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설 명절 잘 보내셨죠?

오늘이 벌써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네요.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서 꽃 소식 올라오고 있어요. 헌데, 한파가 온다는 소식 또 있네요. 환절기 건강관리 잘 하세요.

참, 올 신축(辛丑) 새해 아침엔 제자들에게 지난번 선생님께 보내드린 학명선사(鶴鳴禪師) 의 그 시, <몽중유>(夢中遊)를 '새해 인사' 로 보냈어요.

妄道始終分兩頭
冬經春到似年流
試看長天何二相
浮生自作夢中遊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마시게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시게나, 저 하늘을! 달라진 게 있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서 떠돈다네.

학명선사(鶴鳴禪師,1867-1929)의 선시(禪詩), <몽중유>(夢中遊)의 전문입니다. 신축년 새해 아침에 이 시 묵상하며 지난 한해 돌아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후의(厚意)에 깊이 감사하며 올 한 해도 한송회(漢松會) 가족 여러분들의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늘 충만하시고 건강히 황소처럼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그런 한해 되시기 바랍니다.

흰 소의 해 설날에
김포 여안당에서
한송 포옹

선생님, 이렇게 새해 인사 보냈더니 법송(法松)이 다음과 같이 답글 보냈더라고요.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旣無長繩繫白日
又無大藥駐朱顔
朱顔日漸不如故
靑史功名在何處

세월 묶어둘 긴 밧줄 없고,
젊은 날 붙잡아 둘 금단약 또한 없네.
붉은 얼굴 날로 옛 모습 잃어가니,
역사에 남길 만한 공과 이름 없다네.

해마다 송구영신(送舊迎新) 즈음이면

백낙천(白樂天,772-846) 선생의 호가행(浩歌行) 구절에 생각이 늘 머물렀습니다만, 학명(鶴鳴) 선지식의 선시(禪詩)로 일깨워주시니 다시금 스승님의 가르침에 감사 올립니다.

새해 익장(益壯) 하옵소서!

신축 설날 아침
제자 법송 큰절

제자 법송이 이렇게 보냈더라고요.

선생님, 선생님은 이 두 시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그래요. 똑 같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이지만 각자의 위치에 따라 느낌이 달라요.

선생님께서도 아시겠지만 백락천은 중당기(中唐期)의 시인으로서 원 이름은 백거이(白居易)이고, 호는 취음선생(醉吟先生), 향산거사(香山居士)이며, 낙천(樂天)은 그의 자(字) 예요. 위의 시는 그의 시 <호가행>(浩歌行;큰 소리로 노래하다)의 일부로 한해를 보내는 느낌을 읊은 거예요.

전문을 보면 그의 나이 47세 때 지은 것으로 한 해가 지나면 또 한 살 먹겠지 하며 세월의 흐름 속에 거울을 들여다보며 "세월은 묶어둘 긴 밧줄 없고, 젊은 날 붙잡아 둘 금단의 약도 없다네"하며 세월 속에 인생의 무상함을 한탄하고 있어요.

헌데, 학명선사는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마세요"하며 오고감(去來)이 없음을 갈파(喝破)하고 있어요.

선생님, 본래 오고감이 없는데, 사람들은 새해가 왔다고 호들갑을 떨어요. 다만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는 건, 현상의 변화이지 본질적 바뀜이 아니거든요. 헌데, 사람들은 본질은 보지 않고 분별망상(分別妄想)에 빠져 있어요.

학명선사의 위의 시는 이를 깨우친 거예요.

그동안 우리는 당송 유가(儒家)들의 사고의 틀에 갇혀 본질은 못보고 현상만을 보고 해가 바뀌면 으레 위의 백락천의 시를 인용해 새해 인사글로 인용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를 깨우치기 위해 제자들에게 학명선사의 선시를 새해 인사로 인용한 거예요.

헌데, 제자 법송이 이를 깨닫고 "올해 학명 선지식의 선시로 일깨워 주시니 다시금 감사하옵니다"했어요.

선생님, 보세요! 저 하늘이 달라진 게 있는가?
오고감이 없는데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돌!

2021. 2. 18. 우수

김포 여안당에서
한송 포옹 쓰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정우열 주주통신원  jwy-han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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