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큰 어른

나는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운영하고 있다. 이른바 '나는 서울의 택시운전사'이다. 택시운전을 오래 하다 보니 택시를 타는 손님들의 짧은 말이나 태도를 단서로 사람들의 성격이나 성향을 금방 파악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성격은 반복되는 행동양식인데 심지어 택시 문짝을 여닫는 힘의 강도를 가지고도 성격을 거의 알아맞힐 수 있다. 부업으로 미아리고개에 돗자리를 깔고 점을 보아도 돌팔이 정도는 면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에서 택시운전을 하려면 손님과 대화할 때는 경험칙상 대략 세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 특히 선거철에는 더욱 신경을 써야한다.

그 하나는 소위 강남의 돈 많은 사람, 두 번째는 나이 많고 박정희 향수를 못 잊어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경상도 특히 경북지방 사람들이다.

지난 2019년 5월 4일 밤 9시 30분경 마포 서교동 아만티 호텔 앞에서 손님 한분이 타고 서울역으로 가자고 했다. 경상도 말씨에 흰머리까지.. 마음속으로는 혹시라도 조심해야지 하면서 말을 건넸다.

"실례지만 어디까지 가세요?"
"예 대구까지 갑니다."

그래도 나는 말을 이어갔다.
"제가 대구가 고향인 아는 사람이 딱 한분 계십니다. 채현국 이사장(경남 양산의 효암학원•중고등학교)님이라고요."

"아~ 그분 제가 아는 분입니다. 그분이 대구에 내려오시면 저한테 꼭 전화를 하시는데 나는 이렇게 서울에 왔다가 그냥 내려가네요..."

헉~ 세상에 이럴 수가..
채현국 이사장님과 인사동의 협동조합 <문화공간 온>의 같은 조합원이라고 소개를 했다.

"제 이름이 피 혈(血)자에 새 조(鳥)자 김혈조입니다."
오잉? 아이 무셔(서)워! 그럼 무슨 흡혈귀? 이분 혹시 농담하시나? 참나~ 채현국 이사장님은 마당발이시네~
흡혈귀도 알고 지내시고.. ㅎ

"저 이사장님 혈조입니다. 서울에 왔다가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님이 이사장님을 안다고 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어! 혈조 어디야 당장 달려 나갈게..)" 나오시긴요. 시간이 몇 신데요. 서울역 가는 중입니다.."

전화 통화가 끝나고, 그분(이사장)은 일제 잔재라며 선배한테는 반말을 하고 후배한테는 '~ 하게, ~하시게'라며 존댓말을 한다고 귀띔해준다. 또 거문고의 명칭 유래와 함께.

나는 서울역에 도착해 <문화공간:온>협동조합 조합원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소개했다.(지금은 '쑥대밭'이 된 협동조합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또 온라인 언론 <한겨레 온>의 소개도 빼놓지 않았다.

손님을 내려드리고 궁금해 네이버에 '김혈조'라고 검색을 해보았다.

김혈조, 영남대 교수.
1954년 경북 선산읍(현 구미시)에서 출생. 성균관대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한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이래 영남대 한문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한문학의 산문 문학에 주로 관심을 두고 있으며, 특히 연암 박지원의 산문 문학을 집중적으로 탐구하였다.

연암의 산문 작품을 연구한《박지원의 산문문학》이라는 저서와, 산문을 가려 뽑아 번역한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라는 역서가 있다. ‘연암체의 성립과 정조의 문체반정’이라는 논문 이외에 연암의 문학과 관련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열하일기> (전3권) 박지원 저/김혈조 역 돌베개 출판사 2017.11. 6.

나는 그 손님이 흡혈귀(?)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훌륭한 학자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죄송..) 지난 4월 2일 별세하신 고 채현국 이사장님과 김혈조 교수님이 택시 안에서 나눈 전화통화가 이승에서 마지막이 아니었기를 바랐다.

생전에 채 이사장님을 <문화공간:온>에서 뵈었을 때 궁금해서 여쭈어 보았다.

"선생님 실례지만 고향이 이디세요?"
(바로)"아~ 그 악랄한 놈들 많이 사는 동네 있죠! 대구! 대구가 내 고향입니다."

헐~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이 '92년 14대 대선 때, 초원복국집에 부산의 기관장들을 불러 모아놓고 "야! 이 사람들아 지역감정을 일으켜야 돼! '(경상도)우리가 남이가!'"라고 했다, 그렇다면 채현국 이사장님은 애향심(?)이 좀 없으신 분인가? ㅎㅎ

2021년 4월 2일 향년 86세로 영면하신 채현국 이사장님께서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는 경구(警句)를 남겨 주셨다.

고 채현국 이사장 발인.                                    사진:한겨레 김혜윤기자
고 채현국 이사장 발인.                                    사진:한겨레 김혜윤기자

< 채현국 어록 >

쓴맛이 사는 맛이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어떠한 권력도 이기면 썩는다. 예외는 없다. 아비들도 처음부터 썩은 놈은 아니었다. 그놈들도 예전엔 아들이었는데 아비 되고 난 다음에 썩은 거다. 노인 세대를 절대 봐주지 마라.

돈이나 권력은 마술 같아서 아무리 작은 거라도 자기가 휘두르기 시작하면 썩는다.

세상의 모든 '옳은 소리'에는 반드시 오류가 있다.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 아니라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엔 정답이 없고 무수한 해답이 있는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리다'라는 건 군사독재의 악습이다.

후배한테 반말하는 건 왜놈 습관이라, 그게 싫어서 난 후배한테 반말하지 않는다. 퇴계는 26살 어린 기대승(조선 선조 때의 성리학자,1527~1572)이랑 논쟁을 벌이면서도 반말 안 했다. 형제끼리도 아우한테 '~하게'를 쓰지, '얘, 쟤..'하면서 반말은 쓰지 않았다. 하대(下待)는 일본 사람 습관이다.

올해 이 시대의 큰 어른 여러분이 타계하셨다.

지난 2월 15일 시대의 등불, 나노메기(대동세상•통일세상)를 꿈꾼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이 향년 89세로 별세.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

2월 16일 재일(在日) 마지막 망명객, 민족 통일의 길 밝혀온 시대의 불침번 정경모 선생이 향년 97세로 별세.

특히 2009. 5. 11. <한겨레> '길을 찾아서' 회고록 '한강도 흐르고 다마카와도 흐르고'를 연재하여 독자들로부터 큰 반향을 일으켰다.

5월 10일 이애주 경기 아트센터 이사장. '진혼굿'(국가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 민주화 염원 '바람맞이' 발표. 시국춤•정치춤 상징 향년 74세로 별세.

이애주 선생은 1987년 연세대 앞 이한열 열사 영결식에서 운구행렬을 이끌며 한풀이 춤을 춘 모습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자리를 빌려 가산님들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이강윤 주주통신원  kangyun858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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