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의 경고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들이 숲 여기저기서 피기 시작했다.

노란 산수유가 먼저 피더니 약속이나 한 듯 연분홍 진달래와 하얀 목련, 노란 수선화가 뒤를 따랐다.

 

봄이 시작되자 시끄러울 정도로 새들의 지저귐도 커졌다. 박새, 곤줄박이, 직박구리, 딱새의 울음소리가 합창을 이룬다. 저마다 산란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꽃이 피면 새들의 먹이인 곤충들이 주위에 모여들기 때문에 아마도 계절상 지금이 알을 낳고 새끼를 치기에 적기일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 살던 시골 마을은 당시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새가 많았다. 지금은 희귀하지만 뜸부기, 꾀꼬리, 청호반새가  당시에는 산이나 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토끼, 노루, 족제비도 흔한 짐승이었고, 간혹 한겨울에는 마을에 늑대가 내려왔다면서 어른들이 집안 단속을 하던 기억도 난다.

마을 인근 소나무 숲에는 유난히도 때까치가 많이 살았다. 나무 한 그루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

그때는 곤충이 많았던 시절이라 봄만 되면 마을 전체가 새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나비, 애벌레, 개구리, 뱀이 우글거렸다. 그야말로 먹이사슬이 살아있었던 시절이었다.

심심하면 동네 아이들과 소나무 숲속에서 비둘기나 때까치 둥지 속 알을 꺼내 놀곤 했다.

 

둥지에서 알을 꺼내면 처음에는 어미 새가 머리 옆을 휙휙 지나면서 위협을 가하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아이들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면서 시끄럽게 울어댔다. 숲을 빠져나와야 겨우 새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새뿐만 아니라 개구리와 뱀도 마찬가지였다. 논두렁에는 한 걸음 뗄 때마다 개구리가 오줌을 ‘찍’싸면서 도망쳤고, 개구리가 많은 곳에는 뱀도 많았다. 그때는 작년에도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돌고 돌아 내년에도 항상 변함이 없으리라 확신했다. 크나큰 오산이었다.

 

요즘 농촌에 가보면 개구리나 뱀을 찾아보기 어렵다. 논에 농약과 화학비료를 뿌리다 보니 곤충이 살 수가 없고 곤충이 없으니 개구리, 뱀도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최고 포식자인 야생늑대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해로운 짐승에 해당되어 사냥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동물원이 아니면 볼 수가 없다. 그 결과로 멧돼지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서 거의 통제 불가능의 상태가 되었다.

멧돼지가 도심까지 내려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물론 농장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옮길까 봐 전전긍긍하며 울타리를 이중 삼중으로 설치하고 포수를 동원하여 개체 수를 조절하는 상황까지 되었다. 자연의 이치를 거슬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도 어찌 보면 인간이 먹이사슬 중간을 끊어버린 결과인지도 모를 일이다. 개발을 명분으로 야생동물의 생활공간인 숲을 파괴하면서 개체수를 조절하는 상위 포식자가 사라져 먹이사슬이 파괴되고 특정 야생동물과 인간과의 접촉빈도가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 팬데믹아닐까?

아니면 팬데믹은 먹이사슬을 끊고 지구를 망가뜨리는 인간을 응징하기 위한 지구의 자정능력일까? 인간의 상위 포식자가 팬데믹이라면? 그렇다면 어쩌면 지금 화두가 된 백신접종은 지구의 자정능력까지도 거부하는 인간의 발버둥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의 팬데믹이 지구가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세지라고 한다면 턱밑까지 차오른 인간의 탐욕을 당장 멈추고 먹이사슬 유지에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때까치가 다시 돌아와 숲속 소나무 위에 새까맣게 셀 수 없을 정도로 둥지를 트는 날이 언제 올까? 인간이 아닌 지구 스스로가 이루게 될지도 모른다는 꺼림칙한 상상을 해본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이강근 주주통신원  lplove199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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