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날에 걸쳐 손수 쓴 주례사

금년 들어서 처음으로 주례를 서게 되었다. 북향민 (북한이탈주민을 아름다운 울타리에서는 이렇게 표현함) 무료 주례를 시작으로 하여 어느덧 100회를 넘어서나 보다. 혼인(婚姻)이라는 말이 일본식 한자인 결혼(結婚)으로 자연스럽게 쓰는 사람들이 많아서 안타까운 심정이다.  장가간다는 뜻의 혼(婚)과 시집간다는 뜻의 인(姻)이 합하여 혼인(婚姻)이란 단어가 생겼다고 배운 기억이 난다. 그러나 언어의 사회성을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신부 앞에서 축가를 부르고 있는 신랑의 모습
신부 앞에서 축가를 부르고 있는 신랑의 모습

 

비혼자가 늘고 출생률률이 떨어지는 요즈음 혼인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고맙기만 하다. 그래서 그런지 예식장에 들어서면 먼저 이들의 앞날을 위하여 기도하고 예식 준비에 임한다.

처음 주례를 맡았을 때 여러 날에 걸쳐서 주례사를 손질했던 일이 스쳐 지나간다. 그동안 여러 차례 거절하다가 회갑을 넘어서면서 주례에 임하지 않았나싶다. 혹시라도 주례사를 작성하느라 고민하는 분들을 위하여 참고하시라고 주례사를 이곳에 올린다. 주례 및 실생활에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살펴보고 내 나름대로의 철학을 담았으니 나에게는 그런대로 꽤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식을 마친 후에 신랑 신부와 함께 기념 촬영
예식을 마친 후에 신랑 신부와 함께 기념 촬영

[주례사]

지금 신랑 한겨레 군과 신부 온통신 양은 여러분의 따뜻한 축복 속에 새로운 부부로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습니다.

먼저 도경원 시인의 축시 몇 소절만 낭송해 드리겠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이름’

신랑이여 신부여 그대들이 입고 있는 연미복과 하얀 드레스의 의미를 아시나요? 세상의 모든 색을 합한 검은 색과 세상의 모든 색을 걷어낸 하얀 색은 그대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라오. 그대들이 가진 모든 색깔로 그대들의 하얀 바탕에 그림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그림을 그려요. 부디 그런 그림을 그려요.

이어서 한마음으로 앞에 있는 신랑 신부에게 값진 말씀을 나눠주기 원합니다.

첫째, 초지일관(初志一貫)입니다. 자라온 환경과 성격, 습관, 인생의 목표, 가치관 등 대부분이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 이 순간의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가짐으로 평생 하나가 되는 노력을 지속하십시오.

둘째, 부모봉양(父母奉養)입니다. 사자소학의 맨 첫머리에 언급되는 것이 부생아신(父生我身)과 모국오신(母鞠吾身)이지요. 아버지는 내 몸을 낳게 하시고 어머니는 내 몸을 기르셨다는 뜻으로 모국아신(母鞠我身)이라고도 합니다. 늘 부모님의 사랑을 잊지 말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효도를 생활화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상호신뢰(相互信賴)입니다. 생활하다 보면 상대방의 장점으로 보였던 것이 어느새 단점으로 보일 때가 있을 것입니다. 갈등이 생길 때에는 자신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잣대로만 판단하지 말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더욱 이해하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만일 사소한 말다툼이라도 생긴다면 즉시 마무리하십시오. 남편은 가장으로서 다툼의 원인에 관계 없이 사과하고 아내는 존중의 미덕을 저버렸으므로 용서를 구하십시오. 소통은 부부 최대의 덕목이기도 합니다.
 

넷째, 배려(配慮)와 감사(感謝)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고 남편의 뜻을 존중하는 미덕을 지녀야 하는 반면에 남편은 아내가 이렇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하는 책임감을 갖고서 아내를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진정성, 사랑의 일관성, 사랑의 참신성을 마음에 새기고 항상 실천하십시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를 선택해 주고 나의 배우자가 되어준 상대방에게 언제나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배려와 감사의 마음은 가정 행복의 원천이 됩니다.
행복은 절대 완성품이 아니라 꾸준히 노력함으로써 얻어지는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선배이자 동료인 이곳의 친지 여러분께서 이들에게 따뜻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정성껏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의 아름다운 혼인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리며 경청해 주신 하객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축가를 부르는 동안 무대 이곳저곳을 다니며 촬영하는 주례가 어디에 또 있을까?
축가를 부르는 동안 무대 이곳저곳을 다니며 촬영하는 주례가 어디에 또 있을까?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이상직 주주통신원  ysang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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