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향연을 산행으로 즐기기

김해에는 백두산과 똑같은 백두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있다. 그래서 김해에는 백두산을 갔다 왔다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김해 백두산 존재를 미처 몰랐을 때는 거기에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진달래가 산불처럼 사방으로 번지고 있다. 꺼질 듯 꺼질 듯하면서도 꺼지지 않는다. 산봉우리를 넘어 건너편 산까지 더 넓게 번진다. 아직 나무들은 잎을 틔울 기미가 전혀 없는데 진달래만 홀로 꽃을 피운다. 겨울을 넘긴 회색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군락을 이루며 피어있는 모습은 무언가 불균형하면서도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올려다보는 진달래꽃은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분성산 정상부근 임도

진달래꽃은 산 아래쪽부터 시작해 중간을 거쳐 정상 쪽으로 이어진다. 높은 산일수록 기온 차가 크기 때문에 진달래꽃이 정상에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그만큼 많이 걸린다. 1천 미터급 산은 거의 한 달간 정도는 진달래가 피어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지리산은 5월 말까지도 천왕봉 정상에서 진달래꽃을 볼 수 있다. 늦어도 3월 말에 지리산 아래쪽에 진달래꽃이 피기 시작한다고 봤을 때, 지리산에는 두 달 이상 진달래꽃이 피어있는 셈이다. 봄에 진달래 꽃놀이를 확실하게 하고 싶다면 되도록 높은 산에 올라갈수록 그 가능성은 커진다. 높은 산에는 지금도 어딘가쯤에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활짝 피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어산 초입의 김해대학 입구

오늘 등산은 진달래 꽃놀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평소의 산행보다 조금 더 멀리까지 가기로 했다. 시내에 인접한 500~600미터급 산인지라 꽃놀이에 확신이 가질 않는다. 그래서 분성산과 신어산 그리고 장척산에서 이어진 긴 능선을 타고 백두산까지 가보기로 했다. 가다가 보면 적어도 어딘가 한군데는 진달래 군락지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등산을 준비하기 위해서 배낭을 꺼낼 때면 매번 마음이 들뜨곤 한다. 난생처음 올라가 보는 산은 물론이고 두 번 세 번 다시 오르는 산도 마찬가지다. 오늘 정상 날씨는 어떨까? 정상까지 별 탈 없이 오를 수 있을까? 오늘은 과연 정상에서 얼마나 먼 곳까지 조망할 수 있을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운다.

신어산 산림욕장을 통과하는 임도
신어산 산림욕장을 통과하는 임도

물과 커피, 간식거리 그리고 비 올 가능성은 적지만 우의와 혹시나 있을지 모를 강풍을 막아 줄 얇은 상의도 여분을 챙긴다. 커피는 등산 초입에 마셔놓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는 걸 매번 실감한다. 커피와 초콜릿은 등산에서 빠질 수 없는 준비물이다. 쉴 때 군것질 역할도 하지만 확실히 에너지를 만드는 느낌이 확 들기 때문이다. 진달래 꽃놀이 1차 목적지는 집에서 근접한 400미터급의 분성산이다. 등산로가 아닌 조금은 둘러서 올라가야 하는 임도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초입부터 소나무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무성하다. 임도가 시작되는 곳에는 예전에 군부대가 약 50년 동안 자리 잡고 있었던 터라 분성산은 김해 지역의 다른 어느 산보다도 숲이 무성하다.

영구암과 기암괴석
영구암과 기암괴석

소나무, 참나무, 노각나무 등과 종류도 알 수 없는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임도는 차량 출입이 목적이다 보니 등산로보다 많이 꾸불꾸불한 편이다. 그만큼 등산로보다 더 많이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임도 양편으로 조릿대 군락지가 간간이 보인다. 대나무류는 손을 쓰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번지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지리산, 한라산도 등산을 하다 보면 조릿대가 산등성이를 장악하고 있다. 조릿대가 다른 나무를 제압하고 번성하는 이유도 지구의 기후변화 때문일지 모르겠다. 이곳도 조릿대가 빽빽하게 자리 잡을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아 우려스럽다. 분성산 정상까지 가는 길에는 진달래꽃이 벌써 떨어지고 흔적도 없다. 간혹가다가 한 그루씩 보이는 산 벚나무가 바람에 꽃잎을 떨구고 서 있을 뿐이다. 분성산에서 진달래 꽃놀이는 실패다. 그러나 포기는 이르다. 아직 가야 할 산은 저 멀리 굽이굽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꽃놀이 기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분성산 하산과 동시에 신어산엘 오른다.

신어산 정상과 통하는 능선길에 핀 진달래꽃
신어산 정상과 통하는 능선길에 핀 진달래꽃

신어산은 동김해 시내를 병풍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 600미터급 산이다. 신어산에는 은하사라는 제법 큰 사찰과 몇 개의 암자가 자리하고 있다. 등산로가 다양하고 높이도 적당해서 많은 사람이 등산을 즐기는 산이기도 하다. 정중앙쯤에 은하사가 자리 잡고 있고 등산로는 은하사 오른쪽과 왼쪽 어느 쪽을 택하든지 정상으로 연결되어 있다. 오늘은 갈 길이 멀기에 신어산 정상까지 최단 거리라 할 수 있는 오른쪽을 오르기로 한다. 임도가 끝나자마자 경사가 제법 급하다. 급경사지에 놓여있는 나무계단과 돌계단을 숨 가쁘게 오르다 보니 암자가 하나 나온다. 가야 시대 때부터 존재했다는 영구암이다. 가파른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암자가 들어서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어찌 보면 등산객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휴식처다. 암자도 둘러보고, 평상에 앉아서 목을 축이며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쉴 수 있으니 말이다. 암자 뒤쪽 기암괴석의 여기저기에 진달래꽃이 아직 지지 않고 남아있다.

신어산 능선길에 핀 진달래꽃
신어산 능선길에 핀 진달래꽃

영구암부터 신어산 정상부 능선까지는 짧은 거리지만 몇 걸음 뗄 때마다 호흡이 가쁜 구간이다. 정상부 능선 등산로에는 양쪽으로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 큰 군락지는 아니지만 힘들여서 신어산을 올라온 보람을 조금은 느끼게 해준다. 신어산 정상을 찍고 곧장 백두산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신어산 하산길에 서서 바라보는 최종 도착지 백두산이 저 멀리 까마득해 보인다. 과연 저기까지 가는 도중에 진달래 꽃놀이는 가능할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아직 저만큼이나 남았는데 설마 불가능할까 하는 믿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신어산 하산길은 신어산 동봉에서부터 시작된다. 백두산까지 종주는 처음인지라 마음이 조급하다. 최종 목적지에서는 시내버스를 타야 하는데 몇 시쯤에 그곳에 도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과연 그때까지 막차가 남아있을지 걱정스럽다.

신어산 정상에 있는 정자와 진달래꽃
신어산 정상에 있는 정자와 진달래꽃

이곳 하산길은 신어산 등반 때 자주 오르내렸던 곳인지라 지형에 익숙하다. 등산로가 북쪽을 향하고 있어 주로 무더운 여름철에 즐겨 오르던 등산로다. 등산로 주변에 진달래 군락지가 있어 시기만 잘 맞추면 진달래 꽃놀이가 가능한 곳이다. 산등성이를 지날 때쯤부터 진달래가 등산로 양쪽을 장식하고 서 있다. 여기는 신어산 북쪽 응달진 위치이다 보니 다른 곳보다 늦게 진달래가 만개한 것 같다. 하산길 중간쯤에서부터 나무계단길이 시작되는데 양쪽으로 진달래가 절정을 이루고 있다. 등산로가 나무계단으로 만들어진 덕분에 진달래 군락지가 잘 보존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등산하다 보면 잘 알려진 산일수록 등산로가 많이 훼손되어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처음에는 좁았던 등산로가 붐비는 등산객으로 인해 길이 넓어지고 다져져서 비가 오면 물길이 되어 세월이 갈수록 흙을 모두 쓸고 가, 결국 암반이 드러나고 만다. 어떤 곳은 등산이 아니라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신어산 하산길 나무계단 양쪽을 장식한 진달래꽃
신어산 하산길 나무계단 양쪽을 장식한 진달래꽃

이제 산도 정기적으로 휴식을 취하며 상처를 회복할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다행히도 여기는 나무계단 덕분에 나무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진달래 군락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멈춰서서 디카도 찍고 눈에도 열심히 담아보면서 진달래 꽃놀이로 잠시 가는 봄을 붙들어 본다. 신어산 하산과 동시에 임도가 나타난다. 여기서부터는 독립된 또 다른 산을 올라야 한다. 백두산을 가기 위해서는 거쳐 가야만 하는 500미터급의 장척산이다. 산행을 시작 한지 약 5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오후 세 시, 해가 서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신어산 하산길 활짝 핀 진달래꽃
신어산 하산길 활짝 핀 진달래꽃

장척산 등산 초입에 산불감시원이 지키고 서 있다. 백두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가본 적이 없고 이쪽으로내려오는 사람들 말로는 너무 힘든 등산로라고들 한다면서 지금 출발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 아니냐며 만류하는 기색이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출입자명부에 내 신상을 평소보다도 더 또박또박 기재해 놓는다. 올라가다가 힘들면 되돌아오겠다는 말을 산불감시원에게 남기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등산로와 임도가 반복되다가 장척산을 앞두고 임도와는 별개의 등산로가 나타난다. 등산로가 좁은 데다가 접근이 어려운 한적한 곳이어서 그런지 인적이 드물다.

신어산 하산길 활짝 핀 진달래꽃
신어산 하산길 활짝 핀 진달래꽃

장척산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장척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점점 거세진다. 진달래꽃이 만개하기도 전에 거센 바람에 떨어져 등산로를 온통 붉게 장식하고 있다. 땅바닥에 떨어져 시들은 진달래꽃이지만 눈에 가득 담으면서 진달래 꽃놀이를 대신해본다. 적막감에 휩싸인 좁은 능선길을 허겁지겁 오르다 보니 어느새 장척산 정상이다. 너무도 고요해서 어색할 정도이다. 어느 산에 올라가든 정상에는 항상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서 줄을 길게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대는데 여기는 예외다. 이 분위기는 단지 백두산을 가기 위한, 아니면 백두산을 지나 이곳을 거쳐 가기 위한 정도의 산임을 증명하는 듯하다.

장척산 정상
장척산 정상

정상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이제는 최종 목적지 350미터급 백두산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발걸음은 자꾸 무거워지고 다음 목적지 백두산은 다가갈수록 자꾸 도망가는 느낌이다. 장척산 정상에서 가야할 능선길을 굽어보니 오르막보다 내리막길이 더 길어 보인다. 다행스럽다. 백두산 정상에 세워져 있는 정자가 어렴풋이 보인다. 언뜻 보면 커다란 바위가 드러누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눈으로 보아 모양이 선명하지 않다는 것은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남아있다는 반증이리라. 빨리 저곳 정자에 편안히 자리잡고 오늘을 기려보자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능선에서 내려다본 양산 물금과 낙동강
능선에서 내려다본 양산 물금과 낙동강

능선길이 끝이 없을 것처럼 길게 이어진다. 가는 길을 가로막고 턱 버티고 선 산봉우리 허리를 일직선으로 관통하는 등산로가 무척 반갑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오늘 진달래 꽃놀이 산행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일이 걱정이다. 백두산에서 하산을 완료하면 그때까지도 시내버스는 남아 있을까? 아니면 오가는 택시는 있기나 할까?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속을 스친다. 그런 생각으로 걷다 보니 드디어 오늘의 최종 목적지 백두산 정상이다.

백두산 정상에서 바라 본 정경
백두산 정상에서 바라 본 정경

오후 5시다. 아침 9시 반에 출발했으니 총 7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정자에 올라서 지나왔던 길을 한참 동안 바라다본다. 여기서 바라본 분성산과 신어산이 왠지 낯설어 보인다. 온몸을 뒤덮는 피로감 때문인지 아니면 어스름이 시야를 방해해서인지는 알 수없다. 문득 '언젠가 다시 여기서 분성산과 신어산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보는 시간이 올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백두산 정상
백두산 정상

백두산은 항상 변하지 않고 지금 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서 있을 것이다. 내가 산처럼 굳건하기만 하다면 기회는 다시오리라 믿어 본다. 백두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에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아직 버스 정류장까지 가야 할 길이 남아있다. 마음은 급하고 발바닥은 불타는 것처럼 뜨겁고 두 다리는 돌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겁다. 아직도 남아 있는 하산길, 오늘 있었던 진달래 꽃놀이를 회상해 본다. 마음 만은 새처럼 날아갈 것 같다.

* 진달래꽃이 한창인 4월 초에 등반을 끝내고 이 글을 쓰기 시작하였으나 게으름으로 진척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던 끝에 이제야 겨우 마무리하여 글을 올립니다.

편집 : 허익배 편집위원, 김미경 부에디터 

이강근 주주통신원  lplove199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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