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모장군 명단 1차 조사 분

 

영숙사
                                                               영숙사

어모장군(禦侮將軍)은
“조선 시대 서반 정3품 당하관의 품계명. 조선 태조 원년(1392) 7월에 제정 공포된 신관계 조직에 정3품으로 과의장군(果毅將軍)이 보이는데, 이것이 세조 12년(1466) 1월에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개칭되었음. 어모장군은 서반 당하관으로서는 최고의 품계(品階)이므로 동반 당하관의 최고 품계인 통훈대부(通訓大夫)와 더불어 계궁(階窮)으로도 표현되었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어모장군 [禦侮將軍]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위의 자료로 보아 조선시대 1466년(세조12년)부터 어모장군(禦侮將軍)이란 직책명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확실하나 어느 시기까지 사용되었는지가 궁금하다.

필자의 견해로는 1905년 을사늑약 이전 고종황제까지는 사용되지 않았겠나하는 생각이였는데, 본 조사를 하면서 통천(通川) 최(崔)씨 최성온(崔性溫)의 기록에 1867년(고종4년) 어모장군으로 제수 받았다는 기록을 확인하고 어모장군의 직책명은 1466년부터 1904년까지 438년간 사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당하관 직인 통훈대부, 어모장군, 창선대부, 정순대부의 품계를 역임한 당하관의 아내를 숙인(淑人)이라 일컬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어모장군을 모시는 영숙사(永肅祠)가 있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4동 710번지에 어모장군(禦侮將軍)을 모시는 신당이다.
조선전기 당감동에 주둔하던 어모장군의 군대가 왜구를 크게 무찌르자 이곳 주민들이 어모장군을 신령(神靈)으로 모시면서 마을의 복영(福塋)을 기원하고 있어 세인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조선시대의 어모장군의 직책을 제수 받은 분들은 몇명이나 되며 그들은 누구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 조사해 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자료구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일차적으로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내용을 참고하기로 하였다. naver의 어모장군 → 지식백과 란의 1~28까지 약 448항과 daum에서 어모장군 → 백과사전 1~15까지 174개의 항목을 조사했다.
 
조사된 사례로는 본인, 고조, 증조, 부, 또는 아들, 장인등 다양한 인물을 찾아냈으며, ⌜어모장군⌟ 직명을 제수 받은 형태는 네 가지였다.
1) 젊은 시절에 제수(除授) 받아 차후 더 높은 직급으로 승진된 자도 있으며,
2) 생존의 마지막의 직책이 된 자도 있고, 
3) 생존 시 공적을 쌓고 사망한 경우 사후에 추증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4) 산관(散官:품계만 있고 실직이 없는 벼슬)직으로 제수 받은 자도 있다.      

이러한 기록을 살펴보면 문관과 무관뿐만 아니라 음악을 전공하여 이름을 떨친 황효성(黃孝誠)에게도 어모장군 칭호를 내렸다. 그리고 성종 때 한식 목공기술자인 대목에게도 어모장군 칭호를 내렸고, 시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김담(金談)의 손자 김좌는 81세 노인직으로 어모장군칭호를 내렸다. 이로 본다면 산관(散官)직으로도 사용되었다. 다시 말하면 국가 발전에 기여할 인물이나 기여를 했던 문⋅무관에 주로 직책 명으로 사용했고, 각 분야에 특이한 인물에게도 산관(散官:) 직으로 사용 되었다고 보여 진다..
 
개인적인 기록으로 보면 임진왜란 당시 7년간의 전쟁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투를 하여 나라를 지킨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분이 많으나 난중일기에는 이름이 나오지 않아 아쉬움이 있었다.

 조선시대 어모장군 명단(1차조사 분)

http://cafe.naver.com/ydjunssi/148

필자가 조사한 내용을 일차적으로 공개하여 각 문중과 지인들의 협조를 얻어 2.3차 보완하는 형식으로 마무리 하고자 하오니 많은 협조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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