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에서 별이 된 셰르파 ‘왕닥’을 기억하며

최순자 국제아동발달교육연구원장l승인2020.03.24l수정2020.03.2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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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안나푸르나 눈사태 사고
나를 안내해 줬던 셰르파 ‘왕닥’도 포함

지난 1월 하순 경, 한국 교사 4명과 현지인 3명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중 눈사태로 실종됐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그 중 한 명이 사고 바로 직전, 내가 다녀온 한겨레테마여행팀(2019.12.24~2020.1.1) 셰르파 ‘왕닥(Wangdak)’이다.

네팔 안내인 고팔(Gopal) 씨와 최근 연락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현지인 3명은 네팔 가이드 1명, 버리야(포터, 포터는 영국식으로 하인의 의미이므로 버리야로 불러달라고 함) 1명, 중국 가이드 1명이라 한다. 버리야도 우리와 함께 한 ‘민 버하두르 따망(Min Bahadur Tamang)’ 씨라 한다. 아쉽게도 따망 씨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이 글은 셰르파 ‘왕닥’과의 추억을 엮어 그를 기억하고자 한다.


‘왕닥’을 처음 만난 것은 해발 2,700m 무스탕 수도 좀솜에서다. 지난해 12월 27일(금) 아침 7시 30분경이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위해 카트만두, 포카라를 거쳐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등반대장이 셰르파 ‘왕닥’을 소개했다. 그는 인사를 하고 지도를 펴서 우리가 걸을 코스를 설명했다. 일행은 간단한 맨손 체조를 하고나서 서로 손을 얹고 힘차게 “파이팅!”을 외친 후 안나푸르나 품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드디어 신들의 고향이라 불리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설산을 바라보며 걷는다는 설렘과 처음이 주는 두려움이 교차했다.

▲ 1 트레킹 전 지도를 펼치고 안내하고 있는 왕닥

27년 셰르파 역할을 한
순수한 아이와 같았던 그

나는 앞서가는 그에게 다가가 얘기를 나눴다. 나는 더듬거리는 영어였지만, 그는 유창한 영어로 이 일을 시작한 지 27년이 됐고 가족은 먼 곳에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보다 몇 발 앞에서 한발 한발 천천히 말없이 걸으며 길을 안내했다. 그의 뒷모습은 외경스러움 마저 느껴졌다. 얼마나 많은 곳을 저렇게 다녔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에게 히말라야는 자신의 분신이거나 어쩌면 그 자신일지 모른다. 그의 영혼은 이미 그 산과 맞닿아 있는 듯 했다.

▲ 트레킹 출발 전 화이팅을 외치는 일행_장갑을 끼지 않은 왕닥 손이 제일 아래 있음

히말라야를 쉽게 내 줄 수 없다는 듯 밤새 바람이 세차게 울었던 칼로파니 마을을 함께 둘러보고 일행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중년인 그가 가무잡잡한 얼굴로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을 때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이 엿보였다. 겨울바람 내려앉은 방에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아 그에게 말하자 “잠시만요” 하더니 만물박사처럼 불이 환하게 들어오게 해주었다.

 

김치와 숭늉을 건네주고
젓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던 그

그는 세 끼 식사 때는 밥과 국, 반찬을 나르며 음식을 만드는 사람 일까지 도왔다. 김치를 더 달라고 하면 어느새 주방으로 달려가 김치가 든 양푼을 들고 와 “김치, 김치”라며 접시에 덜어주었다. 식사가 끝나면 “숭늉, 슝늉” 하며 숭늉과 뜨거운 물을 건네주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조금이나 따뜻하게 잘 자라고 핫팩에 뜨거운 물을 넣어주기도 했다. 새벽 5시 전후로 어김없이 문을 두드리며 각 방을 돌면서 뜨거운 차를 건네주었다. 추운 곳에서 잔 우리들을 위해 먼저 일어나 준비한 것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손님에게 따뜻한 물을 대접하는 것은 고산지역의 풍습이라고도 한다.

▲ 좀솜에서 트레킹을 시작하던 날_앞쪽오른쪽 왕닥 왼쪽 필자

노천 온천이 있던 따또빠니 숙소에서 저녁으로 백숙을 먹던 날, 현지 가이드 고팔 씨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면서 분위기와 감정에 취해 네팔 민요를 불렀다. 그는 눈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옆에 서서 냄비 뚜껑을 젓가락으로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기도 했다.

 

마중 나와 준 그에게
마지막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다

트레킹 일정 중 가장 힘든 코스를 걸었을 때다. 일행 제일 뒤쪽에서 내 스타일대로 천천히 걷다 보니 약 10시간 정도 걸렸다. 고도 약 2,900미터 고라파니 숙소에 먼저 도착한 그는 자기 배낭을 놓고, 내 배낭을 들어줄 현지인을 데리고 마중 나왔다. 나에게 “다 왔으니, 조금 더 힘내세요”라며 격려했다.

▲ 칼로파니에서 왕닥(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함께

벽난로가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고 나서 트레킹 고도 중 가장 높은 3,200미터 푼힐 전망대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환호성을 내며 일출을 조망했다. 이번 트레킹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마차푸차레, 투쿠체 등 아름다운 설산을 바라보며 감격했다.

▲ 휴식 시간_가운데 가방을 메고 있는 왕닥

일행은 가슴을 설레게 했던 하얀 만년설이 쌓인 안나푸르나 봉우리를 뒤로했다. 랄리그라스 숲을 지나 한참 걷다가 높은 설산을 바라보며 넓은 마당에서 국수로 점심을 먹었다. 그는 역시 식당과 식탁을 오가며 부지런히 식사를 도왔다. 그러던 그가 뜨거운 물이 든 주전자를 들고 오다 그만 주전자 손잡이가 떨어져 주전자가 땅바닥에 나뒹굴고, 뜨거운 물이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나와 동행한 남편 옷에 튕겼다. 남편은 얼른 “괜찮아요”라고 했다. 나중에 남편은 “그의 잘못이 아니고 주전자가 오래된 탓이기에, 그가 너무 미안해 할까봐서 애써 빨리 그렇게 말했어”라고 살짝 귀뜸했다.

점심 식사 후, 우리 일행은 트레킹 하는 동안 산속에서 음식을 만들어 준 현지인들, 짐을 날라다 준 현지인들과 셰르파에게 감사 표시를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를 별도로 만나 악수를 하고 작지만, 마음을 전했다. 그게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 냄비 뚜껑을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던 왕닥

 

별이 되어 히말라야 길잡이가 된 그의 영혼이
그곳에서 편안히 잠들길 바란다

사고 처음에는 연일 뉴스가 나왔는데 요즘은 잠잠하다. 네팔 현지인에게서 눈이 많이 쌓여 있어 실종자 찾기가 아직까지 어렵다는 소식까지 접했다. 세상은 코로나19로 소란스럽지만, 자연은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에도 아직은 춥겠지만 봄이 왔을 터이다. 내가 걷던 지난 12월 말에 곧 봄이 올 것이라며 농사지을 채비를 하던 농부들을 만났었다. 봄날의 따스한 햇살로 눈이 녹아내리기를 바랄뿐이다.

▲ 마지막 인사_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검지손을 든 왕닥

우리팀 등반대장은 세계 최초로 사하라 사막을 횡단한 최종열 탐험가였다. 홀로 외롭게 사막을 걸으며 죽을 고비도 몇 번 있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내가 가지고 태어난 영혼이 사하라 사막이 가장 편안하다면, 나는 여기서 죽어도 좋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오랜 세월 히말라야 여기저기를 누빈 셰르파 ‘왕닥’의 영혼은 어쩌면 히말라야가 가장 편안했을지 모르겠다. 그곳에서 그가 편안하게 잠들길 두 손 모은다(다른 희생자도). 그는 히말라야를 찾는 숱한 트래커를 안내하는 별이 되었을 성싶다.

편집: 이동구 에디터

최순자 국제아동발달교육연구원장  ha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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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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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호 2020-04-01 18:34:40

    생명의 크기나 무게는 흑인과 백인, 남녀, 한국인 네팔인 모두가 똑같을 것입니다.

    주주 여행길에 올라온 최순자 주주의 안나푸르나에서 만난 인연과 기억을 공유합니다.

    힘든 산행과 추위 속에서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준 셰르파 왕닥을 함께 기억하고 별이 된 영혼을 기립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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