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멕시코의 은퇴자 마을인 산펠리페에 10개월 동안 머물렀다. 그곳에서는 한달에 한번씩 홀로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 열렸다. 회비는 1인당 3달러였고, 마실 음료는 각자 준비해 갔다. 집주인이 미리 정한 이야기 주제에 대해 참석자들이 돌아가며 이야기를 했다. 조니 할머니 집에서 열렸던 모임의 이야기 주제는 나에게 조금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마지막을 위한 준비’라니, 마지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커녕 아직도 나에겐 멀고 먼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가족이 각자의 본국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들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는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가서 따뜻한 눈빛 속에서 눈을 감고 싶다고 했다. 민족을 초월해서 누구나 원하는 마지막 장면을 그들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니 할머니는 자신은 죽기 위해 자녀가 있는 곳으로 절대로 가지 않고 이 집에서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뒤뜰에 별채를 마련중인데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살 곳이라고 했다. 자신이 움직이기 힘들어질 때를 위해 청소와 요리를 도와줄 멕시코 여인이 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산소호흡기 사용이나 강제적인 음식물 주입을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죽은 뒤에는 자신의 몸을 물고기에게 주고 싶다며 마을 관리인인 살바도르에게 자기가 숨을 거두면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허리에 무거운 돌을 달아 자신이 늘 거닐던 바다에 던져 달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조니 할머니는 바다낚시를 좋아했던 남편을 따라 1956년부터 멕시코를 자주 찾았다. 20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그 인연을 좇아 산펠리페 마을에 집을 짓고 살았다. 이제 이곳은 자신의 고향이라고 했다. 조니 할머니는 내가 그 마을에 머무르면서 내 마음을 열어 보였던 유일한 친구였다.

3년 전 가을, 그 마을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조니 할머니가 자신의 집에서 자신이 원했던 방법대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친구를 보낸 기분이었다.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할 일을 다 하고 망설임 없이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 가을은 점점 더 깊어져갔다.

백순원 주주통신원  ha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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