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 이 기 운

 

당신이 야속하기도 했다

옆집 남자가 토해낸 핏덩어리는 바닷물에 씻겨도

그 바닷가에 내리던 붉은 눈발은 녹지도 않고

그녀는 술 취한 외과의사가 잘못 연결한 내장으로 울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장애자가

어른 키보다 높은 담을 넘어가

살인죄를 지었다고

이십년 감옥살이 하는 세상에서

 

내가 옳다는 것도 아니다

최루가스에 골목길로 도망치며 쏟아내던 눈물도

예배당 지하에서 밤새 몸부림치며

목이 터져라 기도하며 흘리던 눈물도

돌에 맺힌 이슬 같은 것이었다

네가 헐벗었을 때 나는

좋은 옷을 입기 좋아했고

네가 허기진 마음으로

차가운 감방에 있을 때

나는 무심하고 무정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당신이 울고 있는 줄은 몰랐다

당신이 추위에 떨며 죽어가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 이유도

눈이 내리는 이유도 몰랐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나는 알고 싶다

울고 있는 당신의 마음, 죽어도 죽지 않는 사랑을

사람들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를 얘기하지만

나는 보고 싶다

가난한 사람들이 수치와 모욕을 당하지 않고

아픈 사람이 차별 없이 보살핌 받으며

약하면 약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그리고 그 나라에 합당한 나를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이기운 주주통신원  elimhil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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