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평화스러운 우주에 뽀얀 먼지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지구의 먼지가 온 우주로 퍼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인의 혼탁한 영적 기운(靈的 氣運)이 우주에서는 먼지로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주를 총괄하는 각 은하계 대표들과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책회의를 열었다. 지구를 어찌할 것인가. 살릴 것인가 멸할 것인가 방치할 것인가.

성미급한 우주방어 사령관이 포문을 열었다.

" 더 이상 지구를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이제 작전을 시행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은하계 대표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듯이 지구를 멸하기라도 하겠다는 것입니까?"

강직한 성품의 우주문화보호 장관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지구를 멸하는 것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요. 지구인의 타락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이제 와서 급작스럽게 지구를 멸할 건 없소이다. 지구의 타락도 우주문화의 일부이고  하나의 과정으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구로부터 오는 혼탁한 영기가 우주를 오염시키고 있어서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지구가 소속된 은하계 대표가 입을 열었다.

"저희 은하계의 일로 전 우주에 혼란을 끼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은하계에서도 지구가 속한 태양계에 문제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건 저희 은하계에 속한 일이니 저희가 알아서 조치하겠습니다."

우람한 체구의 우주방어 사령관이 짜증을 내며 언성을 높였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이오?  지구의 혼탁한 기운이 지구가 속한 은하계를 넘어 전 우주로 전염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책도 없이 무작정 기다려 달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이들의 토론을 조용히 지켜보던 우주영성전담 장관이 우주사령관을 나무라듯이 말했다.

"에덴동산에서 지구인의 영성이 타락한 이후 나는 지구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었소이다.  그들의 물질문명이 최고도에 달한 지금 지구인의 영성이 바닥을 치고 있지요.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말입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녕 몰라서 그러십니까?"

우주방어사령관이 주춤하는 사이 지구를 관장하는 은하계 대표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지구에게 기회를 준 이상 끝까지 지켜봐야 합니다. 일단 지구의 혼탁한 영기가 온 우주에 전염되지 않도록 특별방역대책을 저희 은하계에서 마련 중입니다. 결코 우주가 오염되지 않도록 할테니 작전은 미뤄주기 바랍니다."

옆에 있던 다른 은하계 대표가 의구심을 표했다.

"그대의 은하계에서 시의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인접해 있는우리 은하계가 제일 먼저 오염될 처지에 있습니다. 지구에 대한 대책이란 게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겠소?"

지구가 속해  있는 은하계의 대표가 난감한 듯이 말했다.

"지구를 구할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그것은 극비사항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우주영성전담 장관과 차관에게 자문을 구하여 지구인의 영성이 회복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는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우주영성전담 장관이 동의한다는 듯이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인간은 창조주의 눈으로 볼 때 먼지에 불과한 존재들이오. 우리가 지구인들을 비난하고 있지만 우리도 한 때는 먼지에 불과한 존재들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영성회복프로그램으로 겨우 인간 본연의 순수의식을 되찾은 게 불과 만년 밖에 되지 않았어요. 수천억 년 우주역사에서 만년이나 천년은 이침이슬처럼 찰나의 순간에 불과합니다. 지구인의 영성 회복을 위해 앞으로 백년인들 못기다리겠습니까."

"맞습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시절을 잊어서는 안 되지요."

은하계 대표들이 영성전담 장관에게 동의를  표하자 우주방어사령관도 더 이상 어쩌지 못했다. 그러자 우주영성전담 차관이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인간의 순수의식이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인간은 실제로도 먼지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이성이라든가 감정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도대체 영성에 기여하기보다는 물질주의와 감각적 이기주의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지구인들도 스스로를 비웃듯이 자조적으로 그런 말을 하곤 합니다. "

그러면서 지구의 철학자 파스칼이 한 말을 들려주었다.

- 인간은 자연적 오류로 가득하며 모든 것이 그를 기만한다. 이성과 감각, 이 두 원리는 각기 진실성을 결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호 간에 기만한다. 감각은 그릇된 외양으로 이성을 기만하지만 감각은 정신세계에 가한 것과 똑같은 기만을 정신으로부터 당한다. 정신이 감각에게 복수하는 것이다. 정신의 정념들은 감각을 혼란에 빠트리고 감각에 그릇된 인상을 준다. 그들은 경쟁하듯이 서로를 속이고 농락한다.-

우주영성전담 장관이 흡족한 듯이 회의를 마무리한다.

"파스칼이 지구인의 영성 수준을 잘 평가했어요. 그들이 스스로 이런 인식을 하고 있는 한 지구인에게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현재 지구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지만 백신으로 이를 치유하는 데에만 급급하고 말 것인지 아니면  순수의식 회복의 전환점으로 작용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인내심을 갖고 좀 더 지켜보기로 하고, 오늘 '우주와 먼지의 전쟁'에 대한 대책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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