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 수복, 진지탈환프로젝트-

갓 태어난 아기들은 하루 차이가 나도 하는 짓은 눈에 띄게 다른데 이를 두고 ‘오뉴월 하루해가 무섭다’고 한다.

정이, 고등학교 때 주민등록증을 받고 성년이 되었지만 사회생활은 엄마 탯줄 끊고나온 영아 수준이니 집 떠나 만난 언니를 많이 의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언니는 20대 후반으로 이 학교 오기 전, 몇 년 직장을 다니며 가족을 부양하는 생계 전선에 있다가 터닝 포인트가 필요해 직업학교를 왔다고 했다.

그러나 정이는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고 공부고 재미가 없어 언제 학교를 그만둘까 기회만 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책도 없이 부모님께 탈학교를 말씀을 드리니 부모님은 ‘대학은 바라지 않을 테니 고등학교 졸업만 하라’는 당부를 하셨고 그런 고비를 몇 번 겪으며 3년을 다니게 되었다.

어쩌면 학교를 다닌 게 아니고 출석 일수를 채웠다는 게 더 맞을 것이다. 그렇게 다닌 학교였지만 3학년이 되고 보니 *현타가 왔다. 자신은 장녀이니 동생에 대한 체면도 있어야겠고 맏이 노릇으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진로를 탐색해 보니 일반 대학 진학은 언감생심이고 결국은 직업학교를 오게 된 터였다.

낯선 곳에서 적응이 어려울 때마다 언니는 도움을 주었고, 친구들과 겪는 문제들도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었다. 기숙사를 나가는 것 또한 언니와 의견이 맞아서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었고 방을 구하는 일 전반도 언니가 했다. 살림을 장만하면서 소모비용과 소모품은 반부담이었지만 방 보증금과 세탁기를 비롯한 공용 비치품은 다 정이가 부담을 하였다.

아무리 좋았던 사이도 살다 보면 문제는 일어나기 마련이고 뜻하지 않은 사건도 생기게 되지만 문제는 풀어가면서 사는 것, 처음부터 잘하는 일이 얼마나 있으랴?

혼란과 두려움은 문제를 회피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려면 엄두가 안 나도 용기를 내서 부딪혀보고 실패라도 해야 배우는 게 있지 않겠나.

나이든 이들은 경험상 방법이 보이고 결과가 보이지만 어린 마음은 앞도 안 보이고 걱정만 태산이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자니 아빠가 불같이 화를 내며 야단을 칠 거 같아 두렵고 혼자 궁리를 해봐도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다.

그럼 중요한 게 무엇일까. ‘아빠에게 야단을 맞더라도 본인의 자리를 찾는 게 중요한가, 아니면 아빠에게 야단을 안 맞고 잘못한 것도 없이 자신의 권리를 남에게 다 넘겨주고 남의 방에서 숨죽여 지내며 부모님을 속이는 생활을 계속할 것인가?’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게 첫째 할 일이라고 일러줬다.

두 선택지 중 전자를 택한 정이는 엄마에게 사정 설명을 하고 상의를 했다. 정이가 엄마와 상의한 결과는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면 엄마도 도와줄 용의는 있는데 본인의 의사에 맡기겠다'고 했고 정이는 스스로 해결하는 쪽을 선택했다.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거냐고 물으니, 언니 만나서 “언니가 나갈래요? 내가 방을 뺄까요?”로 담판을 지을 예정이란다.

이후 정이는 언니와 담판을 해서 다시 제 방으로 돌아가기로 했고, 언니와 오빠는 둘이 살림을 합치는 것을 오빠네 부모님께 말씀드려서 그간 해왔던 밀회를 공개로 전환하며 아래층으로 가기로 했단다. 이렇게 정이의 진지탈환 프로젝트는 완료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며 힘이 되고 위안을 주는 일 중의 하나가 자신을 지지해주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한 아이가 성장하는데 지지세력이 있다는 건 판단이 필요할 때 준거가 되고 용기를 주는 등 건강한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 절대 필요조건이다.

때로는 돌부리를 만나 걸려 넘어지고 무릎이 깨지더라도 지지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것이다. 그저 막연하고 두렵던 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또 시작은 하고도 제대로 했는지 판단이 서지 않아 두렵기만 하던 때,  나를 지지해 줄 이를 찾아 상담을 했다.

상담을 해보니 길이 보였고, 보인 길을 따라가니 목적지가 나타났고 그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그간 정이가 겪었던 일을 보며 정이가 기숙사에서 지낼 때 왜 사감이 불쑥불쑥 문을 열었는지 이해가 갔다.(끝)

*현타 (現time)

‘현실 자각 타임’을 줄여 이르는 말로, 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신성자 시민통신원  slso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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