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는 나를 비추는 맑은 거울이 있다

지리산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능선이 일렁이는 파도처럼 펼쳐졌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산새가 숲속 깊은 곳에서 지저귀며 내 귓전을 울렸다. 계곡 물소리는 내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하는 듯 요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깊은 숲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봄꽃 향기가 몽땅 내게로 오는 듯했다.

그야말로 눈과 귀와 코가 아니 온몸에 전기가 통한 것처럼 아찔하게 만든다. 이렇게 지리산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의 오감을 자극하고 온몸을 활짝 열게 만들어 나의 존재를 드러나게 했다. 내가 현재 여기 살아있다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새롭고 강력한 자극은 나를 여기 존재하게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육체적 고통을 굳이 감내하고서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려 애쓰는 것일까?

군 복무 이전에 두 번 군 복무 이후에 두 번 지리산에 오른 적이 있다. 호연지기를 기른다는 목적 하나로 선생님, 동료, 선후배들이 함께했다. 열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지리산 인근 마을에 내려 민박을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등산을 하는 식이었다. 1박 2일 아니면 2박 3일 일정이었다.

지리산 입구까지 접근하는 시간만 해도 꽤 오래 걸렸기 때문에 당일치기로 지리산을 오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천왕봉에 오르고 하산하려면 2일이나 3일간 산에서 먹고 자고 해야 했기 때문에 한 마디로 `자처한 고생길`이었다. 먹을 것, 조리도구, 텐트 등이 든 배낭 무게로 산행 첫날부터 몸살을 앓았다.

야영장에서 텐트를 치고 자다 보면 예기치 않게 밤에 기온이 심하게 떨어져 추위에 벌벌 떨면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반찬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번 된장국 아니면 김치찌개였고 이미 체력은 고갈될 대로 고갈되어 산해진미를 내어놓아도 입맛이 살아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로지 빨리 지리산을 벗어나고픈 일념밖에 없었던 것 같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때 함께 했던 사람들 대부분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힘들었지만 다행히도 누구 한 사람 낙오하지 않고 항상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 그때 지리산 산행을 할 때마다 목표로 했던 호연지기가 조금은 길러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호연지기는 몰라도 적어도 힘든 산행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연대감은 추억으로 남아있고, 텐트에서 밤새 추위에 떨다가 일어나 바라본 지리산 운무는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요즘 내가 지리산을 오르는 이유는 젊었을 때의 호연지기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 젊은 시절의 인연이 계기가 되어 몇 년 전부터 일 년에 한 번씩 지리산에 오르고 있다. 이제는 지리산 새소리와 계곡 물소리와 꽃향기를 잊지 못해서 아니 지리산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이끌려서 찾곤 한다. 아예 5월 말로 못 박아놓고 다른 일정은 뒤로 제쳐놓는다.

과연 언제까지 지리산에 오를 수 있는 체력이 될지 의문이다. 그 걱정에 자연스럽게 인근 산을 자주 오르면서 체력을 기르게 되었다. 그리고 지리산에 올랐다 내려오면 당분간은 동네 인근 산들은 조그만 뒷동산처럼 작게 보인다. 이런 것을 선순환작용이라고 하는 걸까?

살면서 스스로와 마주하는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지리산 천왕봉 가는 길목의 계곡과 능선에는 나의 참모습을 비추는 맑은 거울이 있다. 내가 굳이 힘들게 지리산을 오르는 이유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반백이 넘어가면서 조금은 철이 들고 있다는 소리일까?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이강근 주주통신원  lplove199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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