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깊은 밤이에요. 곤히 잠드셨을 턴데 잠깨실까 조심스럽습니다.

선생님, 그러고 보니 오늘이 올 한해가 저물어가는 마지막 날예요.

밤은 깊은데 잠은 오지 않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 일어나 앉아 어제 들어온 <교수신문> 들었어요.

펴보니 1면에 "我是他非 “나는 맞고 당신은 틀렸다"라는 2020년 올해의 사자성어가 올랐더군요.

선생님, 아시타비(我是他非)는 글자 그대로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란 뜻 아니겠어요.

그러고 보니 이는 사자성어라기보다 신조어에 가까운 것으로서 '내로남불', 즉,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한문으로 옮겼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ㅎㅎㅎ ~~

그래요. 선생님, 올 한 해는 예기치 않은 코로나 사태와 정치권의 분열로 온 사회가 시끄러웠는데, 이번에 교수신문에 올라온 6개의 사자성어를 보니 교수사회에서는 분열의 덫에 걸린 정치권에 대한 책망과 코로나19바이러스 창궐 이후 정치권의 난맥상에 대한 토로로 갈렸더군요.

헌데 무계 중심은 역시 정치권에 두었더라고요.

정태연 교수(중앙대 심리학)는 이 '我是他非'를 추천하면서 "올해 우리 사회는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위기와 끝이 보이지 않는 정치사회적 대치의 한 가운데 있어 왔다."라면서 "어느 사회든 나름의 어려움과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더 뼈아픈 이유는 이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자세 즉,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아시타비(我是他非)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어요.

선생님, 그렇찮아요?

내가 하는 것은 옳고 남이 하는 것은 틀리다는 이분법적 사고. 틀린게 아니라 다를 뿐인데...

선생님, 음양(陰陽)이니 오행(五行)이니 하는 말 들어 보셨죠?

이 용어들은 동양철학의 기본개념용어로 한의학에서도 이 용어를 가지고 인체 생리나 병리 등 모든 이론을 설명해요.

선생님, 여기서 음과 양은 상대적(相對的) 개념으로 상반적相反的) 관계가 아닌 상호의존적 대대적(對待的) 관계예요.

선생님, 말이 어려워 졌죠. 쉽게 바꿔 말하면 밝은 낮(晝)은 양(陽), 어두운 밤(夜)은 음(陰)인데, 하루는 이 낮과 밤의 밝고 어둔 서로 다른 이 현상이 어울려 이루어져요. 자연현상이 모두 이래요.

이를 저는 '상반상성(相反相成; 서로 상반되면서 이룸)‘, '모순의 합(矛盾之合; 서로 모순되면서 화합함)’이라 불러요.

따라서 여야는 서로 자기의 주장만 합리화 시키지 말고 서로 상생의 정치를 해야 해요. 예컨대 다수당의 입장에서는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라 하겠지만, 소수당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권력의 전횡이요 독재인 거예요.

때문에 화합의 상생 정치에는 반드시 배려와 희생, 신뢰, 온정 같은 덕목이 뒤따라야 해요.

선생님,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러한 덕목은 기르려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는 그걸 무척 요구하거든요.

"카톡!" 선생님, 카톡 왔네요. 잠시 끊었다 다시 할게요.

누구한테서 왔냐고요. 얼마 전에 사귄 '자야'(子夜)한 애칭을 가진 카톡 친구에게서 왔네요.

선생님, 子夜! 떠오르는 사람 없으세요?

그래요. 중국 진대(晋代) 오(吳)나라때 여인, 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어 보낸 자야가(子夜歌)가 있고, 우리나라에선 백석(白石)이 성북동 길상사 화주 길상화 보살이 젊어 기생 진향(眞香)으로 있을 때 백석이 진향 자야에게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지어 보냈죠.

선생님, 카톡 열어보니 두점 작품 올렸군요.

"靜坐常思己過", "踏雪夜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낙관을 보니 첫 째 작품은 자야 자신이 쓴 것으로서 아호를 '荷珠'라 했네요. 연꽃 구슬! 참 예쁜 이름이죠?

"고요히 앉아서 스스로의 허물이 있는지 살피라"는 대만 언론인이며 서예가인 삼석(三石) 사종안(謝宗安)의 글인데, 뒤에 댓귀로 "閒談莫論人非"가 있지요. "한가로이 이야기 할때에는 남의 잘못을 논하지 말라"는 뜻이죠.

다음 작품은 서산대사의 선시(禪詩)로 김구 선생께서 평생 좌우명으로 하셨대요. 충남 공주 마곡사에 가면 선생님이 1948년에 쓰신 작품을 볼 수 있어요.

"눈 내리는 벌판 한 가운데 걸을 때라도 어지럽게 걷지 말라!

오늘 걸어간 이 발자국들이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리니"

선생님, 오늘 올해 마지막을 보내면서 꼭 되새겨 볼 글들이죠.

"我是他非', '靜坐常思己過' 그리고 서산대사 선시 묵상 하며 오늘 하루 마무리 하겠습니다.

선생님, 늘 배려에 감사하며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2020.12.31. 새벽 경자년을 보내며

김포 여안당에서 한송 삼가 올림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정우열 주주통신원  jwy-hansong@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