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을 보낼까 말까 (2011.11.29)
 요즘 다향이랑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다향아. 중학교 과정이 시작되는 내년부터는 변산공동체에서 공부하면 어떨까?”
“싫어.”
“왜?”
“난, 소녀시대가 있는 서울이 좋아. 청담동에 살고 싶어.”
“…….”
“청담동에 산다고 해서 소녀시대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그런데 아빠는 내가 미워? 왜 자꾸 변산에 가라고 해?”
“우리는 단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잖아. 그리고 네가 떠난다면 아빠는 매일 울지도 몰라. 눈만 뜨면 보던 네가 보고 싶어서 말이야.”
“그러니까, 왜 보내려고 하느냐고?”
“다향아. 아빠는 이미 아빠가 네게 줄 수 있는 건 다 줬다고 생각해.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제 네가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보다 다양하고, 전문적인 선생님들과 지내며 공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그리고 교육의 근본 목적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의식주를 해결하는 능력을 배우고 익히는 거야. 하지만 대학을 나오고 박사 과정을 마쳐도 제가 먹을 식량 한 톨 생산하지 못하잖아. 그런 면에서 아빠는 변산공동체 만큼 훌륭한 학교가 없다고 생각해. 그리고 이제는 엄마아빠보다 친구, 언니오빠, 동생들과 어울려 지내는 게 더 즐거울 때기도 하고.”
“아냐, 난 엄마아빠랑 지내는 게 더 좋아.”
“…….” 
“다향아. 아빠가 늘 말하잖아. 해 보고 후회하는 게 해 보지도 않고 아쉬워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엎어지고, 넘어지고, 깨지면서 어른이 돼 가는 거니까 말이야. 하지만 네가 정 가기 싫다면 아빠가 억지로 강요할 생각은 없어.
“…….” 
“그러면 한 달만 살아보는 게 어떨까? 한두 달을 지낸 다음에 재미있으면 계속해서 지내고, 그렇지 않으면 돌아오기로.”
“알았어. 그럼 한 달만 있다가 돌아올게.”
“…….” 

한 달을 지내고 돌아온다고 하지만 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게 아니니까 -마음이 내키지는 않지만 아빠가 원하니까 일정 부분 희생을 감수하겠다- 아직 결정된 건 아닙니다. 
아침마다 고양이 ‘공주’가 마루에서 웁니다. 밥을 달라고 야옹거립니다. 공주가 울면 다향이가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서 밥을 줍니다. 어제 아침에는 사료를 준 다향이가 더 자겠다면서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런 아이한테 산책을 하겠느냐고 물으니까 싫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아지 ‘나무’랑 산책을 하려고 나서는데 “아빠, 잠깐만. 같이 가" 하면서 따라나섭니다. 

셋이서 산책을 하면서 물어봤습니다.
“싫다더니 왜 일어났어?”
“아빠가 산책하자고 했는데 혼자 보내면 아빠가 삐치잖아.”
“……?”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다향이가 쿠키를 배우러 다녔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옆 마을인 세화리로 수업을 다녔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갔어도 비가 내리거나 어두워지면 자동차로 데리러 갔습니다. 인도나 자전거 도로가 없는 왕복 2차로의 도로가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다향이를 데리러 갔을 때 선생님이 말합니다.
“다향이가 찻잎 따는 게 많이 힘든가 봐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의아한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봤습니다.
“쿠키를 다 만든 다음에 다향이가 더 있다가 가도 되느냐고, 더 놀다 가고 싶다고 해서 까닭을 물었더니 ‘찻잎 따는 게 힘들다’고 해서요.”
“……?”

“다향아, 아빠 찻잎 딸 건데 같이할래?” 하고 차밭에서 일을 하면 다향이도 나와서 거들었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서 “다향아, 그만해. 나머지는 아빠가 딸 테니까 가서 씻고, 쉬어” 해도
“아니야, 아빠. 괜찮아” 하면서 끝까지 함께 했지요.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더니 많이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힘들지만 제가 쉬면 아빠 혼자 더 힘들 거라는 생각으로 꾹 참았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아빠를 배려하는 다향이의 마음을 알기에 '유학을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이제까지는 잘 자라줬고, 앞으로 5~6년만 올곧게 자라주면 나머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텐데.

△다향이는 발전하는데 (2011.12.7)
다실(茶室) 창밖에 겨울비 맞는 대나무가 낭청낭청 몸을 떨고, 때때로 새가 나는데 다향이가 피아노를 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다향이는 날마다 조금씩 성장해 가는데 이 아비는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돕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집 안팎의 일을 하거나 산책을 하고, 다향이랑 밥을 먹고 설거지하고 나면 보통 9시가 됩니다. 그전에 반찬을 만들거나 세탁기로 세탁을 하거나 마른빨래를 개켜놓습니다. 다향이 피아노 레슨이 있는 날이면 다실에 나와서 카페 관리를 하고, 신문과 책을 읽습니다. 레슨이 없는 날이면 함께 다실로 나와서 다향이는 동시를 외우고, 나는 카페관리를 합니다. 그리고 역시 신문과 책을 읽습니다.

다향이가 그림 그리기를 지루해하면 옆에 앉아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다 보면 점심시간이 됩니다. 다시 점심을 차리고 설거지를 합니다. 한동안 가위바위보나 묵찌빠를 해서 설거지 당번을 정하곤 했는데 아빠가 매일 이긴다면서 다향이가 거부합니다. 점심을 먹은 다음에 다실에 앉아 손님을 맞습니다. 손님이 없을 때는 함께 책을 읽거나 바깥일을 합니다. 다향이는 아직 알지 못하지만 노동도 중요한 과목 중 하나입니다.

다향이는 나름 바쁘다고 합니다. 밤 9~10시 사이에 잠자리에 든 아이가 아침 8시경에 일어납니다. 일어나자마자 고양이 공주와 강아지 나무의 밥을 챙겨줍니다. 해가 지기 전에 두 애완동물의 밥을 챙기는 것도 다향이의 몫입니다. 다향이가 나무랑 공주의 밥을 주는 동안 나는 군불을 땝니다.

온종일 하는 게 동시를 외우고,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친 다음에 책을 읽는 것뿐인데 매일 바쁘다고,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물론 함께 장작을 구하러 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풀을 뽑기도 합니다. 날이 좋고 몸이 찌뿌둥하면 나무를 앞세우고 산책을 하기도 합니다. 다향이는 다 좋은데 동작이 굼뜬 게 흠입니다. 가끔 지청구를 하기도 하지만 아빠의 어릴 적 모습이니 어쩌겠습니까? 

어찌 됐든 간에 조금씩 성장하는 다향이와는 달리 아빠는 정체돼 있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쓴다, 쓴다 하면서도 진득하니 앉아서 몰두하지 못합니다. 물론 살림에, 다향이의 길잡이 노릇에, 손님까지 맞느라 일이 많기도 하지만 꼭 필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빼앗기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신문을 끊고, 인터넷 카페의 문을 닫을까? 그 시간에 더 유용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을 합니다.

△아직도 아기 같지만 (2012.2.4.)
다향이가 떠날 날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복잡합니다. ‘저 어린 것이 부모랑 떨어져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다향이 없이 내가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4월 17일이나 18일에는 변산공동체에 데려다줘야 하는데 영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다향이는 마음이 심란한지 간다고 했다가 안 간다고 했다가 하며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아이랑 추억 하나라도 더 만들려고 애를 쓰지만 예뻐하는 마음이 짓궂은 장난으로 표출돼서 다향이를 화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금방 삐쳤다가도 “아빠” 하며 다가와 손을 내미는 착한 아이. ‘이 예쁜 걸 어떻게……’ 싶은 마음으로 마음이 놓이지 않지만 다향이 나이 때의 나를 돌이켜 보면 마냥 어린애는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늘 말합니다. 중고등 학교에 다닌 게 아니라 일찌감치 군대에 다녔다고. 매일 아침 교문을 통과할 때마다 ‘오늘은 또 어떤 꼬투리를 잡힐까?’ 마음 졸여야 했고, 툭하면 단체기합에 매를 맞곤 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고등학생들도 총을 잡고, 사람 죽이는 연습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만원 버스를 몇 대씩이나 놓치고, 겨우 버스를 타면 사람이 너무 많아서 운전기사가 차를 흔들어서 안으로 밀어 넣는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 아무리 단단하게 단추를 꿰매놔도 단추는 툭 떨어졌고, 그것이 구타와 기합의 원인이 되던 때에 비하면 다향이는 충분히 제 의견을 존중받고, 자율성이 길러진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변산공동체학교에 가면 농사도 짓고, 밥도 하고, 나무도 해야 합니다. 직접 불을 때 방을 덥히며 집 짓는 일도 해야 하고, 또 비누와 샴푸 등을 사용하지 못하며 세탁기 대신 손빨래를 해야 하니 힘들겠지만 잘 적응하리라 믿습니다. 아빠가 보기에는 마냥 어린애지만 10여 년 동안 돌봐 온 아이를 더 넓은 세상으로 내보내려 합니다.

오성근 주주통신원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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