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공락의 녹색 세상을 꿈꿨던 선생님, 이제 생명을 살리는 거름으로 거듭 나소서

▲ 김종철 발행인이 29년 동안 발행해온 <녹색평론> 현재 172호까지 발행되었다, 촛불정국 156호에서는 '기본소득제' 관한 글이 실려있다.


 김종철 선생님을 추모하며 

 

선생님, 어찌 이리 황망히 가시나이까?
자본과 성장제일주의가 판치는 칠흑같은 세상에
선생님께서 그리던 세상의 빛이
더디지만 서서히 비춰오고 있는데...
 

2002년 환경을 생각하는 전국교사모임(환생교) 대구 연수에서 처음 뵈었지요
안 오시겠다는 선생님을 강권하여 대구 환생교가 어렵게 모셨는데

“생태 관심없는 전교조 잘못하고 있어, 환생교도 하는 게 맘에 안 들어”

아주 까칠하게 혼내시던 첫 대면
생태, 환경운동을 하려거든 원칙있게 똑바로 하라는 말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한데
이렇게 홀연히 가시다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지율스님이 청와대 앞 광장에서 천성산을 지키려고 백일 단식을 할 때
자주 나오셔 자리를 지키며
스님이 단식으로 수차례 생사의 기로에 있을 때
살아서 운동을 해야 된다며 단식을 말리고
실신 직전의 스님을 업어 구급차에 태우던 모습 선하고
입만 열면 핵발전소 폐쇄해야 한다던 말씀
탈핵학교 교장으로 역할하실 때는
회의 끝나고 맥주 한 잔 함께 기울이시며 주변 사람들을 다독였던 선생님
그 포근하고 결의에 찬 말씀 남기시고 이렇게 급히 떠나시다니


촛불혁명 때 시민단체 대표들이 모였을 때
시민들의 뜻을 못 받드는 의회는 해산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설파하시며
국회의원 제비뽑기로 선출해도 다 잘 해 낼 수 있다 하시던 말씀
녹색 정치를 꿈꾸며 녹색당 창당에 앞장서시고
십여 년 전 일찍이 한국에서 최초로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장할 때
어찌 저런 꿈 같은 말씀을 하실까 했는데
치기어린 말씀이 아니고
외국의 사례와 우리의 현실성을 직시했던 통찰이었다는 것을 깨달습니다
이제 와 보니 선생님의 선지자적 혜안에 감탄할 따름입니다 
 

녹색 정론을 위하여
<녹색평론>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이십 구년을 발행할 수 있는 신념의 녹색 혁명가
20년 가까운 세월
녹색 강연에서 뵙고 녹색운동 현장에서 뵙고
특별히 <녹색평론>과 번역서들을 만나면서 
늘 부족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 제대로 뵙기가 민망했던 기억들
지식인들의 곡학아세, 나태함과 용기없는 기회주의를 질타하면서
거침없이 온몸으로 세상을 직시하고 말과 글만이 아닌 몸으로 보여주셨던 분
내가 만나 본 인사들 중 첫째를 꼽으라면
주저함 없이 ‘김종철’ 선생이라고 외칠 것이다
 

“일제 때도, 육이오 때도 우리 시골에선 동네 사람들이 굶어죽도록 놔두질 않았다”

“자본주의가, 세계화가, 신자유주의가, 산업주의가 결국 가져온 것이 무엇이냐?”

몇몇 자본가들 배만 불렸지 절대 빈곤을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맑은 대기와 물, 건강한 먹을거리가 모두 더렵혀져
결국 부메랑이 되어 우리 모두 죽음의 길로 가고 있건만
언제까지 이 질곡에서 헤매고 있을 것인가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이 공생공락의 문화를 꿈꾸며
적게 먹고 적게 쓰는 소박한 삶을 통하여 자연과 더불어 살고
기본소득제 도입하여 인간과 인간이 공생하는 삶을 설파하던 울림이
이제 막 공명하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녹색당이 아직은 뜻을 얻지 못하고 있어도 씨앗은 뿌렸고
정치권에서도 기본소득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생태문명전환교육’을 하겠다는 교육감도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뿌린 씨들을 풍성하게 수확하고 가셔야 하는데...


대학에서 주는 월급을 통장에 넣어주는 것을 거부하고
자가용은 물론 전화기도 안 들고 다니며 공중전화를 이용하고
늘 입고 다니는 단벌 콤비 옷 한 벌로 살며
사재 털어 <녹색평론> 내어 유지해 나가면서
녹색세상의 메신저가 되고자 하셨던 선생님


자발적 불편, 자발적 가난의 생태적 삶의 실천가
독재 권력을 부정하고 저항했던 민주, 평화주의자
자본 종속을 거부하고
인류의 근본이요 생명 수단인 소농을 살려야 한다며
농촌 부흥을 입에 달고 다니셨던 분
끊임없이 독서하고, 공부하고, 글 쓰고, 사색하던 녹색사상가


유한한 지구 자원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상생 길을 모색해 오셨는데
이제 누가 있어 그 빈자리를 메울 수 있으며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고 가 보지 않은 길을 인도할 사람이 있겠는가
밤하늘 북극성이 모든 별자리의 중심에 서서 뭇 별들을 이끌 듯이
이 땅의 인간, 자연, 생명들에 길의 중심 북극성이셨는데
감염병위기, 기후위기, 핵위기, 생태위기 다 내려놓고 훌쩍 떠나시다니..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야 그지없지만
선생님께서 좌표로 남겨주신 길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지속가능한 세상
그 길을 찾아 항해할 나침반은 남겨 놓고 가셨으니 그나마 위안을 삼습니다

부디 잘 가십시오
당신께서 그리 소중히 여기셨던 어머니, 저 대지 위로 훨훨 날아가
기쁜 마음으로 뭇 생명들을 살리는 거름으로 거듭나십시오.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김광철 주주통신원  kkc0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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