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무공전서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이충무공전서에는 이순신에 대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거북선에 관한 대표적인 기록으로는 이충무공전서 뿐이라고 한다.

그럼 이충무공전서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이순신에 관한 선양사업은 정조 때에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정조는 경전에서 국조보감(國朝寶鑑)을 살펴보면서 임진왜란 때의 사적과 이순신의 활약에 관심을 가졌다.

정조께서는 임자년(1792,정조16)에 대보단(大報壇)을 참배하면서 충무공과 같이 공과 명성이 있는데도, 이를 기록한 글들을 모은 책들이 없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중국조정으로부터 도독(都督)인정을 받은 충무공의 후손에게 벼슬을 내리도록 명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정조는 삼학사의 봉사손을 중용하고 유성룡과 이순신의 직계후손 중에서 인재를 등용하였으며, 정조17(1793) 이순신이 전사한지 195년이 지난해에 이순신을 의정부 영의정에 증직하고 이순신의 신도비를 세울 것을 명한 후, 자신이 직접 신도비의 비명을 지었다.

신도비는 남송의 명신 부필의 묘비제목을 전자로 쓴 예에 따라 상충정무지비(尙忠旍武之碑)라 하고 안진경(顔眞卿)의 가묘에서 글자를 모아 새기고 명()과 서문(序文)1189자를 친히 크고 깊게 새겨 왕후(王侯)의 명()에 대신하였다.

그리고 내각에 명하여 충민은 이미 실기(實記)를 인쇄하여 반포하였거니와 충무만은 아직 없다고 하면서 각신(閣臣, 규장각 문신윤행임(尹行恁,1762~1801)에게 명하여 공사간의 기록을 널리 모아 충무전서(忠武全書)로 꾸미고 첫머리에 전교(傳敎), 하유(下諭), 사제문(賜祭文), 도설(圖說), 세보(世譜), 연표(年表)를 싣고 그다음에 시문(詩文), 장계(狀啓), 그 다음에는 난중일기(亂中日記)를 싣고 다시 비장(碑狀), 사기(祠記) 및 후인들의 기술(紀述) 등을 부록으로 6권을 만들어 뒤에 붙여서 을묘년(1795, 정조19)에 비로소 완성하였다.

소요 경비는 내탕전(內帑錢)을 비용으로 대어 정유자(丁酉字)로 인쇄하여 혼령을 모신 여러 곳에 소장하게 하고, 친히 제문을 지어 통제영(統制營)의 충렬사(忠烈祠)에 치제(致祭)하고 통수(統帥)에게 명하여 명나라 조정에서 내린 전서로 새긴 도독(都督), 구첩(九疊), 동인(銅印)과 관방령패(關防令牌). 귀도(鬼刀), 참도(斬刀), 독전기(督戰旗), 홍령기(紅令旗), 남령기(藍令旗). 곡나팔(曲喇叭) 등을 진열하고 큰 술잔에 술을 올리고 일을 마치도록 하유하였다이렇게 하여 태어 난 것이 이충무공전서이다.

이충무공전서 하권의 귀선송(龜船頌)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몽충(蒙衝)군함의 옛 제도를 본뜨는 뒤에 새 의견을 붙여 거북선을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공을 다시 모셔올 수 없음을 탄식하면서 거북선을 노래한 것이 있다.

거북으로 이름 한 배 우리임이 만드시어/ 그 모양 본떠내어 몽충 대신 쓰시도다./ (, 물새)(, 솔개)를 새긴 배를 이상할 것 없건마는/ 엎디고 떠오르고 마음대로 하는 도다/ 입으로 뿜은 총알 우박같이 흩어지고/ 등에 박힌 칼날이야 별빛 같이 반짝이며/ 고래 같은 파도 위를 평지같이 여기누나/ 외로 치고 바로 찔러 번개처럼 달리면서/ 나는 적을 해치어도 적은 나를 못 보도다/ 적의 배들 모여들다 부딪치면 깨어지니/ 섬 오랑캐 넋이 빠져 서로 보며 놀라도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귀신이 아닌가/ 옛 제도만 본뜸이랴 사람 손에 달렸도다/ 본떠서 만드오매 물건이야 예 같건만/ 신묘하게 부릴 사람 누가 공을 이으리오/ 그 사람 곧 못 얻으면 헛 물건이 되오리니/ 이 노래 지어 내어 구멍막이 되려노라.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임진왜란으로부터 200여년이 지나는 동안 수많은 임금이 바뀌었는데 왜 다른 임금들은 이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이충무공전서에 손을 댄 사람들을 보면 1918년에 최남선이, 1925년에 일본인이, 1931년에 서장석이, 1955년에 북한에서, 1960년 이은상이 번역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어느 누구도 생각할 수 있는 일인데,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 또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충무공전서의 기록 중 구선(龜船)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전서의 권수도설에 전라좌수영의 거북선과 통제영의 거북선 두 종류의 그림과 694자의 한자 설명문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1795년 이충무공전서를 집필할 당시의 것이다.

통제영 거북선
통제영 거북선
전라좌수영거북선
전라좌수영거북선

그림 둘의 출처: 이충무공전서

, 내탕전 : 조선 시대에, 내탕고에 넣어 두고 임금이 개인적으로 쓰던 돈.

편집 : 김태평 편집위원

마광남 주주통신원  wd3415@naver.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