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군산을 탐방하고 저녁 식사가 끝난 뒤 7시 반부터 군산청소년수련관강당에서 진행했던 저녁일정에 참석했다. 첫 번째는 군산청소년공연단의 댄스공연이 두 차례 있었다. 사회자는 그들이 국내경연대회에서 수상한 팀들이라고 소개했으나, 그저 그렇고 그런 젊은이들의 비보이춤이었다. 다만 그들의 격렬한 율동을 보니 연습은 참 많이 했겠다 는 느낌이었다. 한겨레주최측은 왜 모두 나이든 주주통신원들이 즐길 수 있는 저녁시간을 마련하지 않았을까? 

두 번째로 등장한 인물은 전에 한겨레신문 문화부장과 정치부장을 역임한 박창식 전략기획실장이었다. 그는 한겨레신문의 진로에 대해 간단한 방향제시를 했다. 요점을 말하면 사회통신수단(SNS)의 다양한 발전에 따른 인쇄매체의 수세에 따라 디지털통신수단을 강구한다는 것이었고, 시대의 요청과 독자의 수요에 맞는 콘텐츠를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달변이었지만, 참신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의 발언에 이어 질문이 있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정병길씨로 그는 한겨레신문의 대학생선호도 1위, 언론전문가선호도 1위 등의 홍보를 다른 홍보매체에는 왜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박실장은 광고비의 제약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두 번째로는 황선주주의 질문이었다. 한겨레신문은 한글전용을 고집하는데 글로벌시대에 이 방침은 맞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독자대중의 민주적인 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답하고, 그러나 지금 인터넷 판으로 영어기사를, 디지털 판으로 일어기사를 내보내고 있으며, 조만간 중국어판도 내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뒤이어 내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안도현의 ‘가을 시의 밤’ 토크쇼가 있었다. 그러나 내용은 시 이야기가 아니라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하면서 박근혜 후보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고소당하여 전주지법의 국민참여재판을 시작으로 고등법원에서 재판받았고, 지금도 대법원에 계류 중인 사연을 사회자의 질문에 따라 해명하는 내용이 주류였다. 토크쇼는 이 사건에 대한 그동안의 언론보도 등을 발췌하여 제작한 영상물을 빔 프로젝트로 비추면서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사회자는 주주통신원 안지애였다. 그녀가 신문방송학과 출신이어서 그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2013년 10월 28일 전주지법에서 14시간 넘게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배심원 7명 전원일치로 무죄평결을 받았다. 그러나 1심재판부는 허위사실공표는 무죄를, 후보자비방은 유죄를 선고했고, 2심에서는 모두 무죄를 선고하여 검사의 상고로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사건의 발단은 안도현 시인이 안중근의사의 유묵을 박근혜 후보가 소장하고 있거나 도난에 관여했다는 취지의 글을 17차례나 썼다는 것이었다. 유묵의 글은 ‘치악의악식자 부족여의(恥惡衣惡食者 不足與議)’, 즉 ‘궂은 옷과 궂은 밥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더불어 의논할 수 없다’는 내용의 서예작품이다. 

안도현 시인 본인의 설명 가운데서 내가 귀담아들었던 것은 그가 처음 피의자로 검찰에 소환되었을 때는 “별일 없을 겁니다.”라고 안심시키고, 기소하지 않았던 검사가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옷을 벗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외부의 압력을 받아 검찰을 떠났다는 이야기인데, 한국이 다시 독재시대로 퇴행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 사건 또한 법치국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실례가 아닐까? 

그는 박근혜정권에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실망이 큰 탓일까?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절필선언을 했다는데, 그것은 최재봉기자의 오보라고 했다. 작품발표는 하지 않아도 시상은 그의 머리에서 항상 맴돌아 시 같은 것을 늘 끼적거린다고. 그러면서 그는 시를 써서 독재에 항거할 수도 있지만, 시를 쓰지 않는 것도 독재에 항의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미 그는 정치적인 인물이 되어있었다. 

정작 시에 관한 이야기는 20분도 채 되지 않았다. 아쉬움이 절절했다. 그러나 짧은 시 강의 가운데서도 귀담아들을만한 부분이 있었다. 시는 다른 사람이 쓰지 않은 것, 다른 사람과 다른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면 학생들에게 가을에 대하여 시를 쓰라면 대개 벼가 익는 들판에 허수아비가 있고, 허수아비에 참새가 앉는 풍경이나 가을밤에 귀뚜라미가 귀뚤귀뚤 운다든가, 가을하늘에 기러기가 떼를 지어 날아간다는 천편일률적인 묘사를 하는데, 그러면 자기의 시가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안시인이라면 가을밤에 귀뚜라미가 귀뚤귀뚤 운다고 하지 않고, 가을 가을 가을 하고 운다고 표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때 청중 가운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냥 넘어가는 가 했더니 그날 밤에도 백석에 대한 그의 예찬은 한결같았다. 백석의 독립정신이며, 자유분방함이며, 그러면서도 올곧은 지조에 대한 찬사였다. 교과서에 나오는 시의 대부분은 친일파의 시고,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악영향이 오늘날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부문에 만연해있다고 질타했다. 그리고 그는 백석과 자야(김영한 여사)의 사랑을 담담하게 언급했다.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라는 시는 그들의 짧지만 애틋한 사랑으로 탄생했다. 그들은 부부의 연은 맺지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려주었다. 

- 전략-

나타샤를 사랑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중략-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즈넉이 와서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서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질문시간이 되어 나는 “친일파 서정주 등을 교단에서 어떻게 가르치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 자신 습작시절 미당의 시를 많이 공부했다면서 서정주 시 자체는 가르치되 그의 친일행적 또한 숨기지 말고 지적해야 균형 있는 교육이 된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밤 10시 지나 오늘 일정이 끝났다. 나는 최호진씨와 함께 배정받은 방으로 갔다. 4층이었다. 다른 동료들은 침대가 없는 맨 마룻바닥에서 4인이 한 방을 썼지만, 우리 두 사람에게는 연장자라 하여 더블침대가 있는 특실을 배정했다. 욕실이 딸린 6평 정도의 넓은 방이었다. 호텔방 못지않은 방이었으나 난방이 되지 않아 썰렁했다. 방에 오기 전에 난방장치를 작동할 때 처음에는 온도를 50℃까지 올리라는 지침을 받았다. 그렇게 높은 온도로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을까 의아스러웠는데, 아니나 다를까 온도는 점점 내려가서 방안의 현재온도를 가리키며 멈췄다. 그러니까 실내온도를 25℃정도로 유지하려면 잠을 자다가도 깨어나서 수시로 온도를 올려야했다.

 방에 들어와 실내온도를 열심히 조절하고 있는데 김미경 총무가 들어와서 밤 뒤풀이를 하자고 했다. 5층에 있는 이요상씨 방으로 갔더니 벌써 거기에 10여명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방에서 술을 마시고 떠들면 나중 나쁜 소문이 나서 한겨레신문에 오점을 남길 것 같다고 하여 모두 밖으로 나가 술을 마시자고 했다. 그러나 최형과 나는 외출을 사양했다. 보나마나 새벽까지 떠들고 보낼 텐데, 우리 노털들은 노독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밤중에는 나이 많은 최형이 나보다 더 추위를 탔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여행할 때 타인과 한 방을 쓰면 겪게 되는 곤란한 일이 어김없이 이번에도 벌어졌다. 최형의 코고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미안해하는 그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3부에서 계속

사진 : 차익환 한겨레 디지털이미지부장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허창무 주주통신원  sdm3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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