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이모작은 퇴직 전부터

36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감하고 2월 말일 자로 명예퇴직을 하였다. 모레가 되면 퇴직 생활을 시작한 지 백일이 되는지라 그 짧은 생활을 스스로 돌아보고 감회를 나누고 선배 퇴직자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다. 우선 퇴직하고 게을러지지 않도록 무언가 할 일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두 가지 일을 하였는데 첫 번째는 순천 지역언론인 순천광장신문에 상임이사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무보수 직책이지만 평소 언론이 바로 서야 한다는 생각은 20대나 60대가 된 지금이나 변함없다. 20대에는 한겨레 창간 주주로서 참여하였고, 주식교부 1호라는 긍지로 적잖은 자부심을 느끼고 살아온 터였다. 이제는 지역을 위한 폭넓은 활동을 하는데 지역 언론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순천광장신문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발간한 신문이다. 그런 만큼 시민운동 등에 뜻을 둔 인사들이 참여하므로 선량하고 시민의식이 투철한 분들이 많아서 상임이사라는 막중한 임무를 감당하고 싶다는 의욕을 보인 것이다.

두 번째 일은 평소에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통일 교육을 계속해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통일교육원에서 모집하는 공공부문 통일 교육 강사에 응모하여 선발된 것이다. 통일교육 지원법이 바뀌어 공무원들은 이제 매년 1시간 이상의 통일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데 통일교육원이 감당할 인력창고가 부족하여 외부에 있는 통일연구자와 통일 교육 7년 이상의 경력자를 선발한 것이다. 서류 심사와 2주간의 연수를 거치고 통일 교육에 가서 강의 시연까지 해 보이고서야 선발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아직 강의 요청은 들어오고 있지 않지만 나름 기대를 하고 산다.

현직에 있을 때 예약된 학교 통일 교육은 이미 5월에 한 차례 했고, 7월은 또 부산에 있는 학교에 강의하러 간다. 이런 숨 가쁘지 않는 느긋한 기다림이 좋다.

중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통일교육을 하는 장면
중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통일교육을 하는 장면

세 번째는 자전거 타기라는 새로운 취미생활에 푹 빠졌다. 평소에 무릎이 좋지 않아서 자전거 타기가 좋다는 말에 시작하였는데 정말 좋은 취미생활이라는 생각이 든다. 레저용 차량(RV) 뒷좌석을 접고 자전거를 싣고 다니면서 안전한 곳에서 멋진 풍광을 보면서 자전거 타는 기분을 그만이다. 봄에는 광양 매화마을 인근을 달리면서 매화향을 맡으며 섬진강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으로 가슴 벅찬 기쁨을 누렸다. 지난 5월 초에는 3명이 함께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환상 자전거길을 완주하였다.   제주도에서는 '여순특별법 제정 촉구'라는 몸자보를 두르고 자전거를 탔다. 여순특별법이 국회에 계류되어 처리되지 않아서 이미 고령인 유족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하는 현실이 가슴 아팠다.

여순 특별법 제정이라는 몸자보를 배낭에 메고 제주도를 한바퀴 돌았다.
여순 특별법 제정이라는 몸자보를 배낭에 메고 제주도를 한바퀴 돌았다.

여러 인증센터에서 도장을 받아서 최종적으로 인증스티커를 받는 것을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즐거움이 컸다.

제주 해거름 마을 인증센터에서 선 필자
제주 해거름 마을 인증센터에서 선 필자

네 번째는 국민학교 시절부터의 취미생활인 바둑두기에 빠져서 인터넷으로 두는데 시간 가는 줄을 모르기도 하였다. 현직에 있을 때는 시간이 없어서도 두지를 않았는데 이제 다시 두기 시작하니 어이없는 수에 당하여 억울하게 지는 일도 많지만 그래도 즐기는 기분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상의 네 가지 일을 하게 된 것은 퇴직하기 전부터 이미 준비되었다. 그래서 세상일이라는 것이 사전에 씨앗을 묻어두면 어느 순간에 싹이 터지고 나무로 자란다는 것을 느끼는 퇴직 생활 백일을 맞는 소회이다. 다만 자전거 타기나 바둑두기는 주주님들과  함께 하면 더욱 더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정경호 주주통신원  jkh353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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