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중요한 일 있다.

일찍 잠자리에 든다. 집 탓일까. 잠이 안 온다.

이사 온 뒤 집을 고쳤는데 -방을 넓게 쓸 요량으로 방 안쪽으로 여닫는 문을 거실 쪽으로 여닫도록 방향을 바꿔 달았다 - 그 뒤로 문만 닫으면 문틈에 달라붙은 빛이 방으로 들어오지 못해 낑낑 울고불고 난리다. 문 네 귀퉁이를 광선검 같은 빛으로 후비면서 들오지 못해 안달이다. 큰일이다. 일찍 잠들어야 하는데.

 

내일 중요한 일 있다.

일찍 잠자리에 든다. 몸 탓일까. 잠이 안 온다.

아내와 딸은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는지 깔깔 웃음소리 드높다. ! 빛과 소리를 피해 돌아누웠다. 자꾸 비어지려는 눈을 어둠 속에 묻고, 눕지 않으려는 가슴은 잠 잠 잠 주문으로 달래 뉘어보지만, 귀는 어쩔 수 없다. 자꾸 드라마 소리만 쫓아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쫑긋쫑긋 일어나 문밖으로 뛰쳐나간다.

이불로 귀를 막고 조용히 타이른다.

일찍 자야 해. 토닥토닥. 이제 겨우 눈도 귀도 어둠에 잠겼는데 머릿속은 여전히 불 끌 생각이 없다. 내일 무슨 일 때문에 일찍 자야 하는 거야. 늦으면 혼나? 잠 못 잔 채 얼굴 푸석푸석하면 말 걸기 힘들어? 머리는 안다. 이놈의 몸이 일찌감치 불 끄고 누워 내일 어디로 갈지, 누구를 만날지, 머리 안에서 밀치락달치락 상상력 빼앗기 싸움 한판 벌어졌다. 방안만 캄캄하면 뭐하냐고? 머리는 잠실야구장보다 더 밝은데. 생각은 환하게 불 밝히고 말똥말똥 노려보는 잠.

 

내일 중요한 일 있다.

일찍 잠자리에 든다. 말 탓일까. 잠이 안 온다.

잠은 의지가 아니다. 졸려야 자고, 실컷 자야 깨고. 억지로 불러 재울수록 잠은 멀어져 간다. ‘억지로는 잠을 쫓는 으뜸 무기다. 머리가 비어야 잠자기 좋다. 덥적거리기 좋아하는 머리, 우격다짐으로 침대까지 데려가도 5분도 가만 누워있지 못한다. 내일 그렇게 중요한 일이 있다고 타이르고 달래도 그뿐이다. 내일이 오늘보다 중요하긴 중요한 걸까. 말로 윽박지르니 잠이란 놈 욱하고 들이받는 게지.

잠은 안다. ‘내일 중요한 일 있다는 말 별것 아니라는 걸.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김시열 주주통신원  abukung@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