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실, 분명하지 않은 오래된 기억

아내가 말했다. “거기까지 왜 가려고 그래?” 김해인 주주통신원l승인2020.09.21l수정2020.09.2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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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말했다. “거기까지 왜 가려고 그래?”

 

기록되는 순간 기억은 사라진다.

기억이란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마당과 같다. 마당을 다듬고 나면 옛 모습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명확한 것처럼 보인다. 마당 한 구석에 개미들이 드나들던 작은 개미집이 있었다고 한들 그 개미구멍이 있었던가 하는 흐릿한 의문만이 남는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게 원두막의 기억은 그러하다. 살면서 딱 한번 원두막에 누웠었다. 별들은 왜 은하수라고 불리는가를 알려주는 것처럼 풍성히 반짝였고, 발 아래에는 잎으로 가리워진 수박들이 셀 수 없이 늘어서 있었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할머니의 고향마을에 도착했을 때의 기억, 학교에도 입학하지 않는 어린 나이의 기억은 그러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던 친척뻘인 누나들은 어린 나를 무척 귀여워했다. 툇마루에 셋이 눕거나 엎드려 뒹굴거리면 거름지게를 지고 나서려던 자매의 아버지가 우리를 보고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배설물로 가득찬 거름지게는 출렁거렸고, 그 충격으로 나는 한동안 된장찌개에 입도 대지 않았다.

집 바로 앞에는 시냇물이 흘렀다. 초등학생 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내게 물장구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이름모를 조그만 물고기가 손바닥 사이에서 헤엄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며칠을 놀고 난 어느 날 저녁, 누나 한 사람이 같이 놀았던 아이가 뱀에 물려 죽었다고 알려주었다. 그 아이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왜 가야 했는지,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도 없는 그곳. 나는 끝내 할머니에게 그 까닭을 여쭤보지 못했다. 내가 철이 충분히 들었을 때 할머니는 우리와 같이 살지 않으셨다.  명절에 마주 앉아서도 서로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다. 할머니의 사투리는 심해서,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아버지를 지칭하는 ‘아바이’가 거의 유일했다. 해야 할 말이 있으면 아버지가 통역 아닌 통역을 해야 했기에 조손간의 대화는 간단한 인사가 전부일 때가 많았다. 할머니는 내가 군대를 마치고 얼마 있지 않아 돌아가셨고, 고향마을 ‘삽실’은 오래동안 내 기억에 묻혀 있었다.

▲ 변한 것은 기억이 알지 못한다,

변하지 않은 것은 기억에 없었다.

그 삽실에 ‘왜’ 가고 싶었는지 나 역시 나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것은 삽실을 다녀와서 옛 기억을 정리하고 나면 기억들은 지우개로 지운 듯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것이었다. 명확해진 기록은 흐릿한 기억을 밀어내고 새로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자신이 원래의 기억이었던 것처럼 나 자신을 속여버린다. 더욱 완전히 자리잡기 위해 남은 흔적들마저 지워버린다. 내가 간직했던 많은 추억들이 그렇게 사라져갔다. ‘삽실’에 가고 싶었던 것은 그 기억에 대한 선고와 같다. 기억은 말쑥하게 다듬어지겠지만 그것은 내 기억이 변하였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삽실’이라는 지명은 전국에 여러 곳이 있었고, 나는 할아버지의 고향과 가장 가까운 곳의 ‘삽실’을 골랐다. 경북의 깊은 산골까지 이르는 길은 곳곳에 도로가 뚫려 편했지만 여전히 멀기만 했다. 세 시간여를 달려 도착했을 때 나는 차를 세워놓고 망설였다. 차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따라 왼쪽에는 집들이 늘어서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시내가 흘렀다. 원두막은 찾아볼 수 없었고, 생명력을 잃고 간신히 흐르는 물줄기에는 아이들도 물고기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곳이 그 삽실이 맞는지 기억을 끌어내보아야 했지만 확신을 줄 수 있는 무엇도 찾아낼 수 없었다.

기억은 의문을 남긴 채 사라져버렸다.

 

할머니는 단단하지만 아프지 않게 대님을 매어주었다. 그것은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할머니의 손길이다.

 

살면서 유일하게 시골마을의 정취가 몸에 배었던 시절, 내 모든 감성의 바탕을 크게 이루었던 그 시절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나는 결국 알지 못할 것이다. 마음의 기억도, 마음 밖의 정경도 모두 제자리를 지키지 않는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도, 변하고 싶지 않아도 변하도록 강요받는 다는 것도 기쁜 일이 아니다. 변화를 온 몸으로 받으면서 살아왔지만, 그 마음의 아래에는 변하지 않을 기억들이 있었다. 그 기억을 버린 내게 이제 더 이상 지키고 싶은 것은 남아있지 않을 것일까?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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