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긴급 청문회

언제부터인가 지구에 관한 흉흉한 소문이 은하계를 떠돌고 있었다. 지구의 종말이 임박했다느니, 기후위기로 지구가 머지않아 멸망하게 될 거라느니, 온갖 정체 불명의 소문들이 우주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소문은 태양계와 우주를 연결하는 통로를 통해서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었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있던 운석의 구멍은 한 때 우주로 연결되는 '우주의 구멍'으로 알려졌다가 지구인들에게 발각되어 폐쇄되었지만 숨겨진 다른 구멍들이 있었다. 그 구멍은 아인슈타인 로젠 다리( Einstein-Rosen bridge)라고도 불리우는 웜홀(Wormhole)로 이어져 지구의 영적 기운이 고스란히 우주로 전달되고 있었다.

지구인들은 태양질량의 450만 배인 궁수자리 A 블랙홀과 태양질량의 66억 배에 달하는 처녀자리 은하단의 M87 초대형 블랙홀을 발견했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하나의 은하계에 108개의 항성 블랙홀이 있으며 은하계의 중심에는 거대한 질량의 초대질량 블랙홀이 존재하고, 블랙홀의 온도가 외계보다 높을 경우 블랙홀은 증발하게 된다. 이러한 블랙홀이 우주의 웜홀을 통과하면서 시공간이 뒤틀어지고 시간여행과 공간이동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지구의 혼탁한 영적 기운(靈氣)이 웜홀을 통해 우주에 전파되자 은하계와 대성운도 오염될 수 있다는 우려가 갈수록 증폭되고 있었다. 심지어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우주정보국에서 지구에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를 유포시켰다는 음모론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었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본 은하수 ©게티이미지뱅크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본 은하수 ©게티이미지뱅크

우주 시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우주연방의회에서는 지구에 관한 긴급청문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청문회 대상은 우주정보국장과 우주섭리국장이었고 그 외에 우주연방정부의 각료들도 참고인으로 소환되었다. 청문회에 앞서 우주정보국장과 우주섭리국장이 신과 우주시민앞에서 한치의 거짓도 없이 진실만을 밝힐 것을 맹세하는 선서식을 하자 뒤이어 우주연방의회의원들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구에 창궐하는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생에 우주정보국에서 개입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게 사실이오?"

"우주정보국에서 지구의 바이러스 창궐에 개입한 사실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이 자리를 빌어 분명히 밝힙니다. 의원님들을 비롯한 우주시민 여러분께 아무 숨김이 없다는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하지만 우주정보국에서 지구의 역사에 종종 개입한 사례가 있음을 비추어 볼 때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이 의심스럽소."

"지구 역사에 간혹 개입한 사례가 있긴 했지만 그것 역시 우주섭리국의 요청으로 개입한 것일뿐 우주정보국에서 독단적으로 진행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자 우주섭리 국장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요즘 우주 시민들의 소리를 경청하고 있습니까? 창조주인 신의 섭리를 구현하는 담당 국장으로서 현재 지구에 관한 소문들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오."

'의원님들께서도 잘 알고 있다시피 신의 섭리는 밝힐 수 없습니다. 우주 시민들의 염려는 잘 알고 있지만 지구에 관한 소문들은 전혀 사실이 아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소. 지구에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는 그렇다고 칩시다. 기후위기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말할 수 있겠소?"

"그것은 우주생태계전담 장관이 답변할 사항으로 알고 있습니다."

"답답하군요. 그럼 우주생태계 장관이 답변해보시오."

"지구생태계가 파멸의 길로 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구가 멸망할 정도는 아닙니다. 지구 역사상 유사이래 가장 큰 규모의 대지진과 해일이 있을 것이며, 지구의 중심축이 이동함으로써 극심한 자연재해가 발생하겠지만 전 지구인이 멸종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전 지구인이 멸망하지 않는다는 말은 상당수의 지구인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오?  우주섭리국장이 답변해보시오. 지구의 앞날에 대해 속 시원히 밝혀줄 수 없겠오?"

"지구의 앞날에 있을 일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섭리는 미리 발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구의 앞날이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만 알고 계시면 되겠습니다."

"지구에는 전쟁과 폭력이 그치지 않고 있으며 지구인들의 탐욕과 야만성으로 인해 누가 보더라도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징후가 뚜렷하지 않소? 들려오는 소식들이 비관적인 내용뿐인데 어떻게 어둡지 않다는 것이오? "

"지구의 어둠과 비관적 전망을 헤쳐나갈 민족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민족이 지구를 구할 민족이라는 게요? 그 민족을 대체 어떻게 준비시켰다는 말이오?"

"그 민족은 다른 민족을 해칠 줄 모르고 선함과 의로움을 숭상하였으되 역사적으로 고난과 아픔을 겪어온 민족으로서 지구의 고난을 짊어질 민족으로 일찌감치 점찍어 둔 민족입니다."

"그 말은 지구가 처한 작금의 현실이 지구인들이 그동안 선과 의를 숭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졌다는 말로 들리는데, 맞습니까?"

"저희 우주섭리국에서는 그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지구인들의 영성이 타락한 것이  현재의 바이러스 질병은 물론이고 기후위기를 초래하게 된 근원적인 원인이라고 보고 있지요."

"그렇다면 우주섭리국에서 점찍어 두었다는 그 민족은 대체 어떻게 지구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는 것이오?"

"지구가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지구인의 영성이 전체적으로 회복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 수준이 높은  어느 한 민족이 주축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민족이 지구 구원의 임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하다고 보고 있지요."

"도대체 그 민족이 어느 민족이기에 그런 임무에 적합하다는 것인지 말해줄 수 있겠소?"

"그 민족이 어느 민족인지에 대한 사항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기 사항이었는데 이제 비밀봉인이 해제되어 밝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답변이나 하시오."

"그 민족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한민족입니다."

"그렇다면 그 민족은 자신들이 지구의 영성을 회복하고 지구의 멸망을 구할 사명감을 지니고 있는 것이오?"

"그런 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그런 사명을 감당해 나갈 것입니다."

"말이 안 되지 않소? 자신들의 임무도 모르면서 어떻게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이오?"

"그래서 그것이 바로 섭리라는 것입니다. 지구인들은 이것을 하늘의 뜻(天命)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역사적 필연이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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