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밥상 차리는 남자다

오랫동안 가사노동-살림과 육아-에 종사해왔습니다.

1999년 4월 ‘남자주부’로 살면서 TV·라디오·신문과 잡지 등 온갖 매스컴에 알려지게 되었고, 2000년에는 책 [매일 아침 밥상 차리는 남자]를 펴냈습니다. 그때부터 ‘밥상 차리는 남자’로 불리게 되었고, 다음(daum)의 카페명도 ‘밥상 차리는 남자’였으며 닉네임과 이메일의 주소도 babsangman을 사용해왔습니다. 인터넷검색 창에 ‘밥상 차리는 남자’를 입력하면 나에 대한 기사와 활동이 좌르륵 떴으니까 그것은 곧 나를 상징하는 수식어였습니다.

2017년 여름. MBC-TV드라마 [밥상 차리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검색을 해보았습니다. 나에 대한 기사는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온통 드라마의 홍보기사와 드라마홈페이지로 도배가 되어있었습니다. 오랫동안의 수고로 얻어진 별칭을 갑자기 빼앗긴 것입니다.

나의 첫 번째 책 제목이자, 나를 상징하는 수식어를 사용하면서 한마디 말도 없었다는 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드라마홈페이지에 이런 내용을 올렸고, 작가와 연출자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법률구조공단에 의뢰했더니 상표등록의 여부를 묻더니 그것을 해놓지 않았다면 소송에서 이길 확률이 거의 없다고 했지요. 그 말을 듣고, ‘2000년도에 책을 출간하면서 책제목을 상표 등록한 작가가 있었을까? 있었다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의아해했었습니다.

억울함을 법에 기댈 수 없다니 언론에 호소해보기로 했습니다. 진보와 보수를 포함한 모든 일간지와 방송사, 시민신문, 인터넷언론사에 관련기사를 보냈습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언론사끼리 감싸는 것인지, MBC라는 거대기업과의 다툼을 우려한 것인지 어느 언론에서도 기사(공론)화하지 않았습니다.

끝으로 전국언론노조연맹부위원장 출신으로 송건호언론상,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참언론인 대상 참언론상을 수상했으며 뉴스타파의 프로듀서로 활약했던 MBC 최승호사장에게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곧은 언론인이라고 믿었기에 기대를 했지만 MBC드라마제작국으로부터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답장을 받고 말았습니다.

MBC같은 대기업이 드라마제목을 뽑으면서 법률자문 팀의 검토를 거치지 않았을 리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사실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해도 도의적인 책임까지 사라지는 건 아닐 것입니다. ‘드라마를 시작하기 전에 전화 한 통이라도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오성근 주주통신원  babsangman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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