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먼저 웃어야 한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김 수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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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수영 시인의 을 다시 읽는다.

저항시인이라는 선입견일까.

그의 시는 항상 내게 반항하는 자의 초상처럼 다가왔다.

그러다 논어 안연편을 만났다.
 

계강자(季康子)가 묻는다.

사람 하나를 죽여 본보기로 삼을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자는 풀을 소인에, 군자를 바람에 비유해 대답한다.

풀은 바람이 불면 쓰러지지 않을 수 없지요. 그대가 선한 마음을 먹으면 백성들도 절로 선해질 테니 누구를 죽여 본보기를 보이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읽고 나서 다시 시를 대하니 마음이 착잡하다.

바람보다 늦게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한다. 아니 바람보다 먼저 웃어야 할지도 모른다. 바람이야 마음에 들지 않는 이 터전을 훌쩍 벗어나 새로운 곳에 자리 내리면 그만이다.
 

몸을 지키려 풀들은 뿌리를 숙이고, 집을 지키려 사람들은 허리를 펴지 않는다.
몸을 지키려 풀들은 뿌리를 숙이고, 집을 지키려 사람들은 허리를 펴지 않는다.

풀들은 감춰야 할 뿌리까지 눕혀가며 이 땅을 떠나지 않으려 한다. 동풍은 또 비를 몰고 올 것이다. 반복되는 잔혹함에 눈물을 삼키며 몸을 누인다. 흐려지는 날을 보고 다가올 풍우를 예감하며 미리 누워 몸뚱이라도 보전하려 한다

한 해 내내 불어댄 광풍의 끝자락이 보이는 건지, 아직 아득한 지 알 수 없다. 지난한 민초의 삶은 지겹고 비겁하기까지 하며 자신을 지켜낸다. 시인은 그 삶이 안스러웠을까공자에게 은 자신이 거하는 곳이 아니었겠지만 시인에게는 동류라, 그 삶이 절절하지 않았을까.

물음은 피어나지만 존재하지 않는 답, 그 답 속에는 지금의 나 자신도 있을 것이다.

*
본문 중 공자와 계강자의 대화 편은 논어 안연 13, ‘如殺無道以就有道何如子欲善而民善矣君子之德風小人之德草草上之風必偃구절을 의역한 것임.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해인 주주통신원  logca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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