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짝사랑

<도올의 중국일기>(2015)는 도올 김용옥 선생이 최근 1년 동안 중국 대학(연변대)에서 객좌교수로 있으면서 중국에서의 체험을 일기 형식으로 풀어낸 책이다. 총 1.2.3.4권이 나왔다. 지난 8일 한겨레주주통신원 수도권모임에서 고봉균 주주통신원이 이날 참석한 주주통신원에게 선물로 30질을 선물로 증정했다. [편집자 주]

 

2015년 12월 9일. (아침에 짙은 안개, 낮엔 푸근히 맑다)

8일 낮에 상경했다가 9일 새벽 경주에 도착했다. 한겨레:온 편집회의를 마친 후 수도권주주통신원 송년회에 동석했다. 무척 흥겨운 시간이었다.

<도올의 중국일기1〜4권> 한 아름을 끌어안고 경주로 왔다. 고봉균서울통신원이 120권을 사서 한겨레주주통신원들에게 선물한 것이다. 내가 지금껏 처음 본 광경으로 대단한 ‘도올’ 사랑을 나눈 것이다. 이런 일 쉽지 않다. 금액을 수백 배 상회하는 열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세상을 넓고 깊이 보자는 뜨거운 채근이다. 이 고마움은 내가 사는 동안 더러는 기억할 것이다.

9일 아침, 나에게 급히 부탁했던 원고의 자료들을 돌려달라며 누가 방문했다. 서울 가기 전까지 급히 마무리하느라 아주 피곤했던 터다. 잠이 깨어도 잠이 덜 깨어 멍충했다. 새벽에 귀가해 베개 옆에 쌓아두어 함께 잤던 도올선생의 일기도 눈을 빤히 떴다. 여자가 보아도 매력적인 두 여자가 화려한 유혹을 했다. 책의 유혹은 늘 즐겁다. 몇 장 읽는 동안 카톡이 법석을 떨었다.

-전부터 내가 짝사랑한 이 남자. 완전 전부 사랑해 버릴 것 같은 이 불행한(?) 예감. 내가 정말 좋아하는 똑소리 나는 문장. 입체적 시야! 이 아침 나는 좋아서 환장하고 있습니다. 밀린 원고들이 너무나 많은데...대체 누가 나에게 이 매력적인 남자를 선사했나요? 너무 좋아서 난감하고 거룩한...도올 아니, 도올의 책과 함께 가출하고 싶어요. 불륜의 연인들이 야반도주하듯...나의 현실에서부터 달아나 며칠 그(책)와 함께 밀월을 즐겼으면...미치겠는 아침입니다.

-금방 ‘베스트 엄지 척’ 이모티콘이 떴다.

-와우〜최고!!! 도 떴다.

-나 인제 참말로 도올의 가슴팍에 얼굴을 팍 묻을랑께 못 본 척 하시오.

이렇게 넉살을 떤 후 다시 책의 초입부와 연애 중인데,

-‘김환영의 직격인터뷰’ 철학자 도올 김용옥...동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이 좀 길어서 아침밥을 차리며 식탁 위에 올렸다. 도올의 말이 잠시잠깐씩 끊어지다 이어졌다.

-우리와 비슷한 머리통을 가진 도올의 머리에 워낙 방대한 분량의 지식이 들어 있다 보니 글보다 말이 매끄럽지 못한 거라는 내 생각.

이 글을 마지막으로 카톡을 무시하고,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언제 올래?”87살의 엄마는 너무 심심한 아이처럼 보챈다. “엄마 내가 많이 바빠서 주말에 갈게.” “내가 곧 죽지 시푸다.” 설마, 엄마보다 내가 짝사랑하는 도올의 일기를 훔쳐보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효도는 빚이다. 나는 썩 부유한 심사의 딸이 못 된다. 하도 큰 금액이라 막연히 아까운 듯 조금씩 분할해 건넨다. 한편 일생 빚쟁이로 살며 양심이 쪼들린다.

다시 책을 폈다.

근데 첫 장부터 들리던 소리가 또 시끌하다. 글에서 자꾸 소리가 들려 진도가 더디다. 바로 도올의 목소리다. 시니컬하면서 히스테릭한, 풀 잘 먹인 창호지를 몇 갈래로 찢는 것처럼 독특한, 도올의 특징적 음색. 결코 매력적인 미성도, 저음의 멋진 울림도 없는, 그 어투가 묘하게 사람을 긴장시키는 예리함. 다시 책을 덮었다 열어도 여전히 그의 글이 말이 되어 방안을 채웠다. 참 곤란한 환청이다.

사진이 있어서 그의 일기 속으로 금방 들어가 동행이 되었다. 전두엽이 유난히 발달한 그의 고집불통 이마빡을 보며 실실 웃음이 나왔다. 나는 늘 그의 이마가 가장 인상적이다. 사실 도올은 이마 밖에 볼 게 없다. 어디 한 군데 잘 생기거나 그윽히 매력적인 체격도 아니고, 그래서 남성적이지 않고 그냥 사람적이다. 그저 그의 전두엽만 한 없이 부러울 뿐이다.

세계적 석학인 그가 집안 구석구석 철저한 청소를 하는 모습, 참 매치가 안 된다. 단단한 결벽증과 머리카락으로 홈을 파는 흥정쇼핑이 귀엽기까지 하다. 백학의 날개처럼 펄럭거리던 그의 청결한 두루마기자락이 그의 심사와 꼭 어울려서 신뢰가 간다. 유별난 나처럼 그가 점검의 깔끔쟁이며, 까칠까칠한 관찰력의 소유자여서 반가웠다. 역시 일기답게 사생활을 훔쳐보는 재미다.

지난 달 예술인교류행사 차 중국 시안에 다녀온 나는 여행 후기를 구상 중이다. 13년 만에 본 중국의 변화에 크게 놀라고 있다. 중국을 좀 더 깊이 알아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던 터다.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무분별의 폐해를 걱정하며 불안에 휩싸이던 적절한 시기에 읽는 <중국일기>다. 그래서 글이 달디 달다. 앎의 기쁨에 젖는 희열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21세기 인류의 미래는 중국문명이 어느 진로를 밟아나가느냐에 달려 있다.(38P)

내 생각도 그랬다. 막연했던 나의 우려를 그는 구체적으로 풀어낸다. 그게 도올이다. 선생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이 시대의 선생.

공산주의의 특징은 인민의 사고방식을 도식적으로 획일화 시켰다. 마치 헐리웃영화 ‘쇼생크 탈출’에서처럼 감옥에서 풀려나도 스스로 자립성을 잃듯, 지금 중국인들은 방만히 주어진 자본의 사유가 서툴다.

--불교의 핵심은 철리哲理이지 종교적 계율이 아니다. 공자의 핵심은 인仁이지 도덕규범이 아니다. 전통문화는 사유방식이지 예절이 아니다.(57P)

이 명쾌한 정리 앞에서 나는 기어코 책을 덮고 담배를 물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한다. 흘러넘치는 정보와 지식에 갇혀 있으면서도 내 것을 지닌 이는 드물다. 손바닥만 한 칼럼 하나에 서너 개 등장하는 지문誌文을 볼 때면 불완전한 자신의 철학을 ‘카더라’에 의존해서 씁쓸하다. 어느 분야든 자신의 것을 확고히 가지지 않는 설익은 전문가들은 변절의 위험성을 지닌다.

오후 세 시경 이웃집에서 콜이 왔다. 두 집의 남정네들이 감포 바다에서 학꽁치 낚시를 해서 돌아왔다는 초대다. 이런 초대 거절하면 다음엔 국물도 없는 수가 있다. 김장김치를 곁들인 회는 야들야들 달고 혀에 감겼다. 소주 대여섯 잔을 곁들이고 다섯 시 경에 귀가해 다시 독서.

--예술가랍시고 찻잔에 온갖 색칠과 문양을 가하는데...차는 우선 그 순결한 색깔로써 음미되는 것이다. 백자가 아니면 차를 우려낸 농담을 알 수 없다...찻잔의 모양과 두께와 아구리의 선...날렵한 곡선은 날카로우면서도 예리하고...입술에서 떨어지는 순간 절수가 된다...주둥이 끝, 물이 떨어지는 최후의 부분이 날카롭고, 절수가 잘 되는 각도...(153, 154P)

바로 이런 거다. 그의 철학의 완성도는 너절하거나 구질하게 번거롭지 않다. 한 모금 찻물에서도 그의 관찰의 완전하다. 나는 잔이나 다완, 주전자에서 물이 질금질금 흘러내려 다상을 어지럽히는 경우를 예사로 보아왔다.

그의 글을 읽으며 자꾸 맞다, 맞다를 거듭하는 이유가 바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완벽성 때문이다. 대충주의자들에겐 피곤할지 모르지만 나는 정말 동의한다.

--(242〜243P) 으레 외로울 아프리카 유학생에게 조곤히 말을 건네는 그를 보면서 촌철살인의 그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가 뭉클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우주이며, 찰나의 시간 위에 서로의 눈을 대하는 일은 얼마나 오묘한 우연인가. 아프리카인인 청년의 고적을 이해한 그는 흔한 위로가 아닌 관심의 진정성을 보인다. 휴머니즘의 실천적 행동이다. 착한 사마리안인의 심성이 그러하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나 가족의 걱정 따윈 사소히 생각할 것이다.

그의 시야는 민족성의 한계에서 벗어나 인류에게 열린 한 없이 크고 긴 투명한 세계다. 그 길은 이타심으로 닦인 길이다. 자신의 한 생을 타자를 위해 세상의 변화를 위해 달려가는 런웨이다. 그에게 근본적 이타심이 없다면 자신의 학문이나 소롯이 닦아 수십 년을 교단에서 앵무새처럼 우려먹으며 출세지향을 위해 목이나 빼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도무지 보기 드문 그런 스케일의 그가 커튼을 바꾸러가는 대목에선 어쩌면 디테일이 나와 같아 오글거렸다. 닮은꼴은 충분한 이해가 쉽다.

--동물을 애완하는 자들은 동물을 자기의 종속물로 만들며, 그만큼 휴먼 인카운터를 상실한 인간일 수 있다. 인간에 대한 보편적 인仁으 감정을, 사감의 영역에 종속된 동물에 대한 정념으로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305P)

아아, 수상시장의 개고기 부문에서 나는 마음이 몹시 언짢았다. 적나라한 사진을 보며 순간 책을 떨어뜨릴 뻔 했다. 그가 말하는 ‘휴먼 인카운터’에 전적으로 동감하지 않는다. 언젠가 홍세화선생의 글에서도 유사한 평가를 보았다.

내가 지금껏 봐 온 동물애호가들은 정서가 다를 뿐이다. 미물에게 정을 주듯 인간의 고통에는 누구 못지않게 감정이입이 신속하고 깊다. 이타심으로 가슴이 여린 사람이 수고롭고 성가신 미물을 거둘 수 있다. 아직 그 느낌을 모르는 것은 직접 체험하지 않아서이다. 객관적 관점으로 동물과 인간의 유대감을 평가하는 일은 경솔하며 위험하다.

꽃이나 하늘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듯 우주 근원적 생명 사랑이 반려견이나 반려묘다. 그리고 왜 소나 돼지는 예사롭게 보고 먹으면서 개를 특별히 여기는지는 직접 개와 살아봐야 안다. 살아보지 않으면 절대 모르는 교감소통 때문이다. 소나 돼지의 두뇌감정과 개는 엄연히 다르다.

인간의 언어와 행동에 대한 개의 인지력과 기억력은 소름 돋을 정도로 탁월하다. 그들의 언어를 인간은 거의 모른다. 누구는 견과 개를 구분한다지만 나는 동일하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지구가 곧 우주이며, 지구별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인간만이 존재의 일인자가 아니다. 이런 면에서 우월성의 순위를 떠난 고등생물에 대한 겸손한 이해가 필요하다. 개는 일반적 동물과 확연히 다른 이해체계를 갖춘 각별한 존재다.

자정이 가까울 무렵 1권 통독을 끝냈다.

마른 스펀지처럼 늘 지식에 목마른 나는 1권을 충분히 흡수하진 못했다. 나의 정신세계 역량이나 두뇌의 용량이 아주 당연히 도올만 못하기 때문이다. 2권의 고구려도읍지 억새밭에서 책장을 덮었다. 이 귀한 책을 주신 고봉균통신원님께 다시 한 번 깊은 고마움을 올린다.

이 글을 끝낸 다음 바로 <불교신문>에 보낼 칼럼을 써야한다. 마감 날이다.

편집 : 김미경 부편집장

이미진 편집위원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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