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배의 민족

"그 민족이 지구의 영성 회복을 책임지고 있다면 그런 전망에 대한 전 지구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지  말해줄 수 있겠소?"

"그 민족의 가능성에 대한 전 지구적인 관심과 기대가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완전히 준비된 수준은 아니고 서서히 준비를 마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민족이 지구를 이끌만한 초강대국의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는 말인데  초강대국이나 초일류국가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구를 선도할 역량이 있다고 판단하는 근거라도 있소?"

"그 민족은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지닌 민족으로 현재 강대국의 면모를 갖춰나가는 중에 있으며  이미 그들의 선한 심성과 슬기로운 영성으로 인해 문화적 부문을 비롯한 소프트 파워 강국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문화적 강국이 되었다고 해서 경제적으로나  정치· 군사적으로 강국이 되지 않는다면 그 역할의 한계가 분명하지 않겠소?"

"그렇기는 하지만 앞으로 10년 이내에 그 민족의 역량은 비약적으로 증강될 것이며, 그 민족이 처한 고난도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또한 이를 위해 그 민족에게는 디지털기술의 미래를 보는 능력이 주어질 것입니다."

"고난이 끝나면서 강국이 될 거라는 말인데, 그 민족에게 어떤 암시라도 주어진 게 있던가요?"

"그 민족에 대한 암시는 전 지구적으로 비밀리에 그러면서도 공공연하게 유포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성배의 민족'(*註 1)에 대한 예언이 독일계 학자 루돌프 슈타이너를 통해 발설된 바 있습니다."

"성배(聖杯)의 민족이 바로 대한민국의 한민족이라는 말이요?  그 성배의 민족이라는 게 대체 무엇이오?"

"간단히 말해 성배의 민족이란  집단적으로 탁월한 영성을 지닌 민족으로서 인류문명의 대전환기에 새 문명과 새 삶의 원형을 제시하는 민족을 말합니다."

"새 문명과 새 삶의 원형을 제시한다는 것은 보통 지난(至難)한 일이 아니오. 그를 위해서 수많은 조짐과 징후가 있어야 하지 않겠소? 하늘의 일이 성사될 때는 도처에 암시와 예언이 있게 마련인 것을."

"새 문명과 새 삶의 원형은 한민족 개개인의 삶에서 제시되기보다는 현재 한민족이 처한 극심한 사회적 모순과 분열 양상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보여지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은 지극히 고통스럽겠지만 정치경제적으로 극렬한 갈등과 국난을 극복해나가는 가운데서도 문화적 콘텐츠의 주요 생산국이 되고 디지털기술의 획기적 발전과 세계적 지배력을 강화해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세계적인 선도 국가로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그 민족이 성배의 민족이라면 지구를 이끌어갈 이념이라든지  보편타당한 세계적 이데아(IDEA)가 있어야 할 것이오.  그것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겠소?"

"그 민족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며 세상을 이치와 도와 밝은 빛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이념을 수천 년 동안 간직해온 민족입니다."

"그 이데아는 창조주의 우주적  원리와 맞닿아 있는 듯 보이는데, 과연 그렇습니까?"

"정확히 보셨습니다. 그 민족은 하늘의 뜻과 원리를 삶 속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이념을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민족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 민족이 왜 숱한 고난을 겪어야 했으며 여태껏 그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는지 설명해주시겠소?"

"하늘의 우주적 이념이 한민족에게 자리 잡기 위한 '역사적 대장정'이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겠습니다. 중요한 건 이제 그 민족이 시대 정신과 민족적 이념을 전 세계에 구현할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자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우주문화부 장관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 민족은 14세기 튀니지 출신의 역사가 이븐 할둔이 말한 바 있는 ‘아사비야’(자신들의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하는 집단의 중심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집단적 연대의식)가 민족의식과 국가적 정체성으로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민족은 다른 민족을 억압하고 지배한 경험이 없으며  모든 민족, 인종들이 상호 호혜에 기초하여 글로벌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시민들이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집회를 열고 있다  / 출처: 한겨레 신문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시민들이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집회를 열고 있다 / 출처: 한겨레 신문

"이븐 할둔의 집단적 연대의식이 한민족에게는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민족의식으로 승화되고 전 지구적인 시민의식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결론적으로 말해서 지구의 문제는 대한민국의 한민족에게 맡기고 안심하면 된다는 말이오?"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 한민족은 역사적 고난을 통해 영적 기초를 쌓기는 했지만, 아직 그 고난의 부정적 잔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고난과 아픔에는 부정적인 요소들이 끼어 있어서 그 잔재를 극복해야 비로소 지구의 미래를 감당할 민족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민족의 심성이라든가 영성이라든가 하는 것이 아직 완전히 성숙한 단계에 들어서지는 못했다는 말이군요. 그들의 성숙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무엇이오?"

"나라가 아직 반 토막으로 갈라져 있어 국론분열이 심각하기도 하고 주변 강대국들의 방해와 교란 요인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주변 강대국들의 방해와 교란을 최소화시킬 방안이라도 있습니까?"

"한민족이 강성해짐에 따라 주변 강대국들의 국력은 상대적으로 약화와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며, 분단되었던 나라의 통일이 그 기폭제가 될 것입니다."

"우주섭리국의 대체적인 방향은 감이 잡히는데 그 과정이랄까 절차랄까 하는 프로세스를 짤막하게라도 말해줄 수 있겠소?"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성배의 민족으로 등장하게 될 한민족은 우선 문화적인 강국의 길로 들어설 것이며 그 다음으로 세계 최강의 디지털 산업국가의 길을 거쳐 경제적인 강국으로 가는 승기(勝機)를 잡게 될 것이고, 최종적으로 정치외교적인 강국이 되는 승기를 잡게 되고 아울러 영적인 지도국가로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정치적인 강국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그 민족의 영성이 얼마나 회복되느냐에 따라 지구를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되겠군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지구가 속해 있는 은하계의 대표도 지구인의 영성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우주영성전담 장관도 우주정보국, 우주섭리국과 협의하여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미래에 관련된 모든 일을 진행해주기를 당부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우주영성 장관이 담담한 어조로 답변했다.

"한민족이 고대 한민족 초기의 맑고 밝은 영성을 회복하려고 애쓰고 있으며, 지구가 야만과 탐욕의 물질문명에서 벗어나 문명의 원시반본을 이루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이미 가동중에 있습니다."
 

질의응답을 마치고 나서 우주 연방의회의원들이 심사숙고에 들어갔다. 청문회를 통해 우주시민들의 염려와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판단이 되자, 우주 연방의회 의장이 청문회의 폐회를 선언했다.

"오늘 청문회를 통해 온 우주와 우주 시민들은 지구에 대해 그리고 대한민국의 한민족에 대해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하게 답변해주신 우주정보국장과 우주섭리국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우주연방의회 의장으로서 지구에 관한 긴급청문회를 이것으로 마치고자 합니다."

 

(註 1) : 루돌프 슈타이너는 1861년 오스트리아 출생의 사상가이자 신비가로서 영계의 위계, 사후의 삶, 우주 진화의 과정, 영계입문의 방법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사회이론(사회유기체 3분절화 이론)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다. 유럽 녹색운동과 유기농운동,그리고 생명과 영성 대안교육의 발도르프 학교 창시자이기도 한 그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인류문명의 대전환기에는 새 문명, 새 삶의 원형을 제시하는 성배의 민족이 반드시 나타나는 법이다. 그 민족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탁월한 영성을 지녔으나 외세의 침략과 내부의 폭정으로 끊임없이 억압당해온 과정에서 삶과 세계에 대한 생득적인 꿈과 이상을 내상처럼 안으로만 간직하고 있는 민족이다.  로마제국이 지배하던 지중해 문명 시대의 전환기에는 그 성배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었으나 그때보다 더 근본적 전환기인 현대에는 그 민족이 극동에 와 있다.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 이제 그 민족을 찾아 경배하고 힘을 다하여 그들을 도우라"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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