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개미도 잠시 길을 잃어버릴 때가 있었다.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 나희덕,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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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있는 집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 내 놀이 중의 하나는 쪼그리고 앉아 개미들의 행렬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죽은 벌레들, 풀잎들, 정체모를 먹을 것들을 들고 개미들은 꾸준히, 지치지 않고 움직였다.

개미들의 행렬은 젓가락보다 조금 굵은 개미굴의 입구에서 끊어졌다. 나는 그 안이 항상 궁금했다. 이 많은 개미들은 좁디좁은 굴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옮겨간 먹을 것들은 어디다 쌓아두고 있는지 늘 궁금했지만 어린 내가 답을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모든 길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사람도, 개미도 길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내 도착하여 한 삶을 만들어낸다.
모든 길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사람도, 개미도 길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내 도착하여 한 삶을 만들어낸다.

개미집을 파헤쳐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많은 개미들의 터전을 단순한 호기심으로 부셔버리면 안된다는 것을 그때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이제 시인은 '허둥거리는' 개미를 말한다. 개미들은 페로몬을 분비하여 길을 남긴다. 페로몬이 사라지면 개미는 다시 길을 찾는다. 페로몬으로만 길을 찾는 것은 아니다. - 예를 들어 사막개미들은 지구의 자력장을 느낄 수 있는 일종의 GPS를 가지고 있다고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 일만 여종에 이르는 개미들의 생태는 단순하지 않다.

시인으로 인해 길을 잃었던 개미는 인간이라는 공포가 없었던들 다시 천천히 길을 찾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우리는 우리를 제외한 다른 생명을 지성혹은 감성을 가진 개체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그 인식은 가끔 나와 동일한 개체인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공포가 우리를 지배할 때면 더더욱. 그 흔적은 내게 오래 남아 나의 길을 지체하게 하고, 나를 둘러싼 여러 사람의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길을 잃으면 주저앉는지.. 그것이 다시 누군가의 걸음을 주저앉히고 그 주저앉힘은 순환되는 것인디.. 그 여름날, 내가 개미집을 파헤쳤다면 그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었을까 다시 생각해본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김해인 주주통신원  logca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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