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유언장을 남기는 상상을 해 보았다.

언젠가 죽어 화장을 하는 날, 그날 아침 집에 온 조간 한겨레를 같이 태워 묻어달라고.

저승에 가서도 세상사 궁금함을 못 참아서일까.

창간호부터 오늘까지, 한겨레를 거른 적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 평생 가운데 며칠, 집을 비운 까닭에 하루 이틀 한겨레를 거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겨레는 탄생 이래 지금까지 나의 변함 없는 친구다.

며칠 전 한 지인으로부터 ‘한겨레를 끊고 다른 신문을 보아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제가 보기에 그 신문은 더 해요. 답답한 점은 있지만 그래도 한겨레지요라고 답을 주었다. 종이 신문 가운데 그래도 진짜 신문이라고 여겨지는 거의 유일한 신문이 한겨레인 까닭이다.

한겨레가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부부 금슬의 조화에 한목하기 때문이다.

결혼 전 아무 신문도 보지 않던 아내도 결혼 삼십년을 앞둔 오늘까지 나와 마찬가지로 한겨레를 거른 적이 거의 없다. 아침에 눈뜨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화장실을 갈 때 한겨레가 바통 터치를 해준다. 서로간의 아침 인사보다 한겨레가 먼저 인사를 한다. 자연스레 한겨레 기사를 소재로 대화를 하고, 다행히도 논조에 대한 의견도 큰 차이가 없어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없다. 가끔, 한겨레에게 이건 아닌데 하는 기사들이 나올 때 공동의 푸념을 늘어놓는다는 점에서 가끔 한겨레는 우리 부부에게 공공의 적이 되기도 하지만, 애교로 넘어갈 때가 다반사다.

2020 코로나 19로 초유의 한 해를 보내며 다시, 한겨레에게 감사한다. 기사 같지도, 신문 같지도 않은 우수마발 바이러스 속에서 유일하게 정신의 백신 역할을 해준 한겨레 기자님들과 고마운 기사들에게.
 

사진,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유동걸 시민통신원  hjhss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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