
"이거 정말 다향이가 무쳤어요?"
"그럼요. 다향이가 무쳤지. 양념과 간은 내가 맞추고, 조물락 조물락 무치는 건 다향이가 다 했어요."
대답을 들은 아내가 웃습니다.

요즘 아내가 담백한 반찬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제도 포항초랑 날배춧국을 준비했습니다. 멸치랑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된장을 풀어서 날배추국을 끓였고, 포항초도 준비했습니다. 다향이도 분명히 애를 썼습니다. 포항초를 다듬고, 포항초에 묻은 흙을 세척하고 했지요. 다향이! 찬물에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면서도 싫어하지 않고, 맡은 일을 해내는 대견한 아이입니다.

△배반의 시간 (2011. 1. 7)
그림 수업을 들으러 가려고 아침에 아내를 회사에 출근시켜줬습니다. 한 대뿐인 자동차를 사용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지방은 버스가 일찍 끊기거든요. 아내가 6시 30분경에 퇴근해서 다향이를 돌봐주기로 약속했습니다. 다향이가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제주시를 넘나들면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싫다고 합니다. 그럴만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빠를 비롯한 어른들의 그림 수업이 다향이한테는 지루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다향이를 집에 홀로 남겨두는 것에 대한 보상 심리로 낮에는 영화관까지 다녀왔는데 눈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말았습니다. 길이 막혀서 제주시에서 진행되는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아내를 데리러 회사로 갈까? 먹을 게 없으니까 얼른 집에 가서 반찬을 만들까?’ 생각하는데 직원 차로 퇴근을 한다고 합니다. 마트로 가서 돼지고기 안심과 피망, 버섯, 골뱅이, 맥주 한 병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컴퓨터가 있는 건넛방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습니다.

‘요놈 봐라’ 싶은 생각이 듭니다. 엄마가 돌아오기 전까지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고 있으라고 했는데 컴퓨터를……. 문을 두드리는 대신에 열쇠로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니까 후다닥 달려 나오는 다향이. 컴퓨터 화면은 바탕화면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갑자기 맥이 빠지면서 상실감이 밀려옵니다.
“다향아, 너 할일이 있었는데 왜 컴퓨터를 하고 그래? 그리고 컴퓨터를 쓰고 싶으면 얘기를 하지 왜 몰래 해?”
“…….”

아빠가 컴퓨터 사용하는 걸 싫어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네가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mp3에 음악을 다운받거나 할 때 아빠가 못하게 한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합니다. ‘네가 할 일을 한 다음에 갖고 놀라고 했지?’ 했더니 아빠가 연예인 기사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합니다. '나는 아이의 자유를 억압하는 나쁜 아빠인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늘 의견을 먼저 물어보며 존중하려고 애를 쓰건만 다향이가 느끼기에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얘기를 나누는데 집을 나서기 전에 컵에 따라준 보이차가 싸늘하게 식어 있습니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 따뜻한 차를 마시라고 내려준 것인데…….  

소녀시대, 소녀시대, 소녀시대……. 기회가 되면 소녀시대 콘서트에 보내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콘서트는 아니지만 소녀시대가 출연하는 공연도 두 번이나 보여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향이의 머릿속은 소녀시대로 가득 차서 '배반의 시간'을 잉태하는 모양입니다. 그럴 나이기는 해도 눈만 뜨면 소녀시대에 관한 얘기를 하니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입니다. 

△투덜대는 다향이 (2011. 5. 24)
옆 마을인 가시리에서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4-5년 전에 찾았을 때만 해도 순대와 돼지고기로 유명했던 작은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동네가 들썩들썩하니 사람 사는 냄새가 납니다. 

다향이가 그곳의 어린이 영화 교실에 다니고 있습니다. 뒤늦게 소식을 접했고, 영화를 꽤 많이 본 -찰리 채플린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은 물론 '왕과 나', '로마의 휴일' 등까지 섭렵해서 오드리 햅번을 좋아하는- 다향이가 재미있어 할 것 같아 논의 끝에 등록했습니다. 

가시 마을 아이들은 처음부터 수업에 참여했지만 다향이는 세 번째 수업부터 참여를 했습니다. 그런데 첫 수업에 다녀와서 투덜거립니다. 선생님이 자신에게만 이야기를 만들어 오라고 했답니다. 그것도 두 편씩이나. “네가 수업에 늦게 참여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수업을 다녀와서 또 투덜거립니다. 자신이 써 간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구어체로- 다시 써오라고 했답니다. 문어체와 구어체에 대해서 설명을 해줬습니다. 그런 분류는 이미 낡은 것으로 별 의미가 없지만 시나리오에서는 필요할 수 있겠다 싶어서 그림책을 읽으면서 알려줬습니다.

겨우겨우 어렵게 과제물을 해갔습니다. 하지만 다향이 스스로도 대견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투덜거립니다. 선생님이 그 이야기에 맞는 그림들을 열 편 이상 그려오라고 했답니다. 다른 아이들한테는 아무런 과제물도 주지 않고, 자신에게만 연거푸 내주는 과제물이 불만인 듯싶습니다. 

그러면서 그림의 장면 장면에 어울릴 만한 음악을 피아노 반주로 녹음까지 해오랬다고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다향이의 재능을 발견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여자아이가 한 명 뿐이니 믿고 맡기는 건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만두겠다는 말은 하지 않기에 덕담을 해줍니다.

“야, 선생님이 네 재능을 알아봤나 보다. 그러니 영광으로 알고 열심히 해봐. 넌 지금 각본도 쓰고, 미술과 음악 감독 일까지 몽땅 다 하는 거잖아. 그런 소중한 기회가 왔을 때 열심히 해서 네 작품을 만들어보면 좋겠다. 그리고 나중에 영화감독이 되면 아빠도 한번 출연시켜 줘. 구멍가게 주인으로 나와서 ‘이 아이스크림 얼마에요?’ 하고 주인공이 물으면 ‘700원이요’ 하고 대답하는 역할이라도 괜찮아.”
“그게 뭐야?”
“그런 단역이라도 영화에 없어서는 안 되는 거니까.”
"……?"

오성근 주주통신원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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