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향이의 열정에 불붙이기 (2011.7.3)
재미있지만 결코 쉽지 않은 프로젝트를 다향이랑 진행하고 있습니다. 혼자 하라고 했거나 동기부여가 확실하지 않았더라면 다향이가 발심을 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우상인 소녀시대를 동기로 부여하고, 아빠가 공동 작업에 매달리니 좋아합니다. 지난 며칠 동안 하루에 두세 시간씩 일을 했습니다. 작업을 진행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함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고, 그래서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다시 일하기를 반복했지요.

어제는 온종일 붙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처음엔 쉽게 집중하지 못하고, 겉돌던 아이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곧잘 아이디어도 내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수정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목표했던 일의 양이 조금씩 늘어날 때마다 뿌듯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다향이를 보면서 대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지난 몇 달 동안 홈스쿨링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했구나! 생각해 보니 둥구나무로 이사 와서는 함께 그림을 그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10년 가까이 수영을 해왔지만 표선에는 수영장이 없으니까 대신 승마를 하기로 했는데 경제적· 시간적 이유로 아직 시작을 못 했습니다.

집 공부든 학교공부든 혼자 하라고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옆에서 함께 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걸 다시 깨닫습니다. 도와주라는 게 아니라 엄마·아빠가 아이의 일에 관심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랜만의 공동 작업을 계획대로 마치고, 그 결과 또한 좋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지난 4년 동안의 집 공부로 내공을 쌓은 다향이가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을 믿기에 그런 희망을 가져봅니다.

△아빠가 사전이야 (2011.8.10)
다향이에게 방학을 줬습니다. 방학식만 하고 여전히 학교에 다니는 방학이 아니라 온종일 뒹굴뒹굴해도 간섭하지 않는 진정한 방학입니다. 여전히 실컷 자고, 먹고, 놀면서 판타지 동화인 ‘타라 덩컨’에 푹 빠져서 지냅니다.

아침저녁으로 풀도 뽑고, 반찬도 만들고, 틈틈이 장작도 패지만 한낮에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같이 책을 봅니다. 다향이는 타라 덩컨을, 나는 조정래 선생의 한강을 읽으면서 지냅니다.

같은 공간에서 책을 읽을 때면 자꾸 맥이 끊어집니다. 다향이가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자꾸 묻기 때문입니다. 모르고 넘어가는 것보다 좋은 일이긴 한데 집중할 만하면 단어를 물으니 ‘이걸 그냥’ 하고 꿀밤이라도 한 대 먹여주고 싶습니다.

“다향, 아빠가 사전이야?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국어사전을 찾으라고 했잖아.”
그러면 다향이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합니다.
“아빠한테 묻는 게 빠르잖아.”
“…….” 
그래도 이건 좀 낫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단어나 외국어를 물어볼 때면 당연히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면 또 ‘그것도 모르냐?’면서 핀잔을 줍니다. ‘저도 모르면서. 나이만 먹으면 모든지 저절로 아는 줄 아나?’ 지금도 사전의 역할을 하지만 그것이 싫지만은 않습니다.

△이젠 창피한 것도 알고 (2011.7.14)
오늘은 다향이랑 원고지 서너 장 분량의 글을 썼습니다. 오전에 조금 쓰고 오후에도 계속 했는데, 3시가 되니까 “나 이제 들어가서 목욕하고 피아노 쳐야 돼” 합니다. “날도 궂은데 뭘!” 했더니 “내일 손님들 많이 오잖아” 합니다. 내일 저녁의 ‘달빛 밟기’ 행사 때 손님들 오니까 머리를 깨끗하게 감아야 한다는 겁니다.

다향이는 매주 수요일에 쿠키를 구우러 가고, 일요일에는 어린이영상교실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화요일과 토요일이 되면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합니다.
“"마음에 드는 (남자)애 있니?” 하니까 아니라고 합니다.
실제로 봐도 다향이가 좋아할 만한 아이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런데 뭘 꼬박꼬박 샤워까지 하고 그래?” 하니까 “머리(칼)가 떡 지면 창피하잖아" 합니다.
“…….” 

놀이터로 공원으로 놀러 다니다가 "아빠, 쉬" 하면 얼른 바지를 내리고, 정강이에 손을 넣고 안아서 소변을 보도록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창피한 것도 압니다. 스스로 제 몸을 청결하게 관리하는 걸 보니 이제 다 자란 것 같습니다. 아빠의 머릿속에서나 아직도 아기지.

오성근 주주통신원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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