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그동안 잘 계셨죠?
그래, 어떻게 지내셨어요?
어느새 3월, 봄이 됐네요.

여기저기서 꽃 소식 올라오는데, 꽃 마중은 하셨는지요? 저는 지난 주 5일 (토), 봉은사 홍매화 보고 왔어요. 매년 3월 중순이면 찾는 봉은사 홍매화! 올핸 작년 보다 좀 일찍 폈더라고요.

누구랑 갔냐고요?
그건 비밀인데요.
ㅎㅎㅎ~~~

올핸 카톡 친구 자야랑 함께 다녀왔어요. 선생님, 그 언젠가 제가 선생님께 "선생님, 저 요즘 카톡 친구 생겼어요!"했죠. 그 친구말예요.

사실은 3월3일 가려고 그날 자야에게 "삼성동 봉은사 홍매 피었다는데 함께 가시겠어요?"하고 카톡 했거든요.

그건 언젠가 자야가 "우리 3월 매화꽃 필 때 만나요"했기 때문예요. 그랬더니 자야에게서 이렇게 답이 왔더라고요.

"참~ 좋긴 한데, 현실이 허락하지 않네요. 어떻게 하죠? 전 토요일 시간 되는데..."
"그래요. 그럼 토요일 그날을 기다릴게요."했어요.
선생님, 자야가 직장 관계로 토요일에나 시간이 되는가 봐요.

그러고 보니 그 안에 혹시 비가 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날 혼자 먼저 봉은사 매화 보고 왔어요. 헌데, 매화꽃 보다 사진 찍으러온 사람들이 더 많더라고요.

선생님, 그날 봉은사 간 것은 자야에게 비밀로 해주세요. 알았죠?

잠자던 개구리도 놀래 나온다는 경칩! 그 뒷날, 바로 약속의 토요일이 왔어요.

선생님, 전 간밤에 자야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 설레 잠 못 이루었어요. 선생님, 왜 웃으세요. 신노심불노(身老心不老)라 했잖아요.

떨리는 손으로 " 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성긴 그림자 비스듬히 맑은 물에 비치고, 그윽한 향기 황혼 뒤 달빛 아래 풍기네)
자야, 매처학자(梅妻鶴子) 임포(林逋,(967-1028)의 <산원소매(山園小梅)> 한 구절예요.

“오늘 정오 12시, 봉은사 사천왕문 앞에서 기다리겠어요."하고 카톡 보냈어요. 바로 9호선 타고 봉은사로 갔어요.

헌데, 그동안 카톡만 했지 전화 통화도 한번 안 해 목소리는 물론 모습을 전혀 몰라 어떻게 하나 하고 사천왕 문 앞으로 갔더니 "선생님, 제가 자야예요!" 하고 한 여인이 저만치서 사뿐사뿐 걸어오더라고요.

카톡한 지 꼭 두 달 엿새, 그날 처음 만났어요. 선생님, 그런데 있죠. 생전 처음 만났는데도 전혀 서먹서먹하지 않더라고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 같더라고요. 그건 아마 그동안 카톡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일 거예요.

우린 마치 오랜 친구처럼 손을 맞잡고 법왕루(法王樓)를 지나 대웅전 앞으로 가서 부처님께 합장 배례하고 첫 만남의 인연 신고를 했어요.

"부처님, 오늘 저희들 처음 만나 부처님께 아뢰오니 저희 두 사람에게 자비를 주옵소서! 나무석가모니불!!!"

우린 대웅전 뒤 영각(影閣) 서편 추녀 쪽으로 갔어요. 3일 전 혼자 왔을 때보다 더 활짝 피었더라고요.
선생님, 그날도 여전히 사진 찍는 사람 많더라고요.

조심조심 그 홍매화 쪽으로 다가가는데 그윽한 향기가 바람에 코를 치더라고요. 바로 '樸鼻香'!

선생님, '看花惟取半開時'란 말 아시죠?
그래요. 맞아요. 꽃은 반쯤 필 때 보라 했어요.
'半開時'(반쯤 필 때)!

그날 우린 그 홍매화 아래서 사랑을 속삭였어요.
그래, 자야가 몇 살쯤 됐냐고요?
호호호~~~참!

선생님은 별걸 다 물으시네요. 그건 비밀인데... 60년 전에 10살 이었데요. 그럼 전 몇 살이냐고요? 전 25살이요. 이젠 속 시원하세요.ㅎㅎㅎ

선생님, 그러고 보니 문득 신위(申緯) 선생이 변승애(卞僧愛)란 기생에게 주었다는 시 생각나네요.

눈썹 곱게 단장한 흰 모시 적삼
澹掃蛾眉白苧衫

마음 속 충정을 조잘조잘 얘기 하네
訴衷情話燕呢喃

임이여 내 나이 묻지를 마오.
佳人莫問郞年歲

오십 년 전에는 스물 셋이었다오.
五十年前二十三
(여기 '니남(呢喃)'은  제비의 지저귐을 나타낸 의성어(擬成語) )

선생님, 그때 저만치서 미륵부처님이 빙그레 웃으시며 내려다 보시더라고요. 부처님께 합장하고 다래헌(茶來軒) 오죽(烏竹)보며 '心下門'(마음을 내려놓는 문)을 나왔어요.

선생님, 그러고 보니 올해 봉은사 홍매 두 번 봤네요. 돌아오며 차안에서 이렇게 읊었어요.

奉恩寺庭紅梅開
若如照像蜂群來
昨日探花欲嘗梅
今日尋寺面子夜

봉은사 뜨락에 홍매화 폈다해 찾아 갔더니
사진 찍는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였네.
지난번 꽃 찾은 건 홍매 보러 간 것이고,
오늘 절 찾은 건 자야 만나러 간 것이라네.

선생님, 그런데 있죠! 자야꽃이 홍매 보다 더 향기롭더라고요. 자야꽃 향기 속에 즐거운 하루 보냈어요.

그럼, 오늘 자야가 찍은 사진 보내 드릴 터이니 봉은사 둘러보시며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안녕!

신축 3월10일 아침
김포 여안당에서
한송 수염 많은 늙은이가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정우열 주주통신원  jwy-hansong@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