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눈이 멀면 이성을 잃는다. 헌법을 통해 본 우리 역사는 정부수립 후 아홉 차례의 개헌 과정을 밟는다. 그중에서 4.19 혁명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로 자유당 정부가 무너진 후 과도정부가 구성된 후 개정된 헌법에만 유일하게 ‘복수정당제를 보장, 헌법재판소 설치,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국민의 기본권 보호 강화..’와 같은 주권자를 위한 내용이 담긴 내용의 개헌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전쟁 중에 개헌한 이승만>

놀랍게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52년 6·25전쟁 임시수도 부산에서 그리고 6·25전쟁 직후인 1954년 두 차례의 개헌을 한다. 1952년 7월 7일 개정된 1차 개헌은 1950년 실시된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여 대통령이 국회에서 재선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당시 여당과 야당은 정치적으로 서로 격렬하게 대립하면서 각각의 개헌안을 제출하였다. 여야는 그 해결책으로 두 개헌안의 내용을 절충하기로 하고 여당 안에서 대통령직선제와 국회 양원제를 야당 안에서 국무원 불신임제를 채택한 ‘발췌개헌안’을 통과시켰다.

<발췌 개헌과 사사오입 개헌>

제2차 개정은 전쟁 직후인 1954년 11월 27일에 이루어진다. 1954년 5월 20일 실시된 제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당인 자유당이 압승하였다. 이에 여당은 대통령의 3선을 가능하게 하고자 초대대통령에 한하여 3선 제한을 철폐하는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하였으나 표결 결과 국회 재적의원 203명 중 135명만이 찬성하여 한 표 부족으로 부결되었다. 그러나 이틀 후 여당은 '사사오입'원칙에 의하면 203의 3분의 2는 135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통과된 것으로 번복하여 선포하였다. 초대대통령에 한해 삼선 제한을 삭제하고 주권제약·영토변경 사안에 대한 국민투표제를 도입하고 국무총리제를 폐지하며 경제체제를 자유경제체제로 전환하는 내용이었다.

<4·19혁명으로 주권자를 위한 개헌>

우리나라에서는 헌법사상 처음으로 1948년 7월 제헌헌법 후 13년만에 주권자의 권리 신장을 위한 헌법을 만든다. 이 헌법이 바로 4·19로 이루어진 의원내각제의 3차개헌 헌법이다.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에 대하여 항의하는 학생과 시민의 4·19의거에 의해 이승만 정권은 붕괴되고 과도정부가 구성되었다. 이에 국회는 헌법개정기초위원회를 구성하여 의원내각제로 권력구조를 변경한 개헌안을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1960년 6월 15일 공포하였다.

3차개헌의 특징은 이승만 정부의 개헌과 달리 정부형태의 변경 이외에 복수정당제를 보장하고 현재와 그 역할이 비슷한 헌법재판소를 설치하였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허가·검열을 금지하고, 법률에 의하여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그 본질적 내용은 훼손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본권 보호를 강화한 내용이 담긴 헌법이다. 이어서 이루어진 제4차 개헌은 1960년 11월 29일 3·15부정선거의 주모자와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군중을 살상한 자들을 처벌할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하여 이루어졌다.

<박정희는 헌법 파괴자이다>

제 5차 개헌. 박정희가 종신대통령으로 절대권력자가 되려고 만든 헌법이 유신헌법이다. 1972년 10월 17일에 박정희는 4·19혁명으로 이루어진 민주적인 헌법을 헌법을 파괴하고 위헌적 계엄과 국회해산 및 헌법정지 등을 골자로 하는 유신헌법을 만든다. 유신헌법의 핵심적인 내용은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과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긴급조치권 및 국회해산권을 가지며, 임기 6년에 횟수의 제한 없이 연임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또 대통령 선출 방식이 국민의 직접 선거에서 관제기구나 다름없는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선제로 바뀌었다. 유신 체제는 행정·입법·사법의 3권을 모두 쥔 대통령이 종신 집권할 수 있도록 설계된 1인 영도적(절대적) 대통령제였다.

유신헌법은 내용적인 면에서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민주주의 이념, 그중에서도 정치생활영역에서의 민주주의 이념인 민주주의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헌법이다. 형식적인 면에서도 헌법개정 절차조차 무시한 위헌적 개헌을 통해 탄생한 헌법이라고 볼 수 있다. 박정희는 유신헌법의 공포를 위해 1972년 10월 17일에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킨다. ‘10․17 비상조치’라는 당시의 제3공화국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에게는 국회해산권뿐만 아니라 헌법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는 어떠한 권한도 대통령에게는 없었다.

<종신대통령을 꿈꾸던 박정희의 최후>

5~7차 개헌은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 체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5차 개헌의 주요 골자는 대통령 4년 중임제로의 환원과 참의원 폐지 등이었다. 6차 개헌은 대통령의 3선 허용을 위해 1969년 이뤄졌다. 이른바 유신헌법으로 불리는 7차 개헌에선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연장, 중임제한 규정 폐지와 함께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을 보장하는 등 막대한 권력을 대통령으로 집중시켰다. 신군부가 주도한 8차 개헌은 대통령의 7년 단임제와 간접선거‧시민의 기본권 부활‧유신헌법 독소조항 삭제가 골자다. 박정희의 종신대통령의 꿈은 그의 부하 김재규에 의해 1979년 10·26사태로 18년의 독재정치는 막을 내린다...(계속)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김용택 주주통신원  kyongt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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