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향인 좋겠다
“와! (다향인) 좋겠다.”
다향이랑 여행을 다니면서 이런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아빠랑 여행을 다녀서 그런 게 아닙니다. 다향이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은 대부분의 아이가 놀라고, 부러워했지요.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슬퍼졌습니다. 학교는 아이들이 가고 싶고, 또 즐거운 곳이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가고 싶지 않은 학교, 지겨운 학교를 억지로 다녀야 한다는 건 괴로운 일입니다.

“그래도 학교엔 다녀야 해요.”
처음엔 ‘와!’ 부러워하다가 곧 정색하는 아이도 두어 명 있었습니다.
“왜?”
“학교에 다녀야 취직도 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지요?”
“어떤 게 훌륭한 사람인데? 그걸 말해줄 수 있겠니?” 궁금증을 갖고 물었지만 그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어른들의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판검사, 의사. 그래도 어른들보다는 낫습니다. 적어도 돈을 많이 벌어서 훌륭하다는 게 아니라 아픈 사람을 고치고, 억울한 사람들을 도와주며 나쁜 사람들을 붙잡아가서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니까요.

“와! 다향인 좋겠다”가 아이들의 반응이라면 어른들은 “참 부럽네요. 오 선생처럼 아이들을 기르고 살아야 하는데”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말합니다.
“그럼, 저랑 같이하세요.”
“우리는 맞벌이고,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이렇게 애랑 한 달을 다녀보니까 이백만 원쯤 드는 것 같아요. 하지만 선생님 아이의 일 년 학원비보다 적을 거예요. 그 돈으로 우리는 즐거운 여행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으면서 추억을 만들잖아요.”
“맞아요. 오 선생님 말씀이 맞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어요. 아는 것도 없고, 학교에 안 보내자니 두렵고, 불만은 있지만 남들 하는 대로 하는 게 가장 편하지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것도 교육의 폐해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길 중에서 하나의 길만을 강제하고 -수없이 많은 재능 중에 공부 재능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쓰레기취급을 하고- 거기서 벗어나면 큰일이 나는 줄 압니다. 그 길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면 너른 세상이 보이고, 세상은 즐거운 일로 가득한데.

여행 중에 만난 모든 사람이 우리 부녀를 지지하고 부러워하지는 않습니다. 아이가 홈스쿨링 한다는 걸 알고 염려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부모로서 무책임하다고 화를 내는 분도 있습니다. 춘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났던 전직 직업군인이었다는 아저씨가 화를 냈지요. 국가가 원하는 인간을 만들어야 하는데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따지듯이. 국가가 원하는 인간? 그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다향이 스스로가 원하는 인간이 되기를 바라니까요.
보성에는 유명한 다원이 많습니다. 그중에 징광다원의 사장님께서 다향이를 많이 걱정했습니다. 학교를 꼭 다녀야 할 필요는 없지만 친구들이 없어서 사회성이 떨어지지 않겠느냐고 걱정을 했지요. 징광다원 사장님의 말에는 일정 부분 동의를 하고, 늘 내게 주어진 숙제였습니다.

온이·다빈이 아빠와 정수 아빠
‘터벅터벅 느릿느릿 황소를 타고 왔다네….’
손전화가 노래를 부릅니다. 전화가 온 것입니다.

“여보세요? 저 다빈이 아빠 현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아, 그럼. 나야 잘 지내지.”
“이번에 제가 다빈이랑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2009년) 8월 3일에 제주도로 갑니다. 혹시 숙소를 알아봐 줄 수 있나요? 몇 군데 알아봤는데 모두 방이 없다고 해서.”
“당연하지. 이제 성수기인데. 가격은 얼마나 예상하는데?”
“경비가 넉넉하지 않으니까 싸면 좋지요.”
“그래, 알아볼게. 여의치 않으면 작은 집이지만 우리 집에서 묵었다 가고.”
“예. 알아봐 주세요. 그리고 저녁에 소주 한잔 하시지요?”
“당연하지. 그런데 왜 남의 프로그램을 따라 하고 그래?”
“하하하. 좋은 건 따라 해야지요. 아, 그리고 둘만 가는 게 아니라 형원이 형이랑 온이도 함께 갈 겁니다.”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해온 후배와 과천시의회 의원을 하는 후배가 다향이랑 동갑내기인 딸들과 여행을 온다고 합니다.
“다향아, 과천에서 같이 놀던 다빈이랑 온이 기억나?”
“아니.”
“……?”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나 싶습니다.

아빠 둘이서 딸 둘과 함께 보름간 여행을 다녀갔습니다. 그 여행을 하고 싶어서 보수가 적은 곳을 선택해서 일한다고 했지요. 아이들은 동갑내기지만 후배들은 두 살 터울의 선후배 사이입니다. 그렇게 넷이서 소형자동차로 전국 일주를 한다고 했지요. 아빠들은 하루씩 번갈아가면서 운전을 해서 좋고, 아이들은 다투기도 하지만 심심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그 여행을 보면서 살짝 부러웠습니다. ‘연년생으로 하나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수년 만에 만난 세 아이가 잘 어울려 놀았습니다. 수영장에서 물놀이도 하고, 함께 밥을 먹으면서 즐겁게 지냈지요. 그때 ‘이 친구들은 내가 아는 사람들이지만 어쩌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 중에서도 딸(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시작한 이들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은 뿌듯했습니다.

온이와 다빈이가 다녀갈 즈음에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오 선생님. 저도 선생님처럼 두 애를 데리고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는지요?”
“이번 여행의 테마를 무엇으로 잡았어요?”
“예. 애들이랑 남도지방으로 맛집 여행을 다닐까 생각 중입니다.”
그 말을 듣고 뜨악해졌습니다.
“아니. 그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다향이는 일곱 살까지 도시에서 자랐으니까 시골과 도시를 아우르면서 다니는 거예요. 하지만 정수랑 정화는 제주에서 나고 자랐잖아요. 나 같으면 보름 정도 아니 적어도 일주일 정도라도 서울 구경을 시켜줄 것 같아요. 궁궐과 사대문 안의 마을, 신촌이나 홍대 앞 등의 대학가, 방송국, 혜화 등으로 손잡고 다닐 거 같아요. 한창 도시의 화려함에 마음이 끌릴 시골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시골을 다녀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시골 경험을 하듯이 도시 구경을 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요?”

보름쯤 뒤에 다시 정수 아빠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서울에서 재미있게 놀고 왔다고 합니다. 정수가 홍대 앞에서 캐스팅돼서 노래를 부르는 추억까지 안고 왔다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여행 중의 시 두 편

백련사 가는 길

동백열매 발갛게 얼굴 붉히고
모과 향 짙어지는 숲 속 오솔길
토닥토닥 빗방울 떨어지고
노스님 독경소리 목탁소리
강진만 위로 울려 퍼지고
동백나무숲 타박타박 걸어가는
우산 위에 빗방울이 춤추고

선운사 앞에서

선운사 앞 맑은 내에
지친 발 담가 피로 씻는다.
물소리 새소리에 폭 젖었는데
발을 희롱하는 간지러움
깜짝 놀라 굽어보니
작은 물고기 발가락 발굽에
입 맞춘다
놀라기도 놀랐지만
어찌할까? 고민에 빠진다.
놀래기 미안하니 그냥 둘까?
놀자 하니 발을 까닥일까?

편집: 정지은 편집 담당

오성근 주주통신원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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