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항(姜沆)은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유봉마을에서 1567년 6월 23일(음력 5월 17일)에 태어났다. 1618년 6월 27일(음력 5월 6일)에 생을 마감한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의병장이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태초(太初), 호는 수은(睡隱)이다. 좌찬성 강희맹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강극검(姜克儉)이고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강항은 16살에 향시, 21살에 진사에 합격하고 27살에 과거에 합격해 벼슬길에 들었다.

강항 선생
강항 선생

1597년 휴가로 고향에 머물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그때 강항은 남원에서 명의장군 양원(楊元)에게 보내는 군량미 수송임무를 맡아 활동했다. 그러나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함으로써 육지로 연결되는 길이 뚫려 왜군이 파죽지세로 밀고와 공격 개시 사흘 만에 남원이 함락되었다.

고향 영광에서 종사관 김상준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지만 영광마저 함락 당하자 강항은 식구들을 거느리고 피난길에 올라 이순신에게로 가려다가 논잠(論岑) 포구(지금의 전라남도 영광군 염산면)에서 도도 다카토라의 수군에 포위되었다. 강항은 죽을 각오로 일가족과 함께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얕은 수심 때문에 왜군이 던진 갈고리에 걸려 잡혔고 그 와중에 아들 용과 서녀(庶女) 애생을 잃었다.

포로로 잡힌 강항 일가는 순천에서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일본으로 압송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 30세였다. 10여 일 만에 지금의 일본 에히메현 오쓰시 나가하마(長濱)항구에 도착, 지금의 히지강을 지나 이요(伊豫)의 오쓰(大洲) 성에 이른 강항은 그곳에서 승려 요시히토(好仁)와 교류하며, 그로부터 일본의 역사, 지리, 과제 등을 알아낸 후 적중견문록(賊中見聞錄)으로 엮어 몰래 본국으로 보내기도 했다.

이후 교토(京都)의 후시미(伏見)성으로 이송되어 이곳에서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 아카마쓰 히로미치(赤松廣通) 등에게 성리학을 가르쳤고, 세이카는 일본 주자학의 개종조사가 된다. 당시 세이카와의 만남에 대해, 강항 자신은 간양록에서 "글씨를 팔아 은전을 좀 벌어서 배를 마련하고자", 즉 다시 조선으로 돌아갈 비용을 벌기 위해 그에게 글씨를 써주었는데, 주자학에 대한 세이카의 열의에 감탄해 그에게 성리학을 가르쳐주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세이카와 강항이 필담으로 주고받았던 또는 강항이 세이카를 위해 암기하고 있던 주자학 이론들을 적은 글들은(총 21권) 현재 일본의 덴리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당시 일본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강항이 전한 성리학이 일본근대화의 기초를 다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가 있다.

강항은 교토에서 도망쳐 온 조선인 포로를 만나 함께 탈출을 의논하고, 5월 25일 밤에 숲길을 따라 서쪽으로 탈출을 시도, 지금의 야쿠시타니 계곡에서 한 노승을 만나 배편을 구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노승과 함께 숲길을 걸어 내려오다 왜병에게 붙들려 우와지마 성의 처형장으로 끌려갔으나 간신히 목숨만 건졌다.

강항은 막부의 귀화요청을 거부하고 억류생활을 하던 그는 후시미 성주에게 자신을 조선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편지를 여러 번 썼고, 1600년에 두 제자의 도움을 받아 가족과 함께 귀국길에 오른다. 일본에 억류 된지 2년 8개월만의 일이었다. 1602년 대구향교의 교수(敎授), 1608년 순천향교의 교수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향리에서 독서와 후학 양성에 전념해, 윤순거(尹舜擧) 등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정유재란 때 일본 포로로 끌려간 강항이 일본에서 보고 듣고, 했던 것을 책으로 엮었는데 그 책이 바로 간양록(看羊錄)이다. 간양록을 소재로 1980년대에 TV드라마도로 방영이 되었고, 1985년~1986년에는 임진왜란이란 제목으로 방영하기도 하였다. 이 극의 주제가는 조용필이 불렀으며 그 노랫말은

이국땅 삼경이면 밤마다 찬서리고

어버이 한숨짓는 새벽달일세

마음은 바람 따라 고향으로 가는데

선영 뒷산의 잡초는 누가 뜯으리 어야어야......,

피눈물로 한 줄 한 줄 간양록을 적으니

님 그린 뜻 바다 되어 하늘에 닿을세라.

일본의 시코쿠 에이메현의 시민회관 앞에 강항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그 지역에는 강항의 현창사업회가 있어 연구하고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소개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쌍운리에 있는 그를 기리는 내산서원(內山書院)에 배향되어 있다고 한다.

내산서원
내산서원

※, 간양록(看羊錄)이란 원래 제목은 '건거록'(巾車錄, 건차록)으로 강항이 저술한 포로문학의 백미이다(제자 윤순거 편찬).

※, 건거(巾車)란 죄인을 지칭한 말이다.

※, 강항의 제자인 윤순거(尹舜擧)는 충청도 논산(論山)의 구산서원(龜山書院)에 배향되어 있다.

편집 : 김태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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