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보낼 것인가? 그냥 데리고 있을 것인가?’ 다향이가 열세 살이 되면서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이유가 대략 두 가지 정도 있었지요. 아빠가 줄 수 있는 것은 이미 다 줬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선생님들로부터 폭넓게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는 다향이에게 또래와 어울릴 기회를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아이들끼리 어울려 놀아야 하는데 제주의 외딴곳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지요.

다향이의 진학 여부를 두고 꽤 오랫동안 가족회의를 했습니다. 저녁마다 의견을 나눴지만 결코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한 번도 집을 떠나본 적이 없는 다향이가 불안해했습니다. 변산공동체학교가 훌륭한 곳이기는 하지만 다향이가 잘 적응할까? 부모의 의도와는 달리 마음에 상처를 입지는 않을까? 혹시 자신을 귀찮아서 내쳤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변산공동체학교는 친환경농사공동체입니다. 컴퓨터나 텔레비전은 물론이고 세탁기도 없습니다. 샴푸나 린스 대신 친환경 비누만 사용해야 하지요. 손빨래를 해야 하고 재래식 화장실에서 용변을 해결해야 합니다. 똥을 눈 다음에는 재나 왕겨를 덮고 신문지를 비벼서 닦아야 합니다. 찬바람이 불 때는 아궁이에 불을 때 난방을 해야 합니다. 물론 아이들 스스로 장작을 구해야 합니다. 오전에는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어른(선생님)들과 같이 농사일을 합니다.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를 왜?’ 하고 부모님이 끌탕했습니다. 지인 대부분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답하기는 어렵지만 ‘스스로 인간답게 살아갈 힘을 주기 위해서’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사육되는 동물들처럼 교실에 갇혀서 지식만 주입받는 게 옳지 않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전처럼 마을의 어른들, 언니오빠들로부터 놀이와 문화, 일을 배우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아빠, 변산에 가면 스마트폰 사줄 거야?” 간다고 했다가 안 간다고 했다가를 밥 먹듯 하던 다향이가 뜬금없이 물었습니다. 스마트폰? 유선전화가 없는 곳에서 인터넷을 사용(테더링)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사용하지만 썩 내키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래, 사줄게.” 유용한 물건은 아니지만 다향이랑 연락을 하려면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말했습니다.
“정말? 그러면 갤럭시로 사줘. 난 그게 제일 마음에 들어.”
“꼭 삼성 걸 사해야? 다른 것도 많은데.”
삼성과 현대의 독점적 지배 구조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지라 물었습니다.
“응. 내가 쓸 거니까 내 마음에 드는 걸 사야지.”
“……?”
“그런데 아빠. 아빠 말처럼 한 달만 있다 와도 사줄 거지?”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석 달간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다향이가 변산공동체에 입학을 하기로 했지요. 셋의 군산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신입생 반입 금지 물건이 적혀있는 안내서에 핸드폰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작년까지는 허용했었는데 아이들이 툭하면 스마트폰만 들여다봐서 허용하지 않기로 했답니다. 입이 댓 발이나 나온 다향이와는 달리 참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가항공사가 많아지기는 했지만 제주로 가족여행을 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행을 와서도 아이어른 할 것 없이 저마다의 전화기를 들여다봅니다. 차로 이동할 때는 물론이고 식당에서 밥을 기다릴 때도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살아도 함께 여행을 왔으면 이야기하고 소통하며 추억을 만들어야 할 텐데 핸드폰을 사용하는 게 그것보다 우선순위인 듯합니다.

“아빠, 나 한 달만 있다가 집에 올 거야.” 안내서를 본 다향이가 다짐하듯이 말합니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 하고 말했습니다. 한 달을 살고도 정을 붙이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렇게 세 가족이 변산으로 갔습니다.

선생님들, 다른 학부형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다향이도 바쁩니다. OT준비를 한다고 언니오빠들을 따라다니는가 하면 사방에서 낄낄거리면서 놉니다. 낯선 아이들 사이에서 쭈뼛대다가 금방 어울립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잘 데리고 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른들과 밤늦도록 이야기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날이 밝자 입학식과 졸업식이 시작됐습니다. 중고등부아이들의 길놀이가 시작됐습니다. 초등 1학년에 입학하는 단 한 명의 아이를 가마에 태워서 70평 강당으로 이동합니다. 입학식을 하는데 교장 선생님이 강당 뒤에서 외칩니다. “에그, 이놈들아. 이런 날에는 좀 깨끗한 옷을 입지. 어쩌자고 일복으로 나왔느냐?”

그 말을 듣고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처음엔 예쁜 옷을 입고 화장까지 한 여학생도 입학한 지 일주일만 지나면 모두 추리닝 차림으로 다닌다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이들이 입학식과 졸업식에도 그 차림으로 슬리퍼를 끌고 나타난 것입니다. 재미있고 유쾌한 졸업식이 끝났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 돼 갑니다.

“다향아, 이제 엄마아빠는 집에 갈게.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
입학식을 마치고 마당으로 나온 다향이한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아빠, 잠깐만.”
다향이가 기숙사로 사용하는 집 뒤로 돌아갔다가 나옵니다. 평소에서 쓰지 않는 겨울 잠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오는데 울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왈칵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다향이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 다향이를 품에 안고 먼 산을 바라봤지요. 다향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고 몸이 들썩거립니다.
“다향아, 아프지 말고 잘 지내.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하고.”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뺨을 흘러내립니다. 곁에 선 아내도 눈물을 참는 것 같습니다.

“아이고, 이러다가 집에 못 가겠네. 어서 가세요.” 교장 선생님이 말하면서 트럭을 가져옵니다. 그 차를 타고 지서리까지 이동했습니다. 선생님은 돌아가시고, 아내랑 둘이 남았습니다. 부안으로 나가는 버스 안에서도 눈물이 계속 나옵니다. 잠바의 모자를 눌러쓰고 섧게 울던 다향이의 모습이 자꾸 생각납니다. 다른 승객들이 있으니 마음 놓고 울 수도 없습니다. 어금니를 꽉 물고 끅끅거리면서 웁니다. 손수건으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아냅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부안터미널에 내릴 때는 손수건이 흠뻑 젖어있었습니다.

내 판단이 옳은 걸까? 다향이가 상처를 받는 건 아닐까?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편집: 정지은 편집담당

오성근 주주통신원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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