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가 발코입니다. 원래는 '발꼬'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발음이 어려워서 '발코'로 바꿨습니다.

발코를 처음 만난 건 한달 전입니다. 이사를 오자마자 집 앞에서 처음 알게 됐지요. 개든 고양이든 좋아하는 다향이는 길고양이를 만나도 "이리 와"하면서 부르고, 먹을게 있으면 건네줍니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다향이가 쪼그리고 앉아서 "이리 와 츠츠츠." 하자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얘가 다가와서 다향이다리에 몸을 비비고, 쓰다듬어 주니까 그르륵, 그르륵 소리를 내면서 좋아했지요.

처음부터 길에서 태어나고 자란 게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살던 고양이였지요. 주인에게 버림을 받았거나 산책을 나왔다가 길을 잃었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다향이는 마냥 있고 싶어했지만 아빠의 입장에서는 마냥 쓰다듬고, 안게 할 수가 없습니다. 혹 거리에서 병에 걸리지나 않았을까 염려가 되니까요. 그렇게 짧은 만남을 갖고 헤어진 다향이. 집 앞을 나설 때마다 고양이를 불러보지만 어디로 갖는지 한동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안타까워 하는 다향이를 보면서 나 홀로 집을 나서도 고양이를 찾게 되었습니다. 고양이를 두 번째로 만난 건 보름 전입니다. 학교에서 순천으로 여행을 가서 다향이가 없을 때 나 혼자 부딪쳤지요. 어떻게 하나 보려고, 쭈그리고 앉아서 "츠츠츠, 이리 와."했지요. 고양이가 다가와서 다리에 몸을 비볐습니다. 머리와 몸통을 쓸어주자 다시 그르르 그르르 합니다. '다향이도 있으면 반가워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다향이한테 고양이를 만났다고 얘기했더니 많이 안타까워합니다. 그래서 말했지요. "너랑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날 거야." 다향이랑 외출했다가 귀가하던 지난 월요일(11월 9일) 저녁에 고양이를 만났습니다. 다향이가 한참 동안 고양이를쓰다듬고, 안고 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했습니다. "네가 정말 키우고 싶으면 해봐.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네가 다 책임져야 해.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고양이를 좋아히지도 않을 뿐더러 집 안에서 동물 키우는 건 좋아하지 않잖아." 그리고 먼저 집에 들어왔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배 고플 텐데 다향이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나가 볼까 하다가 그냥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10여 분 뒤에 현관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다향이가 고양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자, 이리 와. 착하지. 츠츠츠." 고양이가 현관문 앞까지 따라온 것입니다. 그 거리가 칠팔십 미터는 족히 될 텐데. 경계심 많은 고양이가 현관문 앞에서 들어올까, 말까 망설이다가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다향이가 좋아하면서 현관문을 닫았습니다. 안으로 들어왔지만 고양이는 선뜻 거실로 들어오지 못하고, 현관 앞에서 망설입니다. 그러다가 다향이가 먹을 것을 주니까 다가와서 먹습니다. 그리고 다시 문 앞에 가서 있습니다.

삼십 분 쯤 지나자 고양이가 다향이 곁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더니 다향이의 발가락을 핥습니다. 간지럽다고 깔깔대면서 발을 빼니까 이번에는 다른 쪽 발을 핥습니다. 다향이가 좋아하면서 묻습니다. "아빠, 얘 이름을 뭐라고 하지?" "발꼬." "그게 무슨 뜻이야?" "첫 인상이 중요한데 얘는 오자마자 네 발가락을 핥았잖아. 아무래도 발꼬랑내를 좋아하나 봐." "발꼬? 발꼬? 그거 괜찮은데." "아니면 콧수염이라고 하든지."  "아냐. 발꼬가 괜찮아. 세 글자면 부르기도 불편하고." 최소한 한달 이상은 길에서 지내던 고양이가 발꼬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새로운 가족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거실 한 쪽의 비닐봉지 위에 발꼬가 설사를 해놨습니다. 굶주렸다가 먹어서인지, 아니면 고기를 먹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치울까?'하다가 그대로 두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다향이한테 선택과 책임의식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러니 다향이가 처리해야지요. 아침에 일어난 다향이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똥을 치웠는데 이번에는 신문을 담아놓은 박스에 들어가더니 오줌을 눕니다. 다향이가 그것도 처리했습니다. 아침을 먹은 다향이가 고양이용품을 사러가자고 합니다. 사료랑 고양이모래, 발꼬의 똥통, 그리고 샴푸까지 다향이가 제 용돈으로 구입을 했습니다. 하지만 발꼬가 목욕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발꼬 혼자 거실에서 두 밤을 보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발꼬가 쓰레기봉투를 갈갈이 찢어놓았습니다. 다향이가 일어날 때까지 그대로 둘까 하다가 치웠습니다. 쓰레기봉투 안의 것들이 흩어져서 발 디딜 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제 정오무렵에 "자전거 타러 갈까?"하니까 "아니, 난 발꼬 목욕 시켜볼께. 너무 예쁜데 냄새가 나."합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호수공원엘 다녀왔습니다. 다향이가 목욕시킨 발꼬의 털을 말려주다가 말합니다. "아빠, 얘는 드라이기를 사용하지 않았나 봐. 드라이기를 사용했으면 벌써 다 말랐을 텐데. "털을 말려주고 빗질까지 해주니  발꼬가 말끔해졌습니다.

"아빠, 나 오늘은 발꼬랑 자 볼래."

"......?"

다향이랑 잠자리를 나눈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산으로 이사해서는 무섭다고, 같은 방에서 자자고 했지요. 구체적으로 무엇이 무서운지는 모르겠지만 낯선 형태의 집으로 이사하자마자 공포영화를 본 게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잠을 자다가 때때로 다향이의 손을 쥐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발코한테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개와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했고, 실제로 키우기도 했지만 집 안에서 데리고 자는 건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답게, 동물은 동물답게 (밖에서)살아야지.' 하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것을 홀로 처리할 수 있을 만큼 성장을 했고, 또 엄마랑 떨어져서 지내고 있으니 허락을  했습니다.

오성근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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