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인데, 복수초, 변산바람꽃, 노루귀 등이 한창 피어있었다.

 

<왕이메오름>에서 만났던 변산바람꽃들이 벌써 서서히 시들고 있었다. 낙엽활엽수들이 아직 잎이 돋기 전 숲속으로 따뜻한 햇볕이 비치면 겨우내 잠들었던 봄꽃들이 피어나 봄소식을 알린다. 제주는 다른 지역보다 훨씬 먼저 이런 봄꽃들이 피어난다.
<왕이메오름>에서 만났던 변산바람꽃들이 벌써 서서히 시들고 있었다. 낙엽활엽수들이 아직 잎이 돋기 전 숲속으로 따뜻한 햇볕이 비치면 겨우내 잠들었던 봄꽃들이 피어나 봄소식을 알린다. 제주는 다른 지역보다 훨씬 먼저 이런 봄꽃들이 피어난다.

2월 마지막 날 고향 친구와 함께 제주 <왕이메오름>을 올랐다. 얼마 전 지인의 페이스북에 왕이메오름을 다녀와서 복수초 등 꽃 사진을 올린 것을 보고 왕이메오름을 찾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왕이메오름은 서귀포시 안덕면 광평리에 자리 잡고 있다. 승용차나 버스 등을 이용하여 제주시와 서귀포를 연결하는 평화로(1135번 도로)를 달리다 보며 들불축제를 벌이는 <새별 오름>이 나온다. 새별 오름은 평화로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고 그 반대편인 평화로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오름이다.

<왕이메 오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
<왕이메 오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

인터넷 검색을 하였더니 <표고 : 612.4m 비고 : 92m 둘레 : 3,665m 면적 : 709,179㎡ 저경 : 1,174m>라고 기록되어 있다. 제주의 오름들도 바다 가까운 곳에 있는 오름들은 상록활엽수들이 주종을 이룬다. 그렇지만 이곳 왕이메오름은 서어나무, 상수리나무와 같은 참나무들, 때죽나무, 팥배나무, 예덕나무 등 한라산 600~800m 고도의 지역에 많이 자생하고 있는 낙엽활엽수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오름 입구에서 굼부리 쪽을 향해 걸어가는 길에는 이렇게 울창하게 삼나무 숲이 잘 조성이 되어 있었다.
오름 입구에서 굼부리 쪽을 향해 걸어가는 길에는 이렇게 울창하게 삼나무 숲이 잘 조성이 되어 있었다.

이곳 오름은 개인 사유지라서 오름을 들어가는 입구에 삼나무 숲이 울창하게 잘 조성이 되어 있다. 그 숲길을 걸으면 여름에도 더운 줄 모를 정도였다. 삼나무 숲길을 지나 한 10여 분 오르니 오름의 굼부리(분화구의 제주 용어)가 나왔다. 굼부리 주변으로는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어깨를 걸고 늘어서 있는 것 같이 연봉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 분화구는 깔때기 모양으로 생겼는데 그 깊이가 101.4m라고 하니 다른 오름들에 비하여 깊고 넓은 편이다.

얼음새꽃, 눈색이꽃 등으로 불리는 복수초들이 굼부리와 능선 길에 거대한 군락을 이루어 한창 피고  있었다.
얼음새꽃, 눈색이꽃 등으로 불리는 복수초들이 굼부리와 능선 길에 거대한 군락을 이루어 한창 피고 있었다.

친구와 나는 분화구 가운데 나 있는 사람들이 다녔던 길을 오르면서 복수초 등 봄을 알리는 들꽃들을 찾아보았다. 분화구의 제일 깊은 곳을 지나 분화구를 감싸고 있는 능선 길을 오르면서 보니 낙엽이 져 있는 나무 밑에 복수초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복수초는 얼음 틈새를 비집고 피어난다고 하여 '얼음새꽃',  '눈색이꽃' 등의 별칭을 갖고 있다. 복수초(福壽草)는 장수와 만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있는 꽃으로 일본인들이 유난히 좋아한다. 제주지역 복수초는 꽃과 잎이 함께 피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변산바람꽃> 바람꽃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피어나 봄을 알리는 꽃이다. 2월 말 왕이메오름에서는 변산바람꽃들이 한창이었다.
<변산바람꽃> 바람꽃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피어나 봄을 알리는 꽃이다. 2월 말 왕이메오름에서는 변산바람꽃들이 한창이었다.

.그런가 하면 바람꽃 종류들 중에서도 제일 먼지 피어 봄을 알린다는 <변산바람꽃>들 또한 많이 자생하고 있었다. 변산바람꽃은 <너도바람꽃>의 일종이다. 전북 내 변산 지역에 많이 자생하여 붙여진 이름이지만 변산에만 자생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 남부지방 여러 곳에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노루귀> 꽃과 아직 피지 않은 <개구리발톱>의 잎이 나 어울려 있었다.
<노루귀> 꽃과 아직 피지 않은 <개구리발톱>의 잎이 나 어울려 있었다.

 

미나리아재비과의 바람꽃 종류들은 꽃받침과 꽃부리가 구분되지 않는다. 이런 식물들의 꽃의 형태를 <화피>라는 용어로 부르기도 한다. 꽃대는 보통 높이 10cm가량이고 꽃자루는 1cm 정도이며 가는 털이 있다. 화피는 흰색이고 5장이며 달걀모양이다.

안산 앞에 있는 풍도라는 섬이 봄의 들꽃들로 유명하여 많은 들꽃 애호가들이 찾는다. 풍도에도 마찬가지로 복수초와 너도바람꽃의 일종인 풍도바람꽃, 꿩의바람꽃 등 바람꽃 종류들이 많이 핀다. 풍도의 봄꽃들은 주로 3월 20일을 전후하여 한창 피지만 이곳 왕이메오름은 제주에 있어 풍도보다도 훨씬 이전에 피어나 봄을 알리고 있었다.

<노루귀>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 봄을 알리는 미나리아재비과의 들꽃, 잎이 마치 노구의 귀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꽃 이름이다. 꽃은 흰색과 연분홍색으로 핀다.
<노루귀>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 봄을 알리는 미나리아재비과의 들꽃, 잎이 마치 노구의 귀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꽃 이름이다. 꽃은 흰색과 연분홍색으로 핀다.
<새우난초>들이 따뜻한 봄을 기다리며 복수초들과 어우러져 있었다.
<새우난초>들이 따뜻한 봄을 기다리며 복수초들과 어우러져 있었다.

다시 산의 능선 길에 올라서 걸으면서 보니 노루귀들과 복수초 등이 한창 피어있었다. 노루귀 밑에는 <개구리발톱>이 아직은 꽃을 피우지 않고 꽃피는 봄을 기다리며 잎들만 빼곡히 내밀고 있었다. 능선 길을 걷다 보니 복수초와 어우러진 새우난초 군락도 만날 수 있었다. 4~5월 따뜻한 봄에 새우난초 꽃이 활짝 피어있을 왕이메오름 능선 길을 상상해 본다. 

낙엽활엽수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왕이메오름>의 능선 길
낙엽활엽수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왕이메오름>의 능선 길

왕이메오름은 분화구의 둘레가 거의 4km에 달하여 높고 낮은 오름들을 오르내리며 한 바퀴를 돌려면 1시간은 충분히 걸릴 것으로 추정이 된다. 우리는 능선 길을 다 돌지 않고 능선 길의 약 절반 정도를 걷으며 꽃 사진을 찍으며 내려왔다.

일본군들이 태평양 전쟁 때 미군과의 싸움을 하기 위하여 파놓은 수직 진지 동굴이다. 입구에는 각종 양치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일본군들이 태평양 전쟁 때 미군과의 싸움을 하기 위하여 파놓은 수직 진지 동굴이다. 입구에는 각종 양치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능선 길을 오르다 보니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이 파 놓은 수직 동굴도 만날 수 있었다. 동굴 밑에서 따뜻한 김이 올라오니 동굴 입구는 고사리 종류들이 파랗게 자라고 있었다.

<왕이메오름>이라는 이름이 특이하여 인터넷 백과를 검색해 보았더니 그 옛날 탐라국 삼신왕이 이곳에 와서 사흘 동안 기도를 드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즉 <메>라는 용어는 <뫼>의 제주식 발음인 것이다. <왕이메>는 ‘왕의 산’이라는 뜻이다.

<왕이메오름>에 오르면 멀리 많은 오름들이 연이어 뻗어있어 오름의 파노라마를 연상케 한다.
<왕이메오름>에 오르면 멀리 많은 오름들이 연이어 뻗어있어 오름의 파노라마를 연상케 한다.

 

오름의 정상에 해당하는 높은 곳에 올랐더니 주변의 정물오름, 당오름, 영아리오름, 원물오름 등이 많은 오름들이 파노라마처럼 연이어 늘어서 있는 모습이 다정다감하게 다가온다. <왕이메오름>은 사유지가 많아 입구에 주차장 시설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주차하기에는 불편하다.

왕이메오름에서 복수초들을 많이 만나고 보니 필자가 2014년에 출간한 ‘애기똥풀’이라는 시집에 실었던 ‘복수초’ 시 한 편이 생각나 가져왔다.

<복수초> 만복과 장수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상징과 같은 꽃이다. 얼음이 녹지 않은 계곡에서 얼음 틈을 비집고 솟아올라 봄을 알리는 꽃이다. 일본인들이 무척 좋아하는 꽃으로 일본에는 120여 개의 품종이 있을 정도라 한다.
<복수초> 만복과 장수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상징과 같은 꽃이다. 얼음이 녹지 않은 계곡에서 얼음 틈을 비집고 솟아올라 봄을 알리는 꽃이다. 일본인들이 무척 좋아하는 꽃으로 일본에는 120여 개의 품종이 있을 정도라 한다.

 

복수초

       - 김광철

 

눈색이, 얼음새꽃

너는 정녕 내 님의 화신이었다

지난 몇 년 인고의 세월을 이기고

이제 막 얼음장 녹이고 봉곳이 솟아오른 그대

네 꽃밥 하나하나에 맺힌 기막힌 사연들

사설이 되어 되뇌게 하는구려

산개구리 울고

누에가 꼬치 치고

귀뚜라미 달빛 곱게 머금은 밤에

콩밭 고랑에선 까맣게 익어가는 까마중 향기 머금고

누런 장맛으로 숙성되어

가난하고 서러운 사람들 모야 사는 동네

힘들고 지친 사연들 들어주러

은은한 초록별 받고 더욱 화사하고 싶어

반달 바닷가 동네 골짜기에 오셨구려

아직 별빛 한기 버리지 못한 눈 발치에서

눈싸라기, 가랑잎 소리 살살 헤치며 살며시 비집고

솟아올라 황금빛 밝히니

매화향 더욱 청량하고

초록 별빛 더욱 사랑스레 감싸누나

그 기를 받아

힘들고 지친 아비, 어미들 대신하여

어린 영혼 감싸 따스한 온기 불어넣어주러

그 여린 꽃망울 터트리는가

차디찬 얼음장 녹이고 다가온

그대 꽃 중의 꽃으로

만복과 만 생명을 잉태하고

환생하였는가

그대 피곤함일랑

그대 몸 괴로움일랑

황금 꽃잎, 초록 별꽃으로 감싸 안고

삭여버리시고

수복의 탐스런 열매로 화답하소서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광철 주주통신원  kkc0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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